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거리가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강 건너 오르세미술관으로 향했다.
내 걸음으로는 강변을 따라 15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파리는 걷는 즐거움이 있는 도시다. 마치 서울의 강북처럼.
하지만 우리는 버스를 탔다.
날은 흐리고 강바람마저 부는데 만삭의 아내가 걸어가는 것이 무리였다.
오르세는 상대적으로 한산하다.
어쩌면 관람객이 루브르 못지않게 많았지만, 가에 아울렌티(Gae Aulenti)의 명쾌한 동선 설계 덕분에 한산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오르세에서는 루브르와는 달리 어느 한 전시물도 쉽게 눈을 떼지 못한다.
그 모든 작품들을 천천히 다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아내가 배고픔을 호소한다.
오르세 5층에 있는 근사한 레스토랑은 돈 많이 벌어서 다시 오기로 하고, 근처 아랍식당에서 낯선 향기의 점심을 먹었다.
아울렌티가 오르세미술관에 구현했다는 동선 디자인은 '뮤지엄 몰(Museum Mall)'이라는 개념이다.
관람객은 마치 쇼핑 몰처럼 넓은 통로를 이동하다가, 본인이 보고 싶은 전시장을 선택해서 관람하고 다시 나오면 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녀 이전의 모든 박물관은, 심지어 새로 지은 루브르까지도 첫 전시장에 들어가면 마지막 나올 때까지 사람들을 따라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도중에 관람을 포기하고 나오거나 몇 개의 관람실을 건너뛰려고 하면 심한 혼란을 겪어야 한다.
그녀가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오르세가 원래 기차역으로 쓰던 건물이어서, 긴 선형의 평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생각에는 그녀의 탁월한 아이디어가 더 컸다.
뭐든지 해놓고 보면 쉬워 보인다.
박승홍은 그녀의 아이디어를 국중박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탁월한 결정이었다.
이 글에서 국중박의 건축계획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생략하고 싶다.
단 국중박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길'과 '벽'으로 된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나는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것들을 좋아한다.
그녀를 알게 됐을 때, 그녀의 명쾌한 디자인과 더불어서 놀랐던 사실이 두 가지가 있다.
오르세미술관이 개관하던 1986년, 그녀의 나이는 60세였다.
당시 이탈리아의 평균수명은 지금보다 열 살이 적은 74세였다.
놀라운 것은 오르세미술관 프로젝트가 그녀의 사실상 데뷔작이라는 것이다.*
나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국중박의 1차 공모안 당시 우리 팀에 자문역으로 참여했다고 들었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68세였다.
나는 50세만 되어도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는 여성들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하나는 그녀가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이로서 프랑스의 국립박물관 세 개는 모두 외국인에 의해 설계되게 되었다.
루브르(중세 이전)는 중국계 미국인, 오르세(근대)는 이탈리아인, 퐁피두센터(현대)는 영국인+이탈리아인.
이 사실은 아주 많은 것을 시사한다. 다른 기회에 말하기로 하자.
내가 파리지앵은 찌질하다고 흉봐도, 프랑스인들 흉은 안보는 이유 중 하나다.
박물관학(Museology)이라는 학문이 따로 있다.
국민대 서상우 교수가 만든 국중박의 설계지침서는 B4크기로 300페이지가 넘게 꼼꼼하게 적은, 말 그대로 박물관학 개론서였다. 최종 공모팀에 늦게 합류한 내가 그것을 정독하는데 한 달이 걸렸다.
건축을 아는 사람에게는 설계지침서를 읽는데 한 달이 걸렸다는 내 말이 허풍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책에는 우리가 박물관에 담아야 할 수많은 국보급 유물에 대한 설명과 그 각자를 어떻게 수장하고 전시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었다.
누군가가 그 방대한 내용을 꿰뚫어서 방향을 정리해줘야만 했다.
명지대 교수로 있던 유홍준이 합류했다.
나는 무명이었던 그가 2년 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처음 출간하던 바로 그날 서점으로 달려가 그 책을 사서 읽고, 그다음 주에 바로 휴가를 내서 남도로 답사를 떠났었다. 그리고 그 책은 지금도 내가 건축학도에게 권유하는 필독서이다.
그리고 같은 해, 그가 자기 어머니를 위한 단독주택의 설계를 한 건축가에게 의뢰하여 지은 후 썼던 '나는 이런 클라이언트가 되고 싶었다'는 지금도 진지한 클라이언트에게 일독을 권해주는 글이다.
그런 그를 일주일마다 만나고 짧은 '썰'을 듣는 것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다.
그는 박사과정의 제자 한 명을 우리 팀에 상주시키고, 자신은 일주일에 한 번 와서 이런저런 자문을 해주었다.
당시 우리 팀은 어느 임대 건물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주차료가 무료가 아니었다.
우리와 의논할 일이 다 끝나면 그는 이렇게 물었다.
"주차료 남은 시간이 몇 분이지?"
30분 단위로 계산하는 주차료의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냐고 묻는 것이다.
"10분 남았습니다."
"그럼 오늘은 8분짜리 썰을 풀어줄게"
그리고 그는 그 특유의 멋진 입담으로 재미있는 얘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김지하, 황석영 등등의 인물과 민청학련사건과 같은 온갖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시계를 보면 정확하게 8분이 지나있다.
그리고 총총히 주차장으로 퇴장한다.
그가 조선의 3대 구라*에 본인은 끼지 못한다고 말하곤 했는데, 당시의 나는 그 말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국중박 앞에는 큰 연못이 있는데,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바쁜 걸음으로 지나쳐 버리는 곳이다.
하지만 이 연못은 매우 중요한 설계요소이다.
사람들이 박물관에서 제일 중요한 공간은 전시장이라고 생각하는데, 박물관에는 '전시'와 함께 두 개의 중요한 기능이 더 있다. '수장(收藏)'과 '학예(學藝)', 쉽게 말하자면 '보관'과 '연구'이다.
그중에서 제일 우선되어야 하는 기능은 '전시'가 아니라 '보관'이다.
국중박에 전시되어 있는 문화재는 국중박이 가지고 있는 유물 중에서 아주 적은 일부분이다. 대부분의 귀중한 유물들은 지하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그런데 박물관이 자리 잡은 동부이촌동은 큰 홍수가 나면 물에 잠길 수도 있는 곳이다.
국중박에는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전쟁과 같은 상황에도 대비하는 유물피난대책이 모두 수립되어 있다.
박물관 앞에 만들어 놓은 연못은 한강의 물이 넘칠 때 한 시간 정도 수장고가 침수되는 시간을 지연시켜 주는 장치이다. 그 사이에 유물들을 대피시킨다.
이 연못이 유홍준의 아이디어였다고 기억한다.
국중박의 공간들에는 고유한 이름이 작명되어 있다.
국중박의 뮤지엄 몰 이름은 '역사의 길'이다.
앞에 말한 연못의 초입에 서서 보면 성곽과 같은 박물관과 그 너머 남산의 타워가 물에 반사되어 보인다.
그래서 연못의 이름이 '거울못(影池)'이다.
이 모든 이름을 유홍준이 지었다.
연못 너머에는 탑 같은 석조물들을 전시해 둔 정원이 있다.
관람객들이 잘 안 가는 곳이다.
그곳의 석물들도 대충 전시해 놓은 것이 아니다.
그곳에 있는 탑들은 모두 절터에서 가져온 것이다. 소위 'OO寺址 O층 석탑'들이다.
가능한 만큼 그 탑이 놓여있던 원래의 절터를 재현하고 탑을 놓았다.
이것도 유홍준의 아이디어였다.
그가 박물관장이 된다는 소식이 그래서 반가웠다.
*아울렌티는 오르세 이전에 잡지사와 학교에 근무했었고, 간혹 가구를 몇 개 디자인한 것이 실무의 전부였다.
*그녀의 참여는 내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조선의 3대 구라는 백기완, 방동규, 황석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