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을 위한 변명
2월은 항상 건조한 풍경으로 떠오른다.
변두리 동네에는 터만 닦아 놓고 집은 아직 짓지 않은 공터가 계단식 다락논처럼 만들어져 겨울풍경을 건조하게 만드는데 일조를 하고 있었다. 사대문 안이나 강남이 아닌 이상 강북의 어느 동네에나 그런 언덕은 있었다.
그런 언덕에는 나무들도 한그루 남아 있지 않고 흙무더기나 토목자재들만 널려있었다.
겨울이고 건조하고 황량하고.... 때로는 위험했다.
우리 집에서 큰길 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문익환 목사님 댁을 지나서 그런 언덕을 하나 넘어가면, 조병옥 박사묘 못 미쳐서 친구 상민의 집이 있었다.
2월 말의 일주일. 봄방학이라고 부르던 기간이어서 며칠 지나면 고3 수험생이 되는 부담감이라도 느꼈을 뻔 한데, 그랬던 기억이 전혀 없다. 학교는 꾸준히 다니고 있었지만 가고 싶은 대학도 없었고 되고 싶은 직업도 없었던 것은 분명히 기억난다.
가끔씩 쉬는 날 상민의 집에 가는 이유는 그 집에 있는 소설책들을 읽기 위해서였다. 우리 집에는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었고 그의 집에는 더 이상 책을 읽을 사람이 없었다.
점심까지 얻어먹고 방바닥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있는데 거실의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고 온 상민이 말했다.
"내가 만나는 여자애가 있는데, 같이 걔 만나러 명륜동에 가자"
갑자기 여자친구와 약속을 잡고 그만 집에 가라고 하기가 미안해서 하는 소리다.
"괜찮아. 난 집에 갈테니까 너 혼자 만나러 가."
난 그렇게 친구의 부담을 덜어주고 일어섰다.
"아니야, 걔 친구도 한 명 오기로 했으니까 너 오늘 꼭 같이 가야 돼."
서울에서는 드물었던 남녀공학 고등학교를 2년 동안 다니면서도 여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도 없고 사귀고 싶은 마음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더욱이 다음 주부터는 고3 수험생이 되는 때였었다.
하지만 결국 명륜동에 함께 나갔다.
우리는 장미촌다방의 제일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상민의 여자친구의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출입구 쪽을 보면서 앉았고 상민과 그의 여자친구는 나를 보고 앉아 있었다.
명륜동이라 통칭되었던 성균관대학교 일대는 대학로가 형성되기 이전에 서울 북쪽 방면에서는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던 동네였다. 그 동네에서 장미촌다방은 제일 크고 대로변 1층에 있어서 항상 사람들이 많았다. 더욱이 개강을 일주일 앞둔 때여서 실내에는 대학생들로 가득했고 내가 바라보고 있던 출입문으로 쉬지 않고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신촌에 독수리다방이 있었다면 명륜동에는 장미촌다방이 있었다. 장미촌은 시인 박종화가 활동한 문학동인지의 이름이다.
셋이서 나누는 대화가 흥미 없었서였는지 아니면 온다는 사람이 궁금했던 것인지 출입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계속 보고 있었다.
한 여학생이 들어왔다.
'쟤구나.'
나는 그녀가 우리의 테이블로 올 것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꽤 세련된 외모였지만 남들의 이목을 주목시킬 만큼 특출 나게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당연히 사복 차림이었지만 고작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꾸며 봤자 대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굳이 특이사항을 꼽으라면 당시의 여느 여고생들과 달리 긴 머리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 정도였다. 하지만 그 커피숖에 있던 여대생들도 대부분 긴 머리였었다.
무엇 때문에 수없이 드나드는 여학생들 중에 그녀를 한 번에 알아봤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어떤 기분도 읽히지 않았던 그녀의 표정 때문이었을까.
넷이서 커피숖을 나와 한 군데의 식당과 또 한 군데의 주점을 돌아다니고 나서 집으로 갔다.
마침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아서 그녀와 같은 버스를 탔다.
함께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그녀가 나에게 지금 몇시인지 물어봤었나 보다.
훗날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커피숖, 식당, 주점까지 함께 있었는데, 집에 갈 때까지 네 목소리 처음 들은 건 버스 안에서 시간 알려주는 소리였어. 당연히 내가 네 마음에 안 드는 줄 알았지."
그녀의 회상이 사실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속단은 사실과 달랐다.
침묵이 꼭 부정의 표현인 것은 아니다.
침묵은 말 그대로 비어있는 문장일 뿐이다.
그날 저녁 나의 침묵에 대한 그녀의 기억이 사실이라면, 그건 그만큼 내가 온종일 머리 속에서 아무런 문장을 만들고 싶지 않은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이 비어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마른 종이를 겨울 햇볕에 널어서 다시 말린 것만 같았던 내 십대 후반의 어느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