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석집과 위스키 (1)

재미없는 군대 이야기

by 언덕 위의 건축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정림건축에 입사했다.

하루는 몇몇 사람들과 식사를 하다가 군대 시절 얘기가 나왔다.

어쩌다 보니 군복무시절에 보안대에 끌려갔던 얘기를 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한 선임이 이렇게 말했다.

"그때 너 잡아오라고 한 사람이 나야."


1987년.

아직은 겨울이 한참인 2월 초였다.

중대 행정반 내 자리에서 뒤를 돌아보면 창문 너머 취사장의 슬레이트 지붕이 보였다.

창원시 소답동.

아무리 최남단의 후방부대라 하더라도 군부대 안의 겨울은 항상 춥고 쓸쓸하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안다. 아주 추운 새벽보다는 산그늘이 연병장을 점령해 오고 으슬으슬 추워지기 시작하는 해 질 녘이 더 춥게 느껴진다는 것을.


취사장 지붕에 꽂혀있는 담배꽁초처럼 생긴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기어 나오고 슬금슬금 짬밥 익는 냄새가 번져오면 하루 일과가 끝나간다는 신호다.

갓 상병 계급장을 단 뿌듯함을 만끽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중대장은 벌써부터 점퍼를 입고 퇴근 준비를 하고 있고, 이제 그가 행정반 문을 나서면 뒷마무리는 졸병들에게 맡겨두고 총알같이 식당으로 달려갈 일만 남았다.


갑자기 행정반 문 앞에 승용차 한 대가 멈췄다. 그리고 사복차림의 한 남자가 선글라스를 끼고 행정반으로 들어왔다.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승용차, 사복, 선글라스, 거침없는 입장.... 모든 것이 불길한 징조다.

"OO이가 누구야?"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중대장이 자리를 차고 뛰어나왔다.

눈이 사슴보다 커진 중대장이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선글라스가 말했다.

"보안대에서 왔습니다. OO상병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나를 보며 말했다.

"모자만 쓰고 그대로 따라와."

심장이 멈춰버렸다.

정리하던 서류를 채 덮지도 못하고 자동기계처럼 모자를 쓰고 그를 따라 나갔다. 승용차를 탈 때까지 중대장은 '이유가 뭐냐' '어디로 데려가냐' '언제 복귀시킬 것이냐' 같은 질문 한마디를 못하고 입만 벌리고 있었다.

승용차가 출발하기 전에 대대 내 가장 선임 대위인 3 과장이 자기 사무실에서 뛰어나왔다. 나를 많이 아껴주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우리 중대장과 몇 마디를 나누고서는 차가 출발할 때까지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다.

1987년이었고 그 시대는 그런 시대였다.


차는 사단 정문을 빠져나가 시내로 들어갔다.

지방의 소도시이지만 퇴근시간이어서 차는 천천히 가고 있었다. 공포심을 증폭시키기 딱 좋은 속도로.

내 옆에 타고 있는 선글라스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노트가 발각된 것일까?'

내가 남몰래 쓰던 몇 개의 노트마다 글의 성격이 달랐고, 모든 노트는 각자 다른 장소에 숨겨놓고 있었다.

문제가 될만한 노트는 딱 한 권이라고 생각되는데, 그 노트는 공병창고 깊숙이 숨겨놓았고 창고의 열쇠는 방금 전까지도 내 서랍 안에 있었다.


방향감각이 적당히 사라질 때쯤 차는 어느 커다란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얼핏 본 문 앞의 간판에는 'OO공사'라는 상호가 한문으로 적혀 있었지만, 사무실이라기보다는 작은 학교나 공장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잘 가꿔진 잔디밭 건너에 아무 특징이 없는 하얀색 2층 건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단층의 건물이 하나.

선글라스는 나를 데리고 2층의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에 정문을 지키던 초병 이외에는 아무도 마주친 사람이 없었다.

선글라스는 나를 방안에 둔 채 어디론가 나가버렸다.

방은 일종의 회의실처럼 보였다. 중앙에 큰 테이블이 있었고 뒷편에는 책상과 의자 몇개 그리고 벽에는 칠판이 걸려 있었다. 말하자면 간부용 회의실이라기 보다는 실무진급의 회의실처럼 보였다.

선글라스는 한참이 지나서 무언가를 잔뜩 들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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