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중박 설계이야기(4)

그 거리가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by 언덕 위의 건축가

평일 낮에 아내와 함께 루브르에 올 수 있었던 것은 파트너 건축가의 연락 두절 때문이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마 오늘은 계속 안 받을 것이다. 그래서 쉬기로 했다.

박물관을 나와서 만나는 겨울의 파리는 온통 회색이다.


파리와 파리지앵은 안 어울리는 존재다.

파리는 매력이 넘치지만, 파리지앵들은 더러우며 불친절하고 오만하다. 동시에 찌질하기도 하다.

한 시간만 외출하면 어디서든 위 세 가지를 전부 체험할 수 있다.

호떡만 한 개똥을 요리조리 피해서 지하철 역에 들어가면 오줌냄새가 반겨준다. 그다음은 철로를 횡단하는 커다란 쥐, 재수 좋으면 플랫폼 끝에 서서 오줌을 싸고 있는 말쑥한 코트의 신사도 만날 수 있다. 어느 한 곳 지하철역에도 화장실은 없다.


내일이 되면 나의 파트너는 절대로 '어제는 미안했었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옆방에서 일하고 있는 그의 아내는 외국에서 온 손님이 있든 말든 아무 때나 사무실에 들어와 부부싸움을 할 것이고, 점심시간이 되면 수습사원인 라파엘은 내가 밥을 사주겠다고 말하길 기다릴 것이며, 동양인에게 얻어먹기 싫은 소피는 함께 가자는 말을 뒤로하고 혼자서 몇 블록을 걸어서 맛없는 대학 구내식당으로 갈 것이다.


파리지앵들은, 심지어 루브르에도 영어 한 마디 적어 놓지 않는다.

파트너가 서울에 올 때마다 나는 공항에서 그를 픽업해서 호텔까지 데려다주고, 다음날에 다시 픽업해서 사무실로 데려왔다. 성의없이 내게 알려준 그의 사무실을, 영어 한마디 찾아볼 수 없는 파리를 해메이다 찾아낼 때까지 일 년 치의 욕을 다 소비한 이유는 한심해서였다. (나는 일 년에 평균 두 번 욕을 하기 때문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영화에 등장했던 멋진 패션의 금발 여자들은 모두 이민을 갔는지, 거리에는 우중충한 코트와 파카를 입은 키 작은 검정머리들만 보인다. 한결같이 무표정한 얼굴인 것은 세상 어디나 똑같다.

가게에서든 식당에서든 일관성 있게 불친절한 그들이지만, 습관이 안되어서 지하철역 입구의 문을 뒷사람 올 때까지 잡고 있지 않으면 대놓고 짜증을 낸다. 나는 저 멀리 앞사람이 내가 올 때까지 문을 잡고 있는 것이 더 신경 쓰인다. 참 불편한 풍습이다.

날씨까지 사람을 닮는건, 심신이 허약한 사람이 겨울에 파리에 도착하면, 처음 해를 볼 때까지 그 열흘 안에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


내가 지금 이 모든 이야기를 메모도 없이 단숨에 적어 내려갈 수 있는 것도 다 파리지앵들의 능력이다.

(*이상의 내용은 1996년 12월 12일 일기에서 발췌 편집했음)

박승홍의 스케치

아침에 일어나면 빨리 회사에 가고 싶고, 또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퇴근해야 하는 것이 아쉬운 회사생활을 해본다는 것은 작지 않은 행운이다. 젊을 때에는 그런 조직에서 한 번쯤 일해보는 것이 좋다.

나는 운 좋게도 연거푸 그런 회사를 세 번이나 다닌 후 독립해서 내 사무소를 열었다.


정림건축은 그 두 번째 회사였다.

더욱이 국중박 팀에 들어갔으니 회사에 일찍 출근한 것은 당연했다.

박승홍도 늘 회사에 일찍 나와서 일을 했다.

가장 안쪽 남향의 창가에 앉아 말없이 스케치를 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수석디자이너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많은 일을 해야 한다.

많은 회의를 해야 하고, 스텝들이 할 일을 정해줘야 하며 그들이 한 일에 대해 피드백도 줘야 한다.

때로는 일 외적인 것도 신경 써서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이 마무리되게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런 일들을 조용히 처리하면서 그는 끝없이 스케치를 했다.

그의 스케치를 보면 그가 왜 그렇게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스케치를 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스케치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그는 아주 얇은 펜을 썼다. 그리고 대부분의 스케치에 음영을 표시했다. 또 필요할 때에는 컬러링까지 했다.

그리고 그림으로 표현되지 않는 것은 꼼꼼히 글을 써서 넣었다.

해 본 사람은 알지만, 음영을 그리려면 물체의 위치와 크기에 대한 계산을 많이 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소모되는 것이 당연하다.

모든 것은 자기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스텝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이 부지런히 일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스케치는 의사소통을 하는 수단이다.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다.

물론 자신의 머릿속을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를 붙잡아 놓기 위해서 굵은 마커펜으로 하는 스케치도 있다. 그것은 혼자서 보면 된다. 그리고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그 아이디어를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소통 가능한 방법으로 다시 작성해야 한다.


스케치 하나로 성품까지 넘겨짚는 것은 무리이겠지만, 이런 류의 일을 해 본 사람들은 안다.

하지만 섬세한 스케치를 하는 사람이 무조건 함께 일하기 편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완벽주의자이거나 나르시시스트이기가 쉬워서 함께 일하기 힘들 수도 있다.

왼쪽의 스케치를 그린 사람은 섬세하지만 신경질적인 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른쪽의 사람도 만나봤는데 그는 분명히 나르시시스트였다. (박승홍과 김수근)

박승홍의 특징 중 하나는 그의 여유다.

그 부분이 좀 신기했다.


처음 겪는 한국의 건축사무소 분위기.

분명 본인이 일했던 미국의 사무실과는 달랐을 시스템과 사람들.

오자마자 맡은 프로젝트가 거의 사운을 건 현상공모전.

내심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할 동문 친구도 없는 외로움.

불안함이나 조바심을 느낄 만도 한 상황이었는데 그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늘 여유가 있었다. 당연히 그 여유는 팀원들에게도 전파되었다.


그의 종교를 알지는 못하지만 왠지 그는 유교나 불교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사실 그 둘은 '신앙'이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매거진의 이전글국중박 설계이야기(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