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돌려준 편지에서 다시 만나는 어머니
어머니의 대답은 놀라웠다.
"너는 역사나 심리학 공부 같은 것이 어울려."
중고교를 다닐 때는 종종 학교 대표로 뽑혀서 사생대회를 나갔을 정도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고3 때에는 의대를 가겠다고 잠시 열심히 공부를 했던 적도 있고, 학기말에는 아버지와 담임의 합동작전에 넘어가서 육사 시험을 치고 합격한 이력 등은 어머니가 알고 계셨겠지만, 역사나 심리학 공부를 암시할만한 어떤 말도 한 적이 없는데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공부는 역사와 심리학이었다.
건축공부가 싫어서 휴학을 했다는 얘기도 비추인 적이 없었다.
나는 많이 놀랐다.
제대를 앞둔 그 당시에 철학이나 심리학 또는 문학이나 사학으로 다시 대학입시를 볼까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의식 속에서는 그런 갈증이 심하게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 스스로도 내 핏속에는 이과의 피가 1그램도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던 때였다.
순전히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어리석음으로 고2 때 이과를 선택했지만, 대입의 목표도 의대 정신과전문의였고 육사를 가게 되더라도 정보계열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으며 마지막 전공을 정한 것도 건축공학과가 아니라 건축학과인 것을 보아도 그렇다.
내가 다닌 대학의 공대에 수학 점수가 백분율로 50점 미만인 채 합격한 신입생은 아마 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수학 성적이 나빴기 때문에, 고3 내내 시험준비라고는 '수학의 정석'을 껴안고 끙끙댄 기억밖에 없다.
대신 국어와 영어는 수업시간에 듣는 것으로 끝내야 했다. 그래도 수학 점수는 전교 평균 정도도 안 됐고 국어와 영어는 항상 최고 점수가 나왔다.
공대에 입학해서 심지어 대학원에서까지 숱한 고등수학을 이수해야 했지만, 단 한 번도 F학점을 면하지 못했으며 나는 아직도 미분과 적분의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당연히 이런 사실은 어머니뿐만 아니라 가족 누구도 몰랐다.
나의 어머니는, 당신의 입에서 심리학이라는 단어가 나온다는 것도 신기할 정도로 '무식한' 분이셨다. 나의 오해나 편견이 아니라 실제로 무식한 분이셨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분이 '복학하지 말고 다시 공부해서 역사학과나 심리학과로 가라'는 말을 하셨을까.
한동안 그게 궁금했었다.
최근에 지난날을 돌이켜보는 '시간의 풍경'이라는 글들을 쓰면서, 또 이번에 친구로부터 군인 시절에 썼던 글을 돌려받아 읽으면서 생각한다.
내가 어머니에게 썼던 그 상투적인 편지 어딘가에도 나의 내면이 조금은 묻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을 어머니는 어머니이기 때문에 알아내고 계셨던 것 아닐까.
어머니는 생각보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어머니를 너무 몰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