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수업 13강. 건축설비
'건축입문'이라는 매거진은 건축과 1, 2학년을 염두에 두고 쓰는 책의 일부입니다. 또 이런 류의 책이 아쉬웠던 제 청소년 시절도 생각하며 쓰는 글입니다. 책에 담길 대부분의 글은 브런치에 게재하지 않습니다. 가끔 건축에 남다른 관심을 지닌 분도 계시기에 일부를 각색해서 올립니다. 건조한 글입니다.
겨울 새벽, 인적 없는 드골공항 택시 정류장에서 택시를 부르니 검은 메르세데스가 달려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적이 없던 이유는, 우리만 빼고 모두들 RER기차를 타고 파리로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미리 렌트해 둔 집에 도착하니 200프랑이 나왔다. 큰 금액이었다.
우리에게 집을 빌려준 사람은 파리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한국 유학생이라고 했다.
그녀는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는데, 남아공 현지로 자료수집을 떠나면서 집을 빌려줬다.
파리 9 구역, 몽마르트르를 향해 올라가는 벨르퐁 가에 있는 그 집은 영화에서 보던 전형적인 파리의 아파트였다. 그 집 맨 꼭대기 층에 우리가 살았다.(화살표 부분의 반대편. 길 쪽은 비싸다)
오늘의 건축 이야기는 이 집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도시계획과 건축구조, 설비, 전기, 조명의 이야기다.
사진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들 파리나 로마 하면 떠올릴 전형적인 길과 집들이다.
길이 좀 넓거나 사람들이 많은 곳이면 1층에는 상점이나 카페가 있다.
저 건물들의 구조가 무엇일 것 같냐고 물어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석조건물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저 모든 건물은 뼈대가 나무인 목조건물이다.
기둥과 보, 바닥 모두 목재로 되어있다.
심지어 외벽의 돌처럼 보이는 것들도 진짜 돌인 경우는 거의 없다. 일종의 시멘트인 스터코로 돌 모양을 흉내 낸 것들이다.
만약 파리나 로마의 어느 건물에 들어갈 기회가 있어서 유일하게 눈으로 볼 수 있는 계단이 나무계단이면, 그 집은 목조건물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돌은 하나도 쓰이지 않았다.
파리를 포함한 북부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같은 평야지대에서 강도 높은 돌은 구하기 어려운 귀한 재료였다. 사람들은 유럽과 미국의 목조주택이 멋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단지 저렴하기 때문에 선택된 것일 뿐이다. (실제로 콘크리트 구조는 목조의 3배, 석조는 5배 이상으로 비싸다)
돌을 다룰 줄 아는 석공(masonry)도 귀한 기술자였다.
희소의 가치를 지닌 그들이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다니는 지위(프리메이슨 freemasonry)를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저 길의 대부분 건물은 19세기 후반에 지어졌다.
나폴레옹 3세(나폴레옹의 조카)와 오스만남작이 1827년부터 30년 동안 파리의 대부분 건물들을 헐어버리고 나서, 당대에는 시원시원 했을지 몰라도 요즘으로서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가로망을 만든 후에 지어진 것들이다.
오스만남작이 합벽건물을 허용하는 대신, 건물의 규모를 5층으로 한정한 것은 지금까지도 건물을 신축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여러 가지 제약에 스며들어 있다.
그 덕분에 통일감 있고 아름다운 가로풍경을 유산으로 지키게 되었다고 파리지앵들은 자랑한다.
(따지고 보면 미국 보스턴의 건물들보다 나이가 어리다)
그 덕분에 30년 전에 살던 골목의 집들이 지금 찾아가도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
미국 그 넓은 땅으로 옮겨온 유럽인들의 밈(meme, 원래 '사회적 유전자'라는 뜻으로 도킨스가 만든 단어다)에 그런 유산이 고스란히 심어져 있어서, 그들은 고개를 90도로 꺾어야 하늘을 볼 수 있는 맨해튼을 만들면서도 전혀 어색해하지 않는다. 볼 수 있는 자연이라고는 하늘밖에 없는 뉴욕에서.
우리는 살짝 고개만 들어도 건물 위로 산을 볼 수 있는 도시에 살면서도, 종묘 앞에 세우려고 하는 건물이 통경을 방해한다고 머리채를 부여잡고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불쌍한 파리지앵들은 괜찮을지 몰라도 나 같은 서울사람이 파리에 몇 달 만 살아보면, 저 빽빽이 가로막고 있는 건물들과 도대체 구분도 안되게 똑같은 거리의 풍경들이 얼마나 숨을 막히게 하는지 모른다.
'택시'같은 액션영화의 자동차 추격전을 찍기에는 너무나 좋다. 우리같이 건물 사이가 숭숭 뚫린 도시에서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추격신을 찍는다면 얼마나 웃기겠는가.
파리는 납작한데도 답답한 특이한 도시다.
만약 귀스타프 에펠이 300m 높이의 아무 용도도 없는 탑을 세워놓지 않았더라면, 그 답답함은 열 배 더했을 것이 분명하다.
파리지앵들이 톨레랑스가 좋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은 신경질적이다.
서울사람들은 욱하고 화는 잘 내지만 신경질적이지는 않다고 잠시 파리지앵들과 살아본 나는 생각한다.
런던에서 자란 처칠이 본인의 신경질적인 성격을 인정하면서 '인간은 건축을 만들고, 건축은 다시 인간을 만든다'라고 말한 것이라면, 적어도 그는 자기 객관화는 되는 사람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애초에 저 건물들은 엘리베이터도 없고 전기도 수도배관도 심지어 하수관도 없이 지어졌다. 철근콘크리트도 아직 발명되지 않았고, 저 건물을 받치고 있는 나무기둥들은 최소한 100년이 넘은 것들이다.
다들 알다시피 물은 길어다 먹고 용변은 요강에 본 후 옷장에 넣어두었다가 그냥 창문으로 쏟아버렸다.
목욕은 그야말로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었다.
W.C라는 명칭, 하이힐과 부츠, 가발과 파우더룸 그리고 향수는 모두 상하수 시설의 부재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길거리에 널려있는 오물에 대한 무신경함과 온갖 전염병의 발생에 대한 이유도 단지 물리적인 부족 때문만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관념의 부족이 더 크다.
20세기 들어서 여러 가지 배관설비와 전기, 전등 그리고 엘리베이터 같은 기술이 발명되었다. 그 대부분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영국에서 시작된 것들이다.
그들이 층고도 낮고 개축도 어려운 목조건물에 그런 신문명을 억지로 이식시킨 흔적을 보면 눈물겹다. 오래된 한옥에 전등을 달기 위해 나무 대들보에 '애자'를 박아서 전선을 배선한 것과 똑같다.
(여기서 끊고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