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수업. 제4강 도시를 읽다 -1
1990년대 초에는 동숭동이 지금의 홍대앞 같은 곳이었다.
지금도 혜화역 1번 출구 앞에는 과거 JS빌딩으로 불리던 건물이 있다.
조건영이 설계하고 1991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이 건물이 지어지자 일간지인 동아일보에 비평가의 글이 실렸다.
일간지에 공공건축물도 아닌 개인 소유의 건축작품에 대한 비평의 글이 실리고, 다시 이에 대한 건축가의 반박하는 글이 실리는 나름 그럴듯한 시대에 나는 건축을 배웠었다.
비평의 논지는 이랬다.(당시의 기사를 찾지 못해서 비평가가 누구였는지 알 수가 없다)
'대학로에는 김수근이 설계한 국제협력단 건물(현 서울대병원 부속건물), 문예회관(현 아르코 문화센터), 샘터사옥 등으로 '적벽돌 건물'이라는 문맥(context)이 형성되어 있다. 그 문맥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 이후에 다른 건축가들도 두손갤러리(현재는 멸실)와 같은 상업건물에 적벽돌을 소재로 사용하는 노력을 보탰다. 이런 도시의 문맥을 따르는 건축철학을 문맥주의(contextualism)라고 하는데, 파리와 밀라노 같은 도시가 이런 철학으로 각자의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조건영의 작품은 이런 도시의 문맥을 무너뜨리고 있다.'
당시에는 이런 논쟁이 종종 일간지에 실렸고 때로는 반박과 재반박까지 여러 차례 논쟁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조건영이라는 신인이 무어라고 반박할지가 궁금했다.
당시에는 피터 아이젠만을 위시한 많은 건축가들이 문맥주의(또는 맥락주의)를 나름대로 표방했기 때문에 나 같은 건축학도들도 거기에 많이 경도되어 있었다.
다만 대학로라는 젊은 가로에는, 문예회관이나 교회건축에나 어울릴 김수근식 답답한 벽돌 벽보다는 랄프 존슨과 같은 큰 유리창이 섞인 경쾌한 벽돌 벽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일주일 후 조건영의 해명이 같은 지면에 실렸다.
'나도 대학로의 문맥을 깊이 있게 읽었다. 그리고 그 문맥이 이 동숭동 1-35번지에서 끝난다고 해석했다. 그래서 그 스토리의 마침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디자인을 선택한 것이다.'
나름 유연하게 해명을 잘했다.
만약 조건영이 렘 콜하스처럼 'Fuck context !' 식으로 반박했다면 그 논쟁은 2회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살펴보면 조건영의 문맥해석은 오판이었다.(그의 해명이 진심이었다면)
대학로의 문맥은 JS빌딩에서 끝나지 않고 동성고등학교까지 연장되었고, 그가 중간에서 적벽돌이라는 문맥을 지워버리는 바람에 두손갤러리를 비롯한 다수의 건물이 사라지고 과거와 같은 적벽돌 거리라는 문맥은 희미해져 버렸다.
동숭동의 문맥에 대한 조건영의 해석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 개인적으로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의 길 하나쯤은, 벽돌이라는 하나의 소재 코드로만 문맥이 형성된 곳이 있는 것도 좋았겠다는 생각이어서 아쉬울 뿐이다.
거기에는 벽돌이라는 소재에 대한 나의 주관적인 선호도 작용한다.
일간지 지면에서 논쟁을 벌일 정도로 도시의 문맥은 중요한 고려대상이다.
도시의 문맥은 유럽의 도시나 북촌 한옥마을처럼 개별 건축물의 형태와 소재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스카이라인, 통경축 등의 개념도 넓게 보면 도시의 맥락을 구성하기 위한 개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도시의 오래된 골목을 탐방하고 일 년에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북촌한옥마을의 길을 걸어보려고 방문하는 것은, 개별적인 건물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 길과 그 골목의 문맥을 느끼려고 하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도시의 문맥은 길을 따라 구성되어 있는 것이고 그 문맥을 읽는 방법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는 방법 밖에 없다.
물론 도시는 살아있는 생명체여서, 북촌처럼 강제로 박제시키지 않는 한 그 문맥은 계속 바뀐다.
특히 서울은 그 생명력이 어느 곳보다 강한 곳이다.
고급주택가였던 서교동은 술집과 카페로 가득 찬 새로운 문맥으로 바뀐 지 오래고, 큰 공장들을 입주시키기 위해 60년대 초 최초의 공단으로 형성되었던 성수동도 상업지역으로 바뀌고 있다.
조용한 주택가였던 해방촌은 한때 경리단길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예쁜 카페와 식당의 거리로 바뀌더니, 최근에는 다시 평범한 주택가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요즘은 영세한 금속가공공장들로 가득했던 문래동의 골목들이 젊은이들의 거리로 바뀌고 있다.
원래 고미술 상점들의 거리였던 인사동은, 화랑 거리였던 시대를 지나 토속 기념품 판매점과 카페의 거리가 되더니 요즘은 옷가게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모든 길들은 각자의 다른 이유와 각자 다른 물리적 조건 때문에 서로 다르게 문맥을 형성하고 또 변하기도 하는 것이지만, 인사동의 최근 변화에는 아쉬움이 크다.
오랫동안 이런 길들을 살펴보다 보면 그 길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 지도 짐작할 수가 있게 된다.
건축가에게 요구되는 역량 중 하나이다.
나는 학생들의 설계수업을 지도하면서 설계할 대상부지를 성동구 행당동의 한 블록에 한정해서 선택하라고 한다. 서울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동네다.
이렇게 설계프로젝트의 사이트를 평범한 한 동네에, 그리고 모두에게 동일하게 국한시키는 수업은 매우 드물다.
두 가지 교육적인 이유가 있다.
첫째는 건축가는 건물을 짓고 싶은 땅을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의뢰받은 대상지를 해석하는 것이 건축가의 주된 일이다.
둘째는 그런 성격이 뚜렷하지 않은 땅에서 문맥을 읽어내는 훈련을 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능력이 향상된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무슨 훈련이 되겠는가.
그런 평범한 길에서 문맥을 찾아내는 것은 마치 바둑을 흰돌 한 가지로만 두는 것과 비슷하다. 쉽지 않지만 훈련 효과는 좋다.
학생들에게 대상지에 새벽에도 가보고 한밤 중에도 다시 가보라고 한다. 비 오는 날의 그 골목 모습과 화창한 날의 모습도 구분해서 관찰하라고 말한다. 그 모습들이 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그 모든 것이 합쳐져서 그 땅과 길의 문맥이 된다.
그런 이유로 수시로 가볼 수 있는 학교 앞의 땅을 주는 것이다.
모두에게 같은 동네의 땅을 주는 것은, 문맥의 해석에도 조건영의 경우처럼 저마다의 주관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는 이런 도시문맥을 읽는 훈련으로 한 학기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이 나온다. 건축가들 사이에는 꽤 고증이 잘 된 영화로 평가받고 나 역시 칭찬을 아끼지 않는 작품이지만*, 실제로 '도시읽기' 한 꼭지로만 건축학개론 한 학기 수업을 하는 경우가 있을 지는 의문이다.
건축학개론은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건축수업'의 모든 주제를 한 학기에 가르쳐야 하는 과목이다.
잘 만든 영화에 토를 달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혹시나 영화를 보고 건축학개론이라는 수업을 착각하는 학생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언급한다.
서울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다이내믹한 개발과 변화의 과정을 거친 도시이다. 그 강한 생명력 때문에 건물이 바뀌고 거리의 문맥이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그 생명력의 근원인 길을 없애는 것은 조심해야 할 일이다.
이 도시의 건물은 대부분 새 건물들이다. 백 년이 넘은 건물은 거의 없다.
그래도 서울의 여러 길을 산책하다 보면 동네마다 또는 가로마다 고유한 문맥이 느껴진다. 그리고 깨닫게 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 동네와 길의 문맥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길의 생김새라는 것이다.
생김새를 구체적으로 말하면 길의 선형과 크기이다.
나는 이것을 도시의 지문(指紋)이라고 말한다.
이는 도시형태학(Urban Morphology)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자.
* 감독이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