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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Sep 08. 2024

복직 후 반년

일은 그냥 하면 되는데 아이는 그냥 둬도 되는 걸까

 복직 후 반년이 지났다.

 불과 몇 달 전의 일인데도 회사에 다니지 않던 시절이 아스라하다. 

 회사생활이라는 건 여전히 불편하고 삐걱거리지만 내 몸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집에서 7시 10분에 나가는 스케줄이 무척 걱정스러웠었는데 신기하게도 대체로 알람이 울리기 직전에 눈이 떠진다. 아이를 태우고 출근하던 시절 -불과 2년 전-에는 9시 30분까지 출근했었기에 8시 출근으로 바꾼 게 꽤 큰 부담이었는데 이렇게 다녀보니 주차하기도 편하고 남들 우르르 출근하기 전에 혼자 업무를 보는 약간의 시간이 마음에 든다.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양가적인 감정이다. 금융기관에서 일한다는 건, 예를 들어 소방관, 선생님, 경찰, 작가, 가수,.. 등등의 직업처럼 직관적인 목표나 개인적인 생산물이 있는 일이 아니라서인지 내 경우엔 일을 하면서 특별히 사명감이나 재미를 느끼지는 않는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자아 인식, 맡은 일에 대한 마땅한 수준의 책임감, 일을 처리해 나가는 과정과 결과 자체가 주는 약간의 만족감, 사회적 소속감, 그리고 물론 급여를 통한 생활의 기반 마련이 주는 안정감 등등이 있다. 그리고 이 정도로도 직장생활을 하는 데에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거나 지나친 시간이나 노동 투입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그래서 소박한 만족감과 일하는 일상의 괴로움을 늘상 함께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직장생활은, 나에게 걸려있는 각각 중요도나 급박성이 다른 10개의 일 중에 이거 한 개만 빠지면 할만하겠다 싶은 '이거 한 개'가 이름을 바꿔가며 절대 사라지지는 않는 나날이다. 정말 집중해서 바쁘게 일을 하지만 퇴근시간쯤에 오늘 하루 뭐 했지? 된 게 없네...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 종종 있다. 1년의 기초와 기말을 비교하면 분명 일이 진전돼 있겠지만 단기적으로는 내가 일을 해도 꾸준한 전진을 담보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요새는 팀원들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놀 걸 그랬어'라고 농담 삼아 말하기도 한다.

 그래도 막 복직했을 때의 막막함, 내 능력과 지식이 한없이 부족한 데서 오는 자괴감 같은 것들은 많이 해소되었다. 나의 능력이 그새 좋아진 게 아니라 시스템에 다시 익숙해졌고 새로 맡게 된 업무 관련 용어에 익숙해졌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필요한 사례나 데이터를 좀 더 잘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냥 대충, 꾸역꾸역 1인분은 하고 있지 않나 싶은 그런 상태이다. 크게 잘하거나 크게 못하지 않는, 눈에 띄지 않는 평균 능력치의 1인분.

 

 그리고 가정에서, 아이와의 시간이나 아이에게 쏟는 관심은 많이 줄었다. 시간이 줄어든 건 당연한데, 아이의 친구관계나 교육이나 여가시간 등등에 쏟을 시간이 확연히 줄어들면서 그런 일들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줄어버렸다. 이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내가 가진 시간과 관심을 아이에게 최대한 쏟아붓다가 성장과 함께 점차 줄여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하지만 아이가 1학년 때보다 더 나에게 끈끈하게 달라붙고, 잠자리에서 사랑한다고 의아할 정도로 수차례 반복해서 말하고, 밖에서 친구들이랑 놀 때도 엄마 집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당부하는 건 자연스럽지 않다. 안쓰럽다. 올해가 과도기이고 이 새로운 시스템에 점차 적응하며 괜찮아지겠거니 싶으면서도 우리 아이의 성격에는 지금 상황이 정서적으로 많이 힘든가 걱정이 된다. 

 아침에 등교한 뒤로 대략 오후 6시까지 기관을 오가면서 중간에 편안하게 집이나 놀이터에서 원하는 대로 휴식할 시간이 없고, 아플 때 바로 보살펴 줄 가족도 없다는 점을 본인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나에게는 참 속상한 일이다. 크게 아픈 일은 잘 없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회사에 있는 나에게 '엄마, 나 지금 배가(머리가, 다리가, 등등) 너무 아파서 걷기도 힘들고 학원을 못 가겠는데 엄마 언제 올 수 있어?'라고 전화가 온다. '나 혼자라도 병원 가면 안 돼?'라고 묻기도 한다. 그럴 때면 가급적 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휴가를 내고 집으로 오지만 그럴 수 없는 날도 있다. 

 남편은 아이가 스스로의 아픔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내가 너무 받아주는 것 같다는데... 내 눈으로 얼마나 아픈지 확인을 할 수 없는데 '아파도 그냥 학원 가'라든지 '아프면 집에 혼자 있어'라고 할 수가 있나? 학원은 보육기관이 아니고, 어른도 아플 때 집에 혼자 있으면 마음이 힘든 건데 만 8세 내 자식을 왜 아플 때 굳이 강하게 키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아프다고 호출되는 일이 반년 간 누적되니 친정 옆으로 이사 가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든다. 아이 영유아 시절에는 친정 도움을 받을 일이 없었는데 이제 많이 컸다 싶은 지금 오히려 고민이 된다. 

 한 가지 또 마음에 걸리는 점은, 아이가 1학년 때보다 더 줄글 책을 안 읽고 책이라고는 그저 학습만화만 보려 하는 점이다. 읽는 속도를 보건대 그야말로 스토리만 따라서 대충 읽는 게 확실한데, 그거라도 보는 게 낫나 싶기도 하고 찬찬히 글을 읽지 않고 빠르게 줄거리만 파악하는 나쁜 습관이 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1학년 방학 때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갔었는데 이제는 그런 시간이 없어서 그런지, 어차피 독서 취향은 개인의 몫이니 상관없는 일인지 모르겠다. 나와 남편은 일주일에 한 권 이상은 책을 읽는 편이고 아이와 외출할 때 온 가족 책을 한 권씩 챙겨나가는 등 나름의 환경조성은 하는데 책의 선택까지는 컨트롤하기 어렵다. 내가 골라준다고 읽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결론적으로, 복직하고 보니 회사생활은 힘들지만 어떻게든 (휴직 전과 비슷하게) 해나가는 거 같은데 육아에 있어서는 차이를 많이 느낀다. 시간이 없고, 체력과 마음에 여유가 없고, 함께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드니 아이의 정서적 안정감과 독립심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나아지겠지? 거쳐야 할 통과의례겠지? 할머니와 같은 동네에 살아서 언제든 찾아갈 수 있으면 좀 나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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