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을 위한 변명
3월이 되었고 고3 수험생이 됐다.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어떤 조바심이나 막막함이라도 생길 줄 알았는데 그것 조차도 없었다.
목표가 없는 배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속도를 조정하거나 방향을 점검할 필요가 없는 무미한 항해를 하는 중이었다. 단지 3년의 항해기간 중에 삼분의 이는 지나갔다는 느낌이었다.
담임이 바뀌고 반의 친구들이 바뀌었지만 한 가지 바뀌지 않은 것은 또다시 반장을 맡은 일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늘 그 모양이었다. 도합 5년 동안 어머니가 단 한 번도 담임을 찾아가지 않는 뚝심을 보였으면, 이제 그만 시킬 만도 한데 또 강제로 떠맡게 된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1학기만 맡는 조건이었고 2학기에 반장을 맡을 녀석과 담임과 함께 3자 약속까지 했다. (고3의 2학기가 되자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담임을 가끔 찾아오는 그 녀석의 모친 덕분이었다고 기억한다.)
고3의 학교 생활은 이래저래 더욱더 건조하게 흘러갈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상민의 전화를 받았다. 상민은 3학년이 되어 다른 반으로 배정되었었다.
" 너 저번에 만났던 J가 너희 집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는 모양인데...... 알려줄까?"
잊고 있었던 일인데 의외로 그 말이 반가웠다.
"나한테 걔네 집 번호를 줘. 내가 할게."
3월 치고는 꽤 많은 눈이 내렸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일요일 오전에 만나기로 했다. 특이한 시간인 것이 분명한데 그 이유는 생각나지 않는다.
우이동 큰길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는 도선사 입구길로 조금 올라가면, 8번 버스 종점 앞에 알프스제과점이 있었다.
그곳 창가에서는 백 미터쯤 떨어진 큰길 가의 버스정류장까지 아무런 장애물 없이 내려다보였다.
휴일 오전이라서 제과점 안에는 나밖에 없었다.
창가로 내려다 보이는 길 위에도 아무도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맑은 겨울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비어 있는 길에는 하얀 눈만 햇살을 눈부시게 반사하고 있었다.
언덕 아래 정류장에 몇 대의 버스가 서지도 않고 지나갔다.
얼마 뒤 한 버스가 멈췄다가 떠난 뒤, 빨간 점 하나가 남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하얀 풍경 속에서 그 빨간 코트가 언덕길을 걸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몇 분 동안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흐르고...... 세상은, 하얀 백지위에 아주 느리게 커지는 빨간 점 하나만 보이는 그림이 되어갔다.
눈부셨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신기하게도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밥을 먹으면서도 술을 마시면서도 한마디도 안 했었다는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날도 아마 빵만 먹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날 무슨 대화를 했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4월이 되었고 내 항해의 목적지가 우연히 선정되었다.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상민이와 함께 신촌에 있는 그의 외삼촌 댁을 방문한 것이 고3의 4월이었는지, 아니면 그건 그 전의 일이었는데 4월이 되어서 그때의 영향이 구체화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상민의 어머니 심부름으로 방문한 외삼촌댁은 신촌에 있는 3층짜리 주택 겸 병원이었다.
1층에는 진료실이 있었고 아마도 위층에는 삼촌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건물이 꽤 좋아 보였다.
외삼촌은 정신과의사였다.
병원의 대기실은 마치 부잣집 응접실처럼 운치 있게 꾸며져 있었고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는 한 명도 없었다.
더 운치 있는 것은 진료실이었다. 상민의 삼촌은 진료가운도 입지 않은 채 고급스러운 체어에 앉아서 클래식 음악을 듣고 계셨었다. 어린 귀에도 그 소리가 고급스러웠다.
멋진 서재처럼 꾸며진 진료실의 서가에는 의학책 대신 많은 레코드판이 꽂혀 있었다. 오래된 기억이라 어느 정도 각색이 되었겠지만, 의사에 대한 나의 통념을 깨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상민의 말에 의하면 환자가 많은 광경을 본 적이 없는데도 외삼촌은 부자로 산다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엇인가 되고 싶은 것이 생겼다. 정신과 개업의가 되어서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는 것.
나중에 보니 비현실적인 상황설정이었지만, 그 시절 우리에게는 직업정보라는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점심도시락을 점심시간에 먹는 것을 허용하는 것 외에는 학교가 제공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서울대를 학교마다 몇십 명씩 들어가고, 제 알아서 작가나 화가도 되는 시절이었다. 학교는 하는 일이 없었다. 특히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말이 되든 안되든 목표라는 것이 생기니 배의 성능과 방향을 점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괜찮은 의대에 지원하기에는 성적이 부족했다. 특히 수학이 엉망이었다.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머리를 짧게 깎았다. 머리를 기르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지만 빡빡으로 미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허용되는 것은 점심 도시락을 점심시간에 먹는 것뿐이었다.
머리를 최대한 짧게 자른 날 저녁에 그녀가 공부하고 있던 독서실로 찾아갔다.
남들이 봤다면 웃기는 얘기를 했다. 헤어지자고.
대낮에 빵집에서 빵 한번 먹은 것이 전부인 주제에 진지하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런데 그녀 또한 나와의 이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훗날 서로 확인도 했지만, 우리는 둘 다 알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의 첫사랑이 될 것을.
헤어지기로 약속하고 다시 만날 약속도 그자리에서 했다.
날짜는 11월 대입시험을 본 바로 다음날, 만날 장소는 혜화동 촛불잔치로 정했다.
그렇게 나의 고3은 4월에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