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머니를 알 수 있을까? (1)

친구가 돌려준 편지에서 다시 만나는 어머니

by 언덕 위의 건축가

대학시절 아주 가깝게 지냈지만 최근에는 자주 보지 못했던 친구를 만났다.

그런 친구를 만나면 누구나 느끼게 된다.

'너, 하나도 안 변했다.'

열여덟의 나이를 넘어서면, 사람은 별로 바뀌지 않는다. 다만 낡아질 뿐이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친구로부터 한 묶음의 손으로 쓴 편지를 전송받았다.

군복무시절에 내가 그 친구에게 보낸 편지들이었다.

그 편지들을 여태 간직하고 있어 주었다는 것이 고마웠다.

전혀 기억하고 있지 못하는 자신의 옛 글들을 만난다는 것이 참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편지는 주로 1987년에 쓴 것들이었다.

4월에 전두환이 직선제 개헌 안 하겠다고 말한 뒤, 6월까지 여러 명의 죽음과 온 국민의 분노가 있었고 결국 12월에 직접선거를 치를 때까지 군대의 내부에도 살벌한 공기가 1년 내내 지배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선거 전 6개월 동안 원래의 보직이 아닌 교육계 업무를 해야 했다. 기간병들과 방위병들을 대상으로 노태우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세뇌교육을 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당연히 모든 서신들이 강화된 검열을 받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도 허무맹랑한 몽상가의 글 같은 것들이었지만, 군복 입고 찍은 사진들 속에서는 찾아낼 수 없었던 내 스물두 살 시절의 내면을 다시 대면하는 신선한 경험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가끔씩 궁금해왔던 하나의 의문이 풀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어머니는 살갑고 자애로운 분이 아니었다.

아버지와의 별거 기간 동안 혼자서 우리 남매들을 키워야 했던 상황이 당신의 성격을 자갈밭처럼 거칠게 만들었다고 말씀하시곤 했지만, 어머니 유년시절에 대한 이모님들의 증언과 나중에 아버지와 다시 함께 살게 된 이후의 행태를 보면 자상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인 어머니의 성품은 태생적인 것이었다.

어머니의 자식 중에서 나는 비교적 편애(?)를 받고 자란 편이어서 나의 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어머니의 성품이 그러했다고 묘사하는 것이다.


당신의 성품이 그러했고 그 덕분에 나 역시 어머니와 속 깊은 얘기를 나눠 본 기억이 없다.

일제강점기에 초등학교를 다닌 것이 전부인 어머니의 교육 수준과,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꾸며 자식들을 양육하느라 하숙도 치고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일수놀이도 하던 어머니에게는 자식들의 일도 자식들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어머니와 아들이 마음속 깊은 얘기를 나누는 것 같은 것은 상상해 본 적도 없다. 어쩌면 나뿐 아니라 그 시절의 모두가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나의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일화가 생각난다.

대학입시 발표를 하고 한 참 지난 어느 날 어머니가 내 방에 들어오셨다.

"앞집 중용이 엄마를 만났는데, 중용이가 D대학에 합격했다고 하더라. 너는 어느 대학 가니?"

"H대학 가기로 했어."

"그랬구나." 하며 어머니는 다른 말씀 없이 방을 나가셨다.

아무리 그 시절이라고 해도 한 지붕 아래에서 사는 모자간에 이런 대화는 희귀한 것이었다.


거의 사십 년 만에 되돌려 받은 친구의 편지 덕에 군대시절을 잠시 회상하니 어머니와 연관된 세 개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하나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편지이다.

군대에 간 아들로서 당연하게 어머니에게 가끔 편지를 썼을 텐데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은 것은 평생 동안 그 한 통이 전부였다.

당시의 군 복무는 30개월이었고 내가 첫 휴가를 받아서 집에 온 것은 입대하고 12개월이 지나서였다. 당연히 전화통화 같은 것은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어머니의 편지를 처음 받아서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지금 그 편지를 보관하고 있지도 않고 그 내용 역시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편지 속 글에 사용된 어휘와 어머니의 감정 표현등이 나를 많이 놀라게 했었다. 마치 내가 알던 어머니가 아닌 고등교육을 받은 어느 중년여성이 쓴 글처럼 여겨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전에 나는 어머니가 책을 읽거나 무언가를 쓰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또 한 가지는 어머니가 어느 날 불쑥 면회를 오셨던 일이다.

나는 같은 시기에 전방부대에서 힘든 군복무를 하던 나의 형님과는 다르게 남해안의 후방부대에서 꽤 안락한 군대생활을 하고 있었고, 당연히 부모님들에게도 걱정할 만한 얘기를 전달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토요일 오후 행정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누가 면회를 왔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면회 올 사람이 없다고 의아해하면서 면회실로 가니 어머니가 연락도 없이 와계셨다.

깜짝 놀라서 왜 오셨냐고 물으니까, "네가 보고 싶어서."라고 말씀하셨다.


친구가 돌려준 편지 덕분에 군대시절을 회상하면서 떠오른 어머니와의 에피소드 중 가장 특이했던 것은 세 번째의 이야기다.

말년 휴가를 나오니 어느 날 어머니가 안방으로 나를 불렀다.

정색하고 모자가 서로 마주 앉은 것도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제대하고 나면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말고 어머니라고 불러라"

"네" 바로 존댓말이 나왔다.

"그리고 제대하면..." 하면서 놀랄만한 말씀을 하셨다.

"복학하지 말고 다시 시험 쳐서 네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해라."

나는 너무 놀라서 뒤로 자빠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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