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돌려준 편지에서 다시 만나는 어머니
누구나 그렇듯이 얼떨결에 들어간 건축학과였지만, 2학년이 되자 나는 '사랑'에 빠졌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건축을 좋아하게 되었다. 남는 모든 시간을 자기들과 함께 당구장과 술집에서 보낸 것으로 아는 당시의 친구들이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나는 학교 도서관에 있는 건축 관련 서적을 거의 모두 읽었다. 책을 대출하고 다시 반납하는 절차가 방해가 되어서 당구장과 술집의 약속이 없는 거의 모든 시간을 학교 도서관의 서고 구석 바닥에 앉아 책을 읽으면서 보냈다. 책을 읽는 일 외에 또 한 가지 한 것은 서울 시내의 골목골목을 혼자서 탐색하는 일이었다. 다른 기회에 자세히 쓸 수 있기를 바라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훌륭한 공부를 혼자서 하고 있었다.
당시에 내가 읽은 책들은 지금도 학생들에게 권할 정도로 훌륭한 스승들의 눈부신 저술들이었다. 20년 넘게 건축과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스물한 살 때의 나처럼 건축에 대한 지식을 탐닉하는 학생은 보지 못했다.
가끔 3학년인 나의 학생들에게 농담 섞어 이렇게 말한다.
"내가 2학년 때 읽은 독서량만으로도 지금의 너희를 가르치는 데에 아무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제발 책 좀 읽어라 이놈들아)"
그랬던 충성심 깊은 건축학도에게 건축에 대한 사랑을 버리게 만든 것은 학교였다.
3학년이 되자 설계수업을 어느 시공학 교수가 맡았서 진행했다.
그 이후 대학원시절과 교수시절을 포함해 30년 넘게 학교생활을 했지만 시공 전공 교수가 설계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그는 매주 실무자들이 상세도면을 하나 던져주고 다음 주까지 그것을 베껴오는 숙제를 내주었다. 설명이라고는 그 도면에 담긴 시공내용 뿐이었다. 그것이 당시 국내에서 두번째라고 꼽으면 섭섭해할 대학의 건축학과 3학년 설계수업 전부였다.
1학기를 겨우 마치고 나니 2학기를 등록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집안에 여유는 없었지만 일찍이 나의 아버지 후원으로 유학을 가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계시던 숙부의 언질 덕분에 학부를 곧장 마치고 유학을 갈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당장 학교 다니기가 너무 싫어져서 덜컥 휴학계를 제출하고 군에 입대해 버렸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어머니와의 상의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군대는 나를 다시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하는 병과로 배치했다.
자대에 가서 행정반에 배속되어 보니 대학 또는 대학원에서 건축공부를 하다가 온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
행정반 책장에는 건축잡지들이 꽂혀 있었고 한가한 시간에는 건축에 대한 학구적인 대화들이 오고 갔다.
그들은 나에게도 그런 대화를 던졌지만 나는 건축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고 답해줬다.
대신 내가 탐닉하기 시작한 것은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이었다.
그 시절 군대에서 사병이 독서를 해봐야 얼마나 하겠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약간은 특이한 업무를 수행한 덕분과 함께 가뜩이나 부족했을 수면시간을 네 시간 정도로 줄여가며 독서를 한 덕분에 꽤 많은 책을 읽었다.
이런 기록도 있다.
'내가 글을 깨우친 것이 군대에 온 가장 큰 수확이다.'
믿기 어렵지만 젊은 시절 읽어야 할 중요한 인문적 도서들을 나는 군대에서 대부분 읽었다.
나중에 제대를 하고 복학을 한 뒤에 고등학교 동문회에 가니 옆자리에 독문과를 다니는 후배가 앉아있었다.
얘기가 이상하게 흘러 토마스 만이나 잉게보르크 바하만 같은 독일 문학에 관한 대화를 나누게 됐다. 내가 게오르규 루카치가 쓴 '독일 고전주의 문학 비평'의 내용을 들면서 몇 마디 했나보다. 그러자 그 후배가 "형, 우리 과 애들 중에 그 두꺼운 책을 형처럼 다 읽은 애는 한 명도 없을 거야. 도대체 형은 무슨 군대를 갔다 온 거야?"라고 할 정도였다.
첫 휴가의 기억도 독특했다.
집 떠난 지 만 1년이 지나서 받은 첫 휴가는 2주일이었다.
친구에게 돌려받은 편지에서 확인하지 않더라도 친구들이 끔찍하게 만나보고 싶었을 텐데, 휴가를 나와 집으로 돌아온 후에 다시 집에서 나와 외출을 한 것은 꼬박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였다.
그 일주일 동안 나는 군대에서 몰래 숨겨가며 썼던 초고를 원고지에 옮겨 적었다. 원고지 200매 정도 적는데 일주일 정도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원고를 들고 일주일 만에 대문 밖으로 나와서 '문학사상'지에 소포로 부치고, 그날부터 남은 일주일간 친구들과 술을 마시느라 그 대문으로 거의 다시 돌아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군대시절을 보냈고 그 시절 내 생활과 내면의 단편이 친구 H에게서 돌려받은 편지에 조금씩 묻어 있었다.
제대가 다가올 즈음, 싫어서 떠났던 건축과로 다시 복학을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군대에서 이런저런 공사현장을 겪고 그 공사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아저씨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학생 때와는 조금 다른 성격의 건축에 대한 애정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다만 군에 와서 알게 된 다른 세상, 철학과 문학 같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었다.
설마 내가 그 시절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그런 내면을 비추었을까? 절대 그럴 일은 없었다.
나는 속을 들킨 것 같은 당혹스러움도 살짝 있었지만 그보다는 갑자기 궁금증이 생겨 어머니께 물었다.
"그럼 어머니는 제가 건축 말고 무슨 공부를 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