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명법에 대한 짧은 지식
우리의 첫아기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프랑스 파리에 일을 하러 가게 됐다.
임신 8개월 때였고 추운 12월이었고 파리에는 친인척 한 명도 없었고 처음 겪는 해외 생활이었다.
파리로 이주하고 얼마 안 되어 그곳의 산부인과에 산모 건강검진을 하러 갔더니, 초음파검사를 하던 의사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딸이군요" 했다. 한국에서 여덟 달 동안 병원에 다니면서도 못 물어봤던 것을 1분도 안되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은, 프랑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일주일 안에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한국에서는 한 달 안에 신고하면 됐었다.
아기가 태어나야 성별을 확인할 수 있는 한국에서는 아기 이름을 지을 시간이 필요해서 그런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출산일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었지만 마침 한국에서보다는 비교적 한가한 생활을 하던 중이라서 성의를 다해서 이름을 지어주리라 마음먹었다.
아기의 이름을 만드는 것을 '이름을 짓는다'라고 표현한다.
집을 짓고 배를 짓고 밥을 짓는 것처럼 이름을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서 '짓는다'라고 하는 것이다.
나처럼 독특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지가 않았다. 그때는.
그래서 파리에 있는 한국 헌책방을 뒤져서 작명법에 대한 책을 몇 권 구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아빠가 되는 때였으니 그랬었다. 지금은 소위 작명법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어떤 대상을 책으로 공부하는 것은 꽤 집중해서 잘하는 편이다. 심지어 수영이나 골프 같은 운동도 이론을 통해서 먼저 이해하고 시작한다.
한국식(?) 작명법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주역 같은 동양철학 책을 조금 읽었었던 것도 당연히 도움이 됐었다.
어려운 것은 그 작명법으로 아기에게 맞는 이름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작명법에 따라 이름 짓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름을 '짓는'것과 이름을 '찾는'것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소위 작명가에게 돈을 주고 하루도 안 걸려서 지어온 이름은 모두 작명가가 기계적으로 '찾아 준' 이름이다. 결코 좋은 이름이라고 할 수 없다.
이론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이름을 찾는 일에는 대강 네 개의 기준이 적용된다.
1. 태어난 생년월일시 즉 사주 해석에 따른 아이의 성향
2. 사주 풀이에 의한 음양오행
3. 이름 발음의 음운학적 조화
4. 성을 포함한 전체 이름의 한자 획수
작명법을 설명하기 위해서 쓰고 있는 글이 아니니 간단하게만 언급한다.
1. 사주 해석 : 주역에 의해 사주를 해석하는 것인데 제대로 하기에 너무 어려운 것이다. 사실 어렵다기보다는 모호한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하는 작명가를 본 적도 없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그들의 수준 정도로 사주를 해석하는 것은 의외로 쉽다. 시중에 있는 주역 관련 책 한 권 참고해서 해당 사주의 괘와 그에 대한 해석을 검색하면 된다. 책마다 그 해석이 제멋대로인 것이 흠. 책을 쓸 정도로 주역에 대한 공부가 진심인 사람들의 해석이 그럴 정도이니, 단 몇십 분 만에 서너 개의 이름을 적어주고 돈을 받는 작명가들의 해석 실력은 말할 것도 없다.
2. 음양오행 : 사주를 풀어 오행(나무(木), 불(火), 흙(土), 쇠(金), 물(水))의 유무와 다소를 따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주에 부족한 것을 새로 지을 이름의 한문 글씨로 보충한다는 원리다. 전근대시대 사람들의 소박하고 간절한 소망이 느껴지는 항목이다. 만세력 참조하면 십 분도 안 걸린다. 그 결과에 대한 해석은..... 역시 기분 내키는 대로다.
3. 음운학적 조화 : 이 항목을 작명 원리에 포함시키는 작명가는 드물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이 항목만이 유일하게 참조해서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항목이다. 훈민정음의 창제원리와 연결되어 있다.(음운학을 작명원리로 쓰는 작명가도 훈민정음 창제원리까지 이해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지만)
보통 세 음절로 이뤄지는 우리나라 이름의 발음이 음양의 관점에서 조화를 이루고 나아가서는 오행의 균형도 이루는 것이 좋다는 원리이다. 훈민정음은 지금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발음기호인데, 모음과 자음을 음양과 오행으로 나눌 수 있다. 가령 'ㅏ'는 양, 'ㅓ'는 음이다. (이 부분을 공부하면 왜 세종 임금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인지 알게된다)
우리는 강감찬이라는 한문 이름을 가진 친구를 '감찬아'하고 부르겠지만 단 한 번도 그 한문 뜻을 인식하면서 부르지는 않는다(한자를 발음하는 방식이 우리와 다른 중국 사람들은 그 뜻도 인식하면서 부른다).
참고로 '강감찬'이라는 이름은 '양+양+양'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매우 남성적 또는 외향적으로 들린다(세 음절 모두 받침이 있어서 어느 정도 보완은 해주고 있긴 하다. 과연 고려시대에도 그 발음이 "강감찬"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우리에게는 한글식 발음만이 중요하다. 한국어로 부르기 좋고 듣기 좋아야 한다.
당연히 중국식 작명법이나 일본식 작명법에는 있을 수 없는 항목이다. 뒤에 말하겠지만 그 이유로 대부분의 작명가들이 인정하지 않는 항목이기도 하다.
4. 마지막은 이름자 한문의 총획수이다.
이것에는 아무런 논리도 없다. 혹자는 오랜 세월 축적된 통계에 의한 법칙이라고 설명한다. 총획수가 29인 이름의 사람들은 공무원이 되었고 단지 한자로 이름을 쓸 때 한 획이 모자란 28획의 이름을 지닌 사람들은 예술가가 되었더라 하는 식이다.
위 네 가지 항목을 맞추는 이름을 찾는 것도 쉽지는 않다.
내가 연습 삼아 옥편과 만세력, 주역책을 옆에 놓고 가상의 사주로 이름을 찾아보면 몇 시간은 족히 걸린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에게 어울릴 이름까지 고려해서 찾으면 또 시간이 더 걸린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부모의 철학 또는 희망과 어울리는 이름을 찾으려면 며칠은 족히 걸린다.
철학이라고 해서 대단할 필요는 없다.
귀여운 이름, 예쁜 이름, 독특한 이름 또는 평범한 이름, 말 뜻에 특정한 바람이 들어있는 이름, 트렌디한 이름, 고전미가 느껴지는 이름, 아이가 커서 닮았으면 하는 사람의 이름 같은 것이 철학이다.
첫애가 여자아이라는 것을 알고 나는 너무 여성적인 이름보다는 약간 중성적인 매력이 있는 이름 그리고 밝고 넓은 의미를 지닌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