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거리가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만삭의 배를 코트 속에 품은 채, 아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가는 나를 찍고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의 로비는 유리 피라미드 아래 지하층에 있었고, 내가 루브르에서 찾은 가장 좋은 포토존은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에스컬레이터를 올려보는 장면이었다.
갑자기 아내가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고 환하게 웃는다.
'제 신랑 잘생긴 것 처음 알았나? 사람들 다 쳐다보는데 쑥스럽게...'
가벼운 농담이 머리를 스쳤다.
그런데 아내의 시선은 내가 아니라 내 뒷사람에게 가 있다.
뒤를 돌아봤다.
내 몇 단 뒤에서 몇 명의 남자들이 아내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1년 전.
국립중앙박물관 현상설계팀이 1차 공모를 통과한 뒤, 최종 공모안을 제작하기 위해 인원을 보강한다는 이야기가 사내에 돌았다.
크게 관심은 없었다.
당시 회사는 설계실을 네 개의 본부로 나누어서 각 본부마다 특화된 프로젝트만 진행하게 재편한 상태였다.
그전에는 여덟 개의 실로 나뉘어 있었고 모든 실이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체제였었다. 따라서 현상설계도 실마다 돌아가면서 했었다.
재편된 이후 나는 상업건물을 주로 설계하는 본부에 배속됐다.
그리고 현상설계만 전담하는 본부가 따로 만들어졌다. 어차피 국중박 현상팀의 인원보강도 그 본부에서 이뤄질 일이었다.
대체로 사물의 명칭을 줄여서 부르는 것을 싫어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프로젝트 이름을 부르던 시절에도 겨우 '중앙박물관' 또는 '박물관' 정도로 줄여 불렀다. 하지만 요즘은 국립중앙박물관을 '중앙박물관'이라고 부르는 것을 전혀 보지 못한다. 그냥 같이 국중박이라고 불러보자.
내가 속해있던 본부에서 한창 진행하던 프로젝트들은 이제 막 한국에 생기기 시작했던 '창고형 매장'들이었다. 코스트코와 까르푸가 영업을 시작했고 E마트가 1호점 공사를 시작했을 때이다. 그 모든 회사들이 우리 회사에 설계를 맡겼다. 운이 좋았든지 누군가 선견지명을 가지고 영업을 잘했든지 했었나 보다.
건물은 대형창고 같이 생겼지만 그 설계에는 어느 교과서에도 쓰여 있지 않은 새로운 개념들이 적용되어야 했다. 아직 창고형 매장에 가서 물건을 사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공부를 해가면서 설계를 했다. 여하튼 그 본부에서의 일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내가 본부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한 일이 있었다면, 그 본부에서 유일하게 현상설계를 하나 맡아서 했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CJ도 창고형 매장 사업을 하려고 했었나 보다. (당시의 사명이 제일제당이었는지 CJ였는지 확실치 않다). 우리 본부에 프로젝트 의뢰가 왔다.
특이한 것은 3개 회사를 지명해서 현상설계로 설계사를 선정하겠다는 것과, 창고형 매장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함께 있는 복합건물이라는 것이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라는 것을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아직 CGV가 생기기 전이다. 만약 그 프로젝트가 지어졌다면 CGV 1호점이 됐을 것이다.
본부장이 불러서 갔다.
"현상설계를 하나 해야 되는데, 진대리가 맡아줘야겠어."
"제가요?"
회사에서 겨우 대리가 현상설계 메인 디자이너를 한 역사는 없었다.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삼백 명이나 모여 있는, 국내에서 두 번째라고 얘기하면 성질내는 회사였다. 더욱이 우리 본부에는 현상설계 팀을 구성할 여건도 되어있지도 않았다.
"어쩔 수가 없네. 우리 본부에서 하는 것으로 결정됐고, 진대리 말고는 할 사람이 없다."
"내 밑으로 사원이라고는 두어 명밖에 없는데, 그 친구들 데리고 하라고요?"
"걔들 말고 다른 대리들 붙여줄게"
이야기가 멀리 가는 것 같으니 여기서 줄이자.
동료 대리들이 우정 넘치게 팀원 노릇을 수행해 줬고, 덕분에 나의 안이 1등으로 당선됐다.
멀티플렉스 영화관 얘기만 살짝 하자면.
듣도 보도 못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대해 스터디를 시작했다. 당시 자료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지금 기준으로는 상상할 수가 없다.
영화를 보려면 대한극장이나 명보극장에 가던 시절이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그랬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라는 것은 미국의 서부와 호주에만 있는 특이한 극장이었다.
단층으로 된 영화관 중앙에 매표소와 매점이 있는 로비를 두고, 거기에 방사형으로 상영관을 네 개에서 여섯 개쯤 붙인 뒤 가운데 로비 위층에 하나의 영사실만 만들어 효율적으로 기능하게 한 형태였다.
그리고 영화관의 주변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는, 땅 넓은 나라의 교외에서나 가능한 개념의 시설이었다.
CJ에서 준 땅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넣으려면 상영관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 어디에도 그런 영화관은 없었다.
아무튼 그 현상설계를 잘 수행해 낸 덕분이었는지 국중박의 최종안 현상설계팀에 차출되어 합류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