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수업 제2강. 기본과제
학기가 시작되면 첫 주부터 마지막 주까지 매주 한 장씩 제출해야 하는 과제를 준다.
그래서 대략 학생들은 이 과제를 학기 동안 열 장 정도 제출한다.
이 과제는 의무가 아니며 과제에 대한 나의 평가도 없고 성적에 반영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해준다.
건축과와 실내건축과에서 설계수업을 시작한 지 몇 년 지난 후에 우연히 해 본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효과는 대단히 컸다. 그래서 그 이후로 언제나 이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늘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건축대학은 교육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훈련의 장소이기도 하다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과제는 건축설계의 가장 기초가 되는 '읽기'와 '쓰기'의 기본을 훈련시키기 위한 것이다.
과제는 단순하다.
A4 용지 한 장에 사진 두 장과 단순한 문구 한 줄을 넣어서 제출하는 것이다.
1. 본인이 머문 아무 건물 또는 아무 공간에 대해 사진 두 장을 찍을 것. (정확하게 두 장이어야 함)
2. A4 용지에 그 두 장의 사진을 배열할 것. (크기와 위치는 자유, 하지만 두 장 사진의 크기는 반드시 달라야 함)
3. 타이틀 박스 - 제목 또는 카피문구를 넣을 것. (위치와 글자체, 크기, 내용은 자유)
4. 기사 박스 - 열 줄 이상의 글을 넣을 것. (역시 크기와 위치, 글자체는 자유, 내용은 중요하지 않음)
*덧붙임(1)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던 90년대까지는 이 과제 수행의 효과가 훨씬 뚜렷했다.
필름을 쓰던 학생들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신중하게 앵글을 정하고 최소한의 사진만 찍었다.
대상에 대해 여러 포인트와 앵글로 뷰파인더를 맞춰보고 그중에서 좋은 뷰를 찾아내고 나서야 셔터를 누르는 것과, 쉽게 많은 컷을 찍은 다음에 한두 장 고르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어느 정도의 차이냐면, 디카로 수십 장의 사진을 찍은 학생에게 방금 찍은 피사체에 대해 물어봐도 대답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뷰파인더를 통해 대상을 신중하게 관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렸을 때에는 집에 암실을 만들어 놓고 사진을 찍었을 정도지만, 나는 기술의 진보를 늘 지지하는 사람이기에 지금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대신 앞에 말한 행위의 차이를 설명해 주고, 디카로 찍더라도 가급적 컷 수를 최소화하라고 말한다. 적어도 한 앵글에서는 한 장만 찍으라고 한다. 그러면 뷰파인더 너머의 피사체를 주목하게 되고 이 과제의 취지, 즉 사물과 공간 심지어 빛까지를 분석하는 힘을 키우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는 '카메라는 사람들에게 카메라 없이 세상을 보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도구이다'라는 기록 사진작가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의 말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덧붙임(2)
두 장의 사진 중 한 장의 사진은 가급적 대상의 건물 또는 공간에 대한 최대한 많은 정보를 담은 사진으로, 다른 한 장은 본인이 느낀 그 공간의 성격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부분의 장면을 찍으라고 주문한다.
*덧붙임(3)
기사박스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냥 아무 말을 써도 되고 노래 가사를 적어도 된다고 말한다. 그 공간에 대해 짧은 기사를 써보는 것도 매우 좋겠지만, 학생들이 이 부분에서 많은 부담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부담을 덜어주었다.
하지만 타이틀은 나름대로 잘 정해서 써보라고 한다. 다른 기회에 설명하겠지만 이 정도의 어휘를 만들어내는 훈련은 꽤 중요하다.
건축디자인과 말 만드는 것이 무슨 상관일까 하겠지만 분명 관련이 있다. 말을 못 만든다는 것은 머릿속에 어휘가 없다는 것과 비슷하며, 머릿속에 어휘가 없으면 생각도 못 만들게 된다. 건축에는 생각이 필요하다.
*덧붙임(4)
과제는 매주 메일로 제출받고 보관만 한다. 그리고 마지막 주쯤에 각 학생들이 맨 처음 제출했던 것과 마지막에 제출한 것들만 뽑아서 전체 학생들에게 보여준다.
별달리 설명할 필요도 없이 학생들 스스로가 느끼게 된다. 한 학기 동안 자신들의 눈과 손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여기에 첫 주와 마지막 주의 과제를 사례로 보여주고 싶지만 혹시 다음 학생들에게 스포일러가 될 우려가 있어서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