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첫 아기 이름 짓기(2)

작명법에 대한 짧은 지식

by 언덕 위의 건축가

첫 아이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려고 한 계획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자 내 어머니께서

"네가 무슨 이름을 지을 줄 안다고 그러니. 내가 아는 스님에게 부탁해서 받아오마."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어머니 성격을 알기에 끝까지 내 주장을 고집하지는 않고 대신 몇 개를 받아 오시면 그중에서 고르기로 하였다.


어머니는 세 개의 이름을 받아오시고 나는 받아온 이름들을 채점해 봤다.

지금 그 이름들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는데,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로 기준 삼은 것은 4번의 획수인 듯했다.

두 번째는 2번 음양오행, 하지만 세 이름 모두에게 정성스럽게 따진 것은 아닌 듯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여자아이에게 무난히 쓸 수 있는 이름.

나의 전체적인 평은 그리 많은 시간을 들이거나 전문가의 식견이 느껴지는 이름들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이름에 가족의 갈등이 담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여 개중에 제일 나은 것으로 아이의 이름을 정했다.


나중에는 주변의 사람들 중에서 유명하다는 작명가에게 이름을 샀다는 사람들의 이름을 몇 개 수집해서 같은 방식으로 검산을 해봤다.

결론은 비슷했다. 앞에 열거한 네 가지 또는 세 가지(음운학을 빼고)를 꼼꼼히 따지고 그 뜻도 훌륭한 이름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심지어 억지로 획수를 맞추느라 동원된 듯한 한자(원 뜻은 이름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데 이름에 넣기 위해서 '이름 0자'라는 뜻이 추가된)도 사용되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숙달된 작명가라고 해도 옥편에서 자동으로 최적의 글자를 찾아낼 수는 없다.

웬만하면 아는 글자 중에서 조합해야 받은 보수에 맞는 서비스가 될 테니까.

여하튼 작명가의 작품 중에서는 이름 잘 지었다고 생각되는 이름을 찾을 수 없었지만, 간혹 공부를 하신 친할아버지가 지었다는 이름 중에서는 좋은 이름을 볼 수 있었다. 역시 이름을 짓는 것은 정성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지금부터의 얘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 이후에도 작명학에 대해 취미처럼 공부를 하다가 어느 날 내가 전혀 쓸모없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역사책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게다가 성리학의 석학들 뿐만 아니라 왕의 이름들조차도 한결 같이 내가 아는 작명법에 맞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심지어 조선의 왕은 모두 한 글자 즉 외자의 이름을 썼다). 내가 알기로는 고려 때뿐만 아니라 조선의 학자들도 음양오행과 주역에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 또는 그들의 자식들 이름은 작명법 따위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지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를 알아봤다.


결론은 우리가 우리의 전통문화로 믿고 쓰고 있는 작명법이 일제강점기 시절에 들어온 일본식 작명법이라는 것이었다.

일제가 조선의 백성들에게 일본식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일본식 이름과 성을 지어 본 적이 없는 동네의 훈장님을 찾아가기보다는 당시 우리 땅에 들어와 있던 일본 승려와 무당들에게 가서 이름을 지어 온 것이었다. 이것이 지금까지도 마치 우리 고유의 문화처럼 여겨지고 있는 작명법의 뿌리가 된다.

특히 한자의 획수를 따지는 작명법이 가장 어이가 없는 대목이다. 일본의 무속인 신도에는 이런 것들이 가득차 있다.


그 이후로 기회가 있으면 지인들에게 스스로 아이의 이름을 지으라고 권해준다.

이름은 부모에게 받은 신체 이외에 가장 오래 사용하는 인공의 정체성이다.

좋은 이름을 아이에게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글로 지어도 좋고 한자로 지어도 좋다.

주역도 필요 없고 만세력도 필요 없다.

한자로 지으려면 옥편이나 인터넷을 탐색할 필요는 있다. 어렵지 않다.

그나마 임진란 이후부터 내려온 풍습이니 돌림자를 써도 무관하지만 안 써도 된다.

굳이 권한다면 발음은 신경 쓰면 좋다. 음운학을 좀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부모가 머리를 맞대고 아이의 이름에 담을 철학을 의논하고 고르는 것이 어설픈 작명가에게 몇 푼 돈을 주고 사오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정성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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