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거리가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아내를 향해 손을 흔들던 남자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도 나를 보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함께 국중박 현상설계를 했던 최 OO대리, 김 O팀장, 박 OO 씨였다.
서울에서도 이렇게 우연히 마주치기는 힘들 텐데, 한 겨울 파리의 에스컬레이터에 함께 타고 있으니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었다.
나보다 더 놀란 것은 그들 쪽이었다.
"아니, 여기 어쩐 일입니까?"
"뒤늦게 신혼여행 오셨나요?"
그들과 함께 했던 국중박의 최종 공모에서 우리는 1등을 했고, 나는 다시 원래의 본부로 복귀했다. 그리고 이듬해에 결혼을 하고 그 회사를 떠났다.
옮긴 회사에서는 나를 파리로 보냈고, 초산이 다가오던 아내를 두고 파견을 갈 수는 없다고 하자 회사는 아내를 동반해서라도 가라고 했다.
아내는 결혼 전에 회사 문 앞에 서서 나를 기다리던 것으로 유명세를 탔었고, 덕분에 친했던 몇몇 동료들과는 안면이 있었다.
그들은 회사에 남아 국중박의 실시설계를 하고 있는 중이었고, 루브르 및 몇몇 박물관의 답사를 위해 파리에 왔다고 했다.
박승홍, 유홍준, 가에 아룰렌티(Gae Aulenti)
국중박의 설계이야기를 하자면 세 명의 이름이 떠오른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박승홍이다.
그가 세상에 얼마나 알려져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도 왕성하게 일을 하고 있고 한때 같이 일을 하기도 했으니, 그 인물에 대해 언급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국중박을 말할 때 그를 빼놓을 수는 없다. 국중박은 순전히 박승홍이 만들어낸 것이다.
늘 얘기하지만,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는 것이 그 사람의 실제 가치와 비례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의 순서인 경우가 너무 많다.
현상설계에 당선된 작품이 모두 쓸만한 것도 아니고, 큰 현상설계에 작품을 당선시켰다고 그 건축가가 대단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다. 내가 당선되어 지어진 건물이라고 예외가 되지는 않는다.
부끄러운 것이 많다. 사람들이 몰랐으면 싶은 것들도 있다.
나는 건축가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건축가가 갖춰야 할 세 가지 덕목에 대해 말해주곤 한다.
첫째, 성품이 좋아야 한다.
건축은 다른 분야와 달리 혼자서 해낼 수 있는 프로젝트가 거의 없다.
늘 누군가의 조력자가 되어야 하고, 누군가의 조력을 얻어야 한다. 그 조력이 기계적일 때와 깊은 동료애로 만들어질 때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이 덕목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건축사무소에서 버틸 수 있다.
둘째, 일을 잘 해내야 한다.
건축은 누군가로부터 돈을 받고 주어진 시간 안에 완성해서 납품을 해야 하는 일이다.
수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일을 한다. 그 정점에 서서 일을 끌고 나가는 것이 수석디자이너이다. 그에게 창의적인 감각보다 먼저 요구되는 것은 일을 잘 해내는 역량이다.
이 덕목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건축사무소에서 버틸 수 있다.
셋째, 디자인의 능력이 좋아야 한다.
건축에서 필요한 디자인 능력은 반드시 예술적인 감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예술적 감각은 없어도 되지만 건축적 감각은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 반대인 경우는 좀 곤란하다.
물론 두 개를 다 갖춘 디자이너가 훌륭한 건축가가 된다.
이 덕목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건축사무소에서 버틸 수 있다.
위에 열거한 세 가지 항목 중에서 두 개만 갖추어도 이 바닥에서는 좋은 건축가로 칭찬받는다.
숱한 건축가를 보고 함께 일도 해봤지만, 위 덕목 세 가지를 다 갖췄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보지 못했다. 그가 박승홍이다.
'성공한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는 위의 세 가지 말고 다른 한 가지만 있으면 된다. 바로 비즈니스 감각과 이를 행동에 옮기는 추진력 또는 몰염치력이다.
간혹 큰 행운이 '성공한 건축가'를 만들기도 한다.
남들 전쟁터로 끌려갈 때 일본으로 밀항해서 도망갔던 김수근에게 되려 수많은 나라의 일감을 몰아다준 아버지의 지인 김종필이 있었듯이.
요즘은 그 행운을 주로 방송국 PD들이 가져다준다. 내 추측에 박승홍에게도 그런 기회는 있었을 것이다. 내 상상이 맞다면 내가 알던 박승홍은 그걸 잡지 않았던 것일 것이다.
애초에 껍데기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박승홍은 한국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코딱지만 한 성과만 만들어도 네이버나 구글에 온갖 신상명세가 주르륵 뜨는 세상인데, 어디에서도 그의 상세한 이력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나도 내 기억이 참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그를 본 지 20년이 넘은 것 같다. 혹시 착각한 내용이 있다면 널리 퍼지기 전에 빨리 연락 주시라.
그는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했다.
알다시피 외대에는 건축과가 없다. 외대에서는 영어를 전공했다고 기억한다.
졸업하고 그는 독일로 유학을 간다. 독일에서 건축을 전공한 것도 아니다. 그는 철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건축을 전공한다.
한마디로 그는 한국에 아무런 학연이 없는 사람이다.
한국의 건축계에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사람은 다 안다.
어쩌면 이것이 박승홍이 박승홍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