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수업 제2강. 기본과제
매주 한 장씩 이 과제를 수행하면 학생들이 얻게 되는 능력 또는 습관 중 하나는 공간과 건축물을 나누어서 보는(분석하는) 버릇이 생긴다는 것이다.
첫 시간, 이 과제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학생들에게 질문한다.
"여러분들이 이 강의실에 오기 전에 지나왔던 1층 로비의 천장이 어떤 재료와 어떤 패턴으로 되어 있는지 기억하는 사람 있나요?"
또는 "1층 출입구 옆 높은 벽의 재료나 구성을 기억하는 사람 있나요?"
강의실 로비는 학생들이 매일 사용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대답을 제대로 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한 학생을 지목해서 질문을 바꾼다.
"그럼 1층 로비의 전체 느낌을 말해봐요."
여기에 글로 전달하기는 힘들지만 이 건물의 1층 로비는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면적이 꽤 넓은데도 그곳에 머물러서 쉬고 있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는다든지 하는 행위를 하는 학생은 없다.
단순히 지나가야 하는 공간으로 느껴지는, 전반적으로 썰렁한 느낌의 공간이다.
단순히 통로의 기능을 하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면적이 넓다. 그래서 더 썰렁하게 느껴진다.
대체로 지목받은 학생도 그렇게 자신의 느낌을 표현한다.
"그럼 그 공간이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지 설명해 봐요."
나름대로 이유를 설명하는 친구도 있고 전혀 그렇지 못한 친구도 있다. 대체로 정확하게 설명하는 학생은 없다. 여기서 한 학기의 교육이 시작된다.
이 건물 로비의 '썰렁함'은 잘못된 기둥 및 가구의 배치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상쇄시킬 수도 있었을 마감재료의 잘못된 선택이 원인이다.
학생들에게 그 구성과 재료들을 상기시켜 주면 이해를 한다. 그들은 '로비의 그 부분 재료가 그것이었나?' 하며 떠올려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디자인 훈련의 시작은 '읽기'에서 시작된다. '읽기'를 못하는 사람이 '쓰기'를 잘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재주의 한계를 느끼고 건축설계가 아닌 건축시공의 직업을 택하는 친구에게도 '읽기'는 필요하다.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은 어느 분야에서나 요구되는 기초능력이다. 건축에서의 텍스트는 건물과 공간이다. 읽을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읽기'는 누구나 할 줄 알고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집, 오전에 방문했던 쇼핑센터, 지금 수업을 듣고 있는 학교 등에서는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지난여름 방문했던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나 원주에 있는 '갤러리 산'에서는 의식하고 그 건물을 읽었다고 말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방금 전 학생이 로비에 대해 느낌을 얘기한 것, 그리고 관광객들이 바르셀로나에서 읽었다고 하는 것, 그것을 '감상'이라고 한다.
우리가 영화관에 가도 그런 식으로 영화를 읽는다. 전체를 보고 느낌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전문가는 그렇게 감상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감상할 수가 없다. 촬영감독은 영화를 보는 내내 장면의 테이크 길이가 눈에 들어오고, 조명 감독은 저 장면에 쓰였을 조명의 개수와 심지어는 조명장비 브랜드까지 궁금해져서 영화에 몰입을 못한다. 몰입을 못하니 영화를 감상할 수가 없다. 감상을 못하면 감동도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촬영 기가 막히게 했네', '저런 조명 장비로 저렇게 좋은 영상을 만들어내다니, 대단하다.' 같은 부류의 감동이 따로 있다. 물론 영화감독의 눈에는 영화의 줄거리 전개와 배우의 발성, 카메라 워킹까지 모든 것이 머릿속을 파고들 것이다.
우리 건축가가 건물을 읽을 때도 영화감독과 비슷해진다.
일종의 직업병에 걸리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프로라고 한다.
프로가 된다는 것은 '분석'하는 직업병에 걸린다는 뜻이다.
분석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쪼개서 본다'는 말이다. 어느 정도로 쪼개서 보게 되냐면.
나는 주머니에서 조그만 칼과 드라이버가 달린 도구를 꺼내 보여준다.
마감재료가 무슨 성분인지 어떻게 시공되었는지까지도 궁금해진다. 그래서 몰래 긁어 볼 때도 있다.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으니까.
작은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공간과 건물을 포착한다는 것은, 대상을 물리적으로 분할한다는 의미와 함께 시간을 나눠서 보는 경험도 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앉아 있을 때의 공간과 지나쳐갈 때의 공간까지 나눠서 보게 된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 훈련을 하고 나면, 카메라 없이 건물 앞에 서도 한눈에 그 모든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건축대학은 프로를 만드는 곳이다.
당연히 '읽기'부터 가르쳐야 하고 '읽은 것을 이해하는 법'도 가르쳐줘야 한다. 하지만 우선 읽는 습관부터 길러줘야 한다.
아쉽게도 나 역시 그런 훈련을 받은 적이 없고, 그런 교육을 시키는 곳도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수천 장의 사진을 보는 것은 학생시절에는 주의해야 할 공부이다.
사진은 잘 찍은 사진일 뿐 건축 텍스트는 절대 아니다.
학생시절의 나처럼 매주 하루는 카메라를 메고 서울의 골목골목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것도 학생들에게는 권해줄 만한 공부다. (그 시절처럼 사진은 하루에 24장 이내만 찍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