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주의 건축과 양자역학
2025년. 올해가 양자역학이 태어난 지 백 년이 되는 해이다. (막스 플랑크를 시작으로 치면 백 년이 넘었지만, 나는 하이젠베르크를 좋아하기에 올해라고 생각한다. 많은 학자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양자역학의 역사에 대한 콘텐츠를 많이 띄우고 있다.
내가 양자역학이라는 흥미로운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30년 전이다.
1993년 여름, 영화 '쥐라기공원'이 국내에서 개봉됐다.
많은 관객이 영화를 보러 갔지만 나는 보지 않았다. 대체로 SF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당시에 나는 학생이었는데, 학교 서점에서는 가끔씩 서점 앞마당에 매대를 펼쳐놓고 재고처리를 하곤 했다.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는 가급적 놓치고 싶지 않았던 시절이라 그때마다 나는 서점에 들러 이런저런 책을 싸게 샀었다.
하루는 매대의 책들을 구경하다가 빈손으로 나오기가 싫어서 두 권으로 된 마이클 크라이튼의 '쥐라기공원'을 샀다. 내 취향의 책은 아니었지만 싸서 샀다.
재미있는 이야기여서 금세 다 읽어버렸지만, 특별히 대단하다고 할 만한 대목은 없었다. 유일하게 나의 주목을 끌었던 장면은 수학자 말콤 박사가 섬으로 초대받아 가는 비행기 안에서, 아직 가보지도 않은 쥐라기공원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었다.
소설에서 박사는 혼돈이론(Chaos Theory)의 전문가로 나오고, 그가 쥐라기공원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곳이 '열린 계(Open System)'가 아니라 '닫힌 계(Closed System)'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참 뒤에 보게 된 영화에서는 이 대목이 짧게 다루어졌다는 것을 알았지만, 소설에서는 이대목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소설가는 작품 속 인물 누군가에게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기 마련인데, 쥐라기공원의 등장인물 중에서 마이클 크라이튼의 페르소나는 주인공 그랜트 박사가 아니라 말콤 박사였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나의 경우 그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그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 것은 소설의 본문이 아니라 소설이 끝난 뒤에 열 페이지쯤 붙어있던 해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마이클 크라이튼이 쓴 내용도 아니었다.
소설을 우리말로 번역한 번역가가 누구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양자역학' 또는 이를 바탕으로했던 '신과학운동(New Science Movement)'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나 보다.
그는 소설 속에서 말콤 박사가 말했던 '혼돈이론', ' 열린 계와 닫힌 계' 등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도와주려고 부록을 덧붙이다가, '엔트로피(Entropy)', '프랙탈 구조(Fractal Structure)',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로렌츠 끌개(Lorenz attractor)',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 등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도 잔뜩 소개해 놓았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런 얘기를 처음 들었었다.
곧장 교보문고로 달려가서 관련된 책들을 사가지고 왔다. 그중에는 일본의 어느 작가가 양자역학을 알기 쉽게 설명해 놓은 만화책도 있었다.
지적 호기심이란 이런 행동이 유발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당장 밀린 과제 제출도 뒤로 미루고, 도움도 안 되는 책들을 제값 주고 사 와서 밤을 밝히며 읽는 행동.
그리고 그 분야에 대한 나의 독서는 줄을 이어서 계속 됐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토마스 쿤과 제레미 리프킨을 넘어서 60년대 미국 서부의 히피 물리학자들이 갔던 길, 즉 불교철학과 노자, 장자까지 읽게 된다. (지금도 양자역학이 이해안되면 노자의 도덕경을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물론 그래도 이해가 안되지만...)
덕분에 불안 불안하게 미루고 있었던 과제 제출의 날짜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 과제는 내 석사논문을 무슨 주제로 쓸 것인가를 정하여 제출하는 것이었다.
석사논문 주제의 범위는 대개 정해져 있다. 각자가 속한 연구실의 연구분야라는 것이 있고, 먼저 쓴 선배들의 논문과 맥락을 함께하는 것이 보통이다.
나도 거기에 맞춰 대략적으로 정해놓은 주제가 있었다. 그걸 쓰면 논문을 제출하고 학위를 따기 수월했다. 석사논문 따위에 인생을 거는 바보는 없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