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중박 설계이야기(3)

그 거리가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by 언덕 위의 건축가

루브르는 한겨울에도 만원이다.

루브르에 온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 도면을 수없이 읽었던 터라, 인파에 섞여서 숨이 막히게 이동을 해야 하는 곤욕은 이미 예상한 대로였다. 사람들의 뒤통수를 구경하러 온 것인지 유물을 감상하기 위해 온 것인지 구분이 안된다.

페이(I. M. Pei)가 설계를 잘못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애초에 17세기에 지어진 궁전을 박물관으로 써야 하는 한계가 컸다. 하지만 특별히 잘했다고 얘기해 줄 만한 구석도 보이지 않는다. 유리 피라미드가 대단한 아이디어는 아니다.

건물은 비어있는 속을 쓰려고 만드는 그릇과 같은 것이다. 식사가 불편하면 그릇은 잘 만든 것이 아니다.


역시 아내에게는 무리다.

모나리자를 먼발치에서 보고 나와버렸다.


그의 생각은 명료했고 그의 스케치는 섬세했다.


박승홍을 생각하면 두 가지가 먼저 떠오른다. 명료한 글과 섬세한 스케치.


그는 글을 매우 잘 쓰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글을 찾기는 힘들다.

책이라고는 스케치들을 모아 펴낸 스케치북뿐이고, 그에 대한 기사는 모두 인터뷰 내용뿐이다.

그가 쓴 글들은 대부분 설계를 마치면 모두가 써야 하는 설계설명서들이다.

당연히 미사여구 같은 것은 사용하지 않는다. 원래부터 껍데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쓴 설명문은 다른 이들의 그것과 확실히 구분된다.


겨울 들판에 모든 잎을 벗어버리고 서 있는 나무에게서는 '어떻게'를 느낄 수가 없다. '왜?'만 존재한다.

그는 그 '왜?'만 쓴다.

*철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런데도 그의 글은 아름답고 울림이 있다.

김정희의 세한도를 보고 있는 느낌까지 준다.

나 역시 '어떻게'를 볼펜으로 다 그어버리고 나면 '왜'가 하나도 남지 않는 그런 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외가 있다면 이외수의 초창기 글이다)

소설가 중에서 그런 식으로 글을 쓰는 사람을 들라고 하면, 헤밍웨이와 르 끌레지오가 떠오른다.

박승홍에게는 헤밍웨이의 냄새가 묻어있다.

설계설명서와 '노인과 바다'. 이런 짝도 있을 수 있는 법이다.


성격이 조금 다른 인천국제공항을 제외하면, 단일 건물로는 역사상 가장 비싼 설계비를 받는 (내 기억으로는 1995년 당시 3000만 달러였다) 프로젝트의 설계설명서 첫 줄을 그는 이렇게 쓴다.

'Korea is mountaineous.'

번역하자면 '한국에는 산이 많다.'

그의 문장에는 뼈만 있다. 살도 없고 그 위에 덧칠도 없다.

국중박의 디자인도 그렇다고 나는 평가한다.

박승홍의 글

어느 사람의 글과 디자인이 따로일 수는 없다.

내가 학생들에게 글을 읽고 짧은 글이라도 쓰는 버릇을 키우라고 권유하는 이유다.

글은 내 생각을 내어 보이는 창(窓)일 때도 있지만, 내 생각을 다듬는 칼인 경우가 더 많다.


이 글에 국중박의 디자인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 설명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으니 그것을 참조하면 된다. 물론 그것들이 내 생각과 다 같지는 않다.

하지만 국중박의 디자인에 대해 굳이 한마디만 하자면 '그것은 명료하다'는 것이다.

국중박이 지어지고 몇 년 후, 집이 그 근처에 있어서 수시로 국중박을 간다는 사람과 함께 박물관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마침 너무 많은 학생들이 단체로 관람을 하고 있어서 우리는 입장하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박물관을 한 바퀴 돌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건물의 벽과 연못, 마루 그리고 탑들이 놓여있는 정원에 대해서. 그리고 여러번 가봐서 잘 알 테니 박물관의 내부에 대해서도 조금.
그가 말했다. "수도 없이 박물관에 왔었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전혀 다른 건물로 보이네요". 무엇이든 그렇다. 아는 만큼만 보인다.


당연히 좋게 읽은 글에서는 영향을 받는다.

어느 장소에서 옛 동료를 우연히 만났다. 그가 자신의 직원인 듯한 사람에게 나를 소개했다.

"이 분이 그 글 쓴 사람이야."

무슨 얘기인가 했더니, 내가 쓴 어느 설명서를 말하는 것이었다.

'성동행정마을'이라는 프로젝트였는데, 그 설명문의 첫머리에 이렇게 썼었다.

'마을에는 길이 있다'

어느 잡지에 그 글이 실렸고, 그 문장이 여러 사람에게 기억되는 모양이었다.

당시 내 설명문 쓰는 방식에 박승홍의 그림자가 비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박승홍의 스케치

하지만 박승홍을 특징짓는 가장 큰 요소는 글보다 그의 스케치이다.


*철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거나 철학적 지식에 의존하고 싶은 사람들은 글을 어렵게 쓴다.

그들의 글에는 인용문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글을 칼로 사용하지 않고 창(窓)으로 쓰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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