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눈먼 자들을 이용하는가
2024년~25년의 겨울, 중앙박물관에서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라는 전시를 했다. (지금도 Egon Schiele의 한글 표기가 '에곤 실레'인 것이 어색하다.)
나만 그런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에곤 쉴레는 우리나라 일반 대중들이 잘 알지 못하는 화가였다.
나 역시 40대가 될 때까지 에곤 쉴레를 잘 알지 못했다.
건축의 근대사 중에서 구스타프 클림트가 활동했던 '빈 세제션(Wien Secession)' 대목, 특히 아돌프 로스(Adolf Loos)를 좋아했기 때문에 구스타프 클림트와 그 주변 인물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였다.
사실 구스타프 클림트도 이외수가 1981년에 그의 소설 '들개'에서 언급하기 이전에는 대중들에게 낯선 화가였다.
이유는 하나다. 중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작가에 대한 정보는 대중들에게 전달될 통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술학도는 아니었지만 중고교 시절부터 열심히 전시회를 찾아다녔던 내가 모른다면 내 나이 정도의 일반인들 대부분 몰랐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모르면 무시한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명하지 않으면 무시한다. 내가 문화문맹인 또는 문화홍위병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다.
나중에 인터넷 등 여러 매체가 생기고 나서, 내가 에곤 쉴레의 그림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대부분 이맛살을 찡그리고 추접한 춘화를 보듯이 반응했다.
내가 에곤 쉴레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2007년이었다.
선배와 함께 40대 남자 둘이서 유럽을 여행하고 있었다.
하루는 빈의 벨데베레 궁전에 갔다. 클림트의 '키스'가 상설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에곤 쉴레의 그림을 실물로 처음 봤다. 그것도 여러 작품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충격이었다. 반나절쯤 전시장을 떠나지 못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안 하던 짓을 했다.
박물관 매점에 가서 그의 작품 중 하나의 포스터를 구입했다. 크기가 작지 않은 포스터여서 긴 화통을 나머지 유럽여행 내내 들고 다니면서 동행한 선배에게 핀잔을 들었었다.
"넌 조그만 기념품 하나 안 사는 사람이 그 귀찮은 물건은 왜 사서 고생이냐"
그런 핀잔을 받으면서도 애지중지하며 나머지 나라들을 여행하고 나서, 인천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공항버스에 그 포스터를 두고 내린 일은 그 선배가 나를 만날 때마다 상기시켜 주는 잊지 못할 에피소드이다.
이후에 에곤 쉴레는 내가 좋아하는 화가의 앞손가락에 꼽히게 되었다.
당연히 지난겨울 중앙박물관에서 있었던 전시회에 가고 싶었다.
전시회는 3월 초 까지였고 1월 초에 표를 예매하려고 했다.
모든 표가 팔리고 없었다.
이 나라에 에곤 쉴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진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 지금도 믿지 않는다.
얘기를 잠시 앞으로 돌려서, 2016년 겨울에 예술의 전당에서 근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에 대한 전시회가 있었다.
갑자기 르 코르뷔지에 열풍(?)이 불었다. 동네 강아지뿐만 아니라 유재석이 진행하는 예능프로의 참가자들도 모두들 르 코르뷔지에 전시회를 말하고 그의 오두막에 대한 감격을 얘기했다. 당연히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이나 강아지는 없었다.
나는 르 코르뷔지에를 존경한다.
전문가라면 르 코르뷔지에 같이 대중들이 잘 아는 사람보다는 카를로 스카르파나 오스카 니마이어 같이 전문가스러운(?) 건축가를 사랑한다고 말해야 폼이 날 테지만, 나는 코르뷔지에를 존경한다.
심지어 나는 나 스스로를 일컬어 코르뷔쟌(Corbuisian)이라고 말한다.
당시 나는 예술의 전당에서 슬리퍼를 신고 걸어도 5분 이내에 도착할 거리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다. 가봐야 사진과 도면 또는 모형 정도 전시해 놓았을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지만 전시회에 가보기로 했다. 예술의 전당 길건너의 사무실에 있는 5년 동안 줄기차게 갔던 숱한 기획전시에서 그랬듯이 실망할 것을 각오했지만 그래도 갔다. 르 코르뷔지에의 전시이니까.
2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입장료를 지불한 것은, 한 시간이나 줄을 서서 들어간 것에 비하면 덜 억울한 일이었다. 전시를 다 보는 데에는 십 분이 채 안 걸렸다.
전시장을 나와서 아마도 처음으로 페이스북을 통해 지인들에게 보낸 만류의 메시지는 이러했다.
"화가 르 코르뷔지에를 보러 2만 원을 내고 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린 내 발등을 찍고 싶다."
팸플릿에는 분명히 프랑스의 거장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라고 적혀 있었지 스위스의 동네 화가였던 르 코르뷔지에의 전시라고 되어 있지 않았다. 화가로서의 르 코르뷔지에는 입장료가 공짜라도 갈 필요가 없는 화가이다.
전시장에는 실망을 각오했던 도면 한 장 모형 한 점조차 없었다.
심지어 전시장의 오두막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세계 또는 미술세계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물건이며 심지어 진위 여부도 알 수 없는 제작품이었다.
많은 기획전시에 사기를 당해봤었지만 전시기획사의 이름까지 확인해 본 것은 그 전시가 처음이었다.
코바나콘텐츠라는 회사였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이름은 잊어버렸다. 나중에 다시 떠올리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