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 학교다.

건축수업. 제11강 건축시공

by 언덕 위의 건축가

어찌어찌하다 보니 중년여성 혼자 사는 집에 화장실이 다섯 개나 생겼다.

네 개는 원래부터 있던 것이었고, 하나는 새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원래 있던 화장실 중에 작은 것은 없앨까 생각했는데, 주인이 이 작은 화장실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서 그냥 두기로 했다.


처음 주인과 함께 이 집을 방문했을 때 이 특이하고 작은 화장실이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사실이다.

이 화장실은 현관문과 중문 사이, 요즘의 대형 아파트라면 팬트리나 작은 창고를 만들었을 자리에 있었다.

이 집은 지은 지 40년이 넘은 복층 빌라이다.

이 빌라에서 오래 산 이웃에게 들으니 옛날에는 입주 가정부들에게 사용하게 했던 화장실이라고 한다. 조금 씁쓸한 역사를 지닌 화장실이다.


공사를 한참 진행하고 있을 때 주인이 한 장의 사진을 보여준다.

"교수님, 저 화장실에 이런 세면대를 놓고 싶어요."

때로는 나를 교수라고 불렀다가 때로는 소장이라고 불렀다가 하면서 방황한다. 나 역시 그 방황을 즐긴다. 무엇이든 고정된 것은 재미가 없다.

사진이 작아서 재질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고목재(고재라고도 한다)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필름을 붙인 것 같기도 하다.

"구해오시면 달아드릴게요."

이런 것을 인테리어 목수에게 만들라고 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선뜻하려고 하지도 않지만 제대로 만들지도 못한다. 애를 써서 만들었는데 클라이언트가 만족해하지 않을 확률도 높다.


며칠 동안 여기저기 찾아보는 것 같더니 파는 곳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그 작은 화장실에 어울릴 것 같아서 직접 만들어 보기로 한다. 사진처럼 되지 않아도 책임은 내가 지면 되니까.


수소문해서 고재를 구하러 다닌다.

고재라는 것이 말 그대로 기성품이 아니어서 막상 가보면 마음에 드는 것이 별로 없다.

몇 군데를 다녀보고 그나마 어울릴 것 같은 것을 구해왔다.

구해온 고재는 두께가 얇아서 방습합판으로 골격을 만들고 그 위에 고재를 덧대기로 작전을 수립한다.

무엇이든 제작과정을 소비자에게 보여주면 만족도가 많이 떨어지는 법이다.

차고에 별도의 작업공간을 마련해서 제작하고 다음날 조용히 화장실에 걸어놨더니 주인이 만족해했다.


이 집의 다른 화장실들은 깔끔한 것을 선호하는 중년의 여주인 취향에 맞춰 약간의 톤만 바꿔가며 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로운 사진을 또 보여준다.

"소장님, 이런 것도 해주실 수 있어요?"

공사를 하는 도중에 요구사항이 변경되면 여러모로 일이 힘들어지지만, 말려야 할 정도로 나쁘지만 않다면 모처럼의 욕망을 채우게 해주는 것도 좋다.

문제는 목수팀이 목공 공정의 일을 마치고 모두 철수해 버린 상황이라는 것이다.

내가 직접 해야 한다.


좋은 우드슬랩을 구하려면 목재를 수입하는 인천의 대형창고를 뒤지는 것이 좋다.

사진에 보이는 우드슬랩은 보통 한 장에 2백만 원이 넘는다.

발품을 팔고 현장에서 파는 사람과 대화를 잘 나누다 보면 좋은 가격에 쓸만한 물건을 구할 수 있다.

목재를 고르고 운반하고, 대형 원형톱을 빌려와서 재단한 뒤 벽에는 지지할 앵커볼트를 밖는 작업을 하고 선반을 고정시킨다. 고가의 물건이고 세밀한 계획이 필요한 일이어서 서툰 사람을 쓰기가 어렵다. 힘쓰는 일에만 사람을 부른다.

사소한 에피소드를 글로 적는 것은, 이런 것도 할 줄 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건축학도가 있다면, 방학 때나 휴학을 했을 때 권해주고 싶은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빚을 내서라도 '혼자서' 여행을 해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건축 현장에 가서 일을 해보라는 것이다.


의외로 많은 건축가들은 젊었을 때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근대건축의 3대 거장에 절대 빠지지 않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 L. Wright)는 채석장의 석공이었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정교한 돌 디테일은 책에서 배운 것이 아니다.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 뿐만 아니라 수많은 대가들이 가구 정도는 직접 만들었고, 프랭크 게리( Frank O. Gehry)도 자기 집을 직접 지었다. 차운기의 작품이 깊은 완성미를 주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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