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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Sep 22. 2024

나의 곱슬머리, 타고난 대로

 십 대 시절부터 나의 모질-심한 곱슬머리-은 내 신체의 여러 특징 중에 언제나 나에게 아쉬움과 고뇌를 안기는, 내 몸이 평생 지고 가야 할 무거운 짐 같은 존재였다.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생머리인지 곱슬머리인지 하는 섬세한 영역에 생각이 미친 적도 없고, 머리를 기르고 주로 묶고 다녔기 때문에 보기에도 별다른 특이한 점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중학교 입학에 맞춰 머리를 귀밑단발로 자르자 부스스한 몽실언니 내지 삼각김밥 머리가 되었고 그날 미용실에서 내 모습을 보고 '어...?' 하고 놀라던 그 순간이 지금도 기억난다. 아파트 단지 상가 2층에 있던 미용실의 모습과 이름까지 생각난다.


 보통 우리나라 사람들이 '직모가 아니다'라고 하는 머릿결이 '반곱슬'이라면 내 머리는 여러 미용실 선생님들이 명확히 말한 바, 그냥 '곱슬'이다. 우리 아빠 머릿결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내 동생들은 반곱슬인데 나는 어쩜 이렇게 딱 닮아버렸을까. 남자치고 약간 긴 머리에 흰머리를 그대로 두는 우리 아빠의 머리스타일은 고이즈미 일본 전 총리를 생각하면 된다. 좀 더 기른 모습을 상상하면 베토벤이고. '아버지 예술 관련 전공 교수시냐'라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아빠는 그런 자신의 모습에 전혀 유감이 없고 개성 있는 스타일로 아주 잘 받아들이고 있지만, 십 대 여학생에서 삼십 대 여성이 되기까지 내 입장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곱슬머리를 펴주는 매직펌이 중학생 세상에 착륙했다. 어느날 나 이상으로 심한 곱슬이던 같은 반 학생이 쫙 뻗은 단발머리로 나타났고 상상도 못 해본 이 신기술에 애들이 웅성웅성 둘러싸고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이대나 압구정에 공장형으로 매직펌을 전문적으로 해주는 미용실들이 나타났고 한번 매직을 하려면 8시간까지 소요되었지만 이것은 혁명이었다. 아마 어른들은 고데기로 머리를 편다든지, 이런저런 관리방식이 있었겠지만 그런 지식이 전혀 없던 내가 느낀 매직펌의 존재는 유전자 변형 치료제에 가까웠다. 몇 살 때인지 몰라도 '그러고 보니 연예인들은 모두 시력이 좋고 생머리네?'라는 생각을 했던 게 기억난다. 어떻게 사람이 예쁘거나 잘생기면서 시력이 좋고 생머리라는 조건까지 갖췄지? 연예인은 엄청난 조합을 타고나야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 정도로 나는 미용 관리의 세계에 완전히 무지한 스타일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대충 반년 간격으로 시험이 끝나면 매직을 하는 애들이 많았더랬다.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리고 학생에게는 비싼 가격이었던 데다가 직모인 우리 엄마는 항상-지금까지도- '남들은 일부러 파마도 하는데 곱슬을 왜 펴니?' 라며 매직펌의 필요를 전혀 공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좀더 긴 간격으로 미용실에 다녔다. 그때 시작한 매직펌을 작년까지- 거의 이십 년 가까이 해왔다. 교환학생이나 임신 등의 이유로 펌 간격이 길어졌을 때도 있지만 1년을 넘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매직을 해도 그 쫙 펴진 머릿결이 쭉 유지되는 건 아니고, 한 달만 지나도 앞머리 뿌리부터 어느 정도 티가 나기 때문에 마음에 차지 않는 머리스타일에 항상 약간의 아쉬움을 간직한 채 살아왔다. 단발은 당연히 안 되고, 웨이브펌을 하려고 해도 매직으로 일단 편 뒤 웨이브를 넣어야 되기 때문에 시간, 비용, 머릿결, 어차피 오래 못 감- 등의 이유로 한두 번 해보고 말았다. 


 그리고 무상한 세월과 함께 새치커버 염색에 입문한 지 2년쯤 되었다. 두 달마다 부분염색을 하고 반년마다 매직을 하던 작년 어느 시점에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결심이 섰다. 안 그래도 부스스한 머릿결인데 염색과 매직펌을 번갈아 시술하니 머릿결이 너무 안 좋아지는 데다가 매직펌을 하느라 세 시간 반 정도 미용실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 점점 목과 허리에 무리가 갔다. 그렇게 약 20년 만에 직모를 향한 열망을 포기했다. 그리고 포기하고 나니 의외로 좀 더 수용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타고난 내 머릿결. 

 부스스한 곱슬 머릿결이 맘에 안 들고, 단발이나 숏컷을 하고 싶은데 모든 미용사가 말리고, 내가 직모였으면 얼마나 편하고 좋았을까...라는 그 생각들을 천천히 버렸다. 부스스해도 괜찮고, 타고난 머릿결에 맞는 머리스타일을 찾아가면 되고, 남의 스타일이 예뻐 보인다고 해서 우리가 타고난 수많은 요소들을 꼭 그에 맞춰 바꿀 수는 없으니까. 미련을 가져봤자 나만 피곤하다는 걸 만 20년이 넘게 체험한 데다가 새치와 허리통증까지 더해지자 드디어 포기가 됐달까.


 물론 헤어에센스를 듬뿍 바르고, 다이슨으로 머리를 잘 말리고, 앞머리 길이는 이 정도로 유지하고 전체 머리길이는 이보다 더 길어야겠다,라는 식으로 관리는 한다. 그리고 그게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결 좋은 머리칼을 기르고 웨이브 펌을 하거나 얼굴형에 어울리게 숏컷을 친 머리스타일을 보면 여전히 설레고 아쉽지만, 내 모습과 한계에 적응하고 있다. 그리고 비로소 나의 곱슬머리와 화해한 기분이다. 아쉬운 것은 아쉬운 대로 둔 채 받아들이는 것이 참 쉽지 않았다.


 우리 아들은 나와 다르게 아주 적절한 수준의 반곱슬이라 귀밑 단발머리를 대충 말리고 자도 뻗침 없이 모양이 잘 잡힌다. 우리 남편과 아들의 머리카락을 모두 잘라본 미용사 선생님이 두사람 다 뒷머리가 뻗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는 모질이라며 특이하다고 했는데 참 부럽다. 열망하는 부러움은 아니고, '예쁘다, 잘 어울린다, 좋겠네~' 정도의 마음. 아들 말고 타인에 대해서도 이 정도 생각만 드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직 새치 커버는 포기하지 못했지만, 머릿결의 문제에서라면 이제 남의 머리스타일이 예쁜 것과 내가 가질 수 있는 스타일이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정도의 마음이 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지금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 다행이다.


 언젠가부터 나이 드는 것의 좋은 점이 이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미련을 버리는 것, 자기 모습을 비틀어 다른 기준에 맞추려는 노력의 일부라도 멈추게 되는 것. 누군가는 포기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수용이라고 부를만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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