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참 못됐네요.

2023년 12월 19일 (D+5)

by 김부경

이제 일을 정리해야 한다. 회진을 돌고 외래 간호사들과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 내가 없으면 유일한 내분비내과 의사가 될 펠로우 선생님을 당뇨교육실로 불렀다. 간략하게 소식을 알렸다. 모두들 말문이 막힌 채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얼마나 놀랐을까. 다음 주 목요일에 수술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화요일까지만 진료를 볼 수 있고, 수요일에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당장 수요일부터 예약 환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펠로우 선생님이 일단 자기가 보겠다고 했다. 그래, 역시 좋은 녀석이다. 만약에 수술 결과가 좋아서 항암치료 안 받게 되면 곧 돌아오게 될 것이니 그때까지만 고생해 달라고 했다.


외래 간호사들에게 가장 미안했다. 지금부터 외래는 전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한 달에 천명 넘는 환자들에게 당장 다음 주 수요일 예약 환자들부터 일일이 다 연락을 해야 한다. 한 달만이 아니다. 일단 최소한 2개월이고 사실은 정해진 기약이 없었다. 어떤 환자들은 전화해서 소리를 지를 것이다. 어떤 환자들은 꼬치 꼬치 캐물을 것이다. 진짜 최악은 예약 변경을 해 줄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난 계획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늘 대책을 세워주는데, 이번엔 정말 막막했다. 일단 사람을 구하고 있고, K 교수님께 부탁을 해볼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전달을 마치고 나와 내 방으로 걸어가는데 펠로우가 뒤에서 쫓아왔다.

“교수님, 걱정 마시고 치료 잘 받으십시오.”

눈물을 글썽였다. 우리 펠로우 선생님의 아내는 유방암으로 돌아가신 L 교수님의 연구원이었다. 교수님이 하늘나라로 가시고 그 친구와 내가 둘이서 교수님 방을 정리했었다. 우리는 그때 함께 교수님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눈물을 흘리다 교수님 이야기를 하면서 웃다가 했다. 아마도 내 병이 우리 모두에게 그 모든 기억을 소환했으리라.

“고마워. 그리고 나는 괜찮아요. 수술만 하면 된대요. 와이프한테 나 괜찮다고 울지 말라고 꼭 전해요.”


학교와 병원에 ‘병가원서’ 제출을 알아보았다. 모두들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 병원과 학교에는 L교수님 기억 때문에 집단 트라우마가 있다. 내가 걱정도 되었겠지만, 분명 그 기억들이 떠올라 더 슬펐을 것이다. 게다가 분과에 한 명밖에 안 남은 교수가 아프다니, 정말 폐과를 해야 될 판국이니 다들 말을 못 하지만 얼마나 걱정이 되겠는가.


소식을 들은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친구들도 울었다. 나는 죽지 않으니 괜찮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아침에 했던 QT 말씀이 자꾸 떠올랐다.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알 수 없느니라 (잠언 27장 1절)’


역시 아니나 다를까 오후 외래 진료는 쉽지 않았다. 암 진단을 받고 환자를 보는 것은 정말 별로다. 진료의뢰센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타 병원에서 의뢰되어 오는 환자들을 어떻게 할지 물어보았다. 어떻게든 해내보려고 했는데 정말로 대책이 없었다.

“그냥 다른 병원에 가보시라고 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너무 속이 상했다. 게다가 우측 전체에 통증이 있었다. 사실 생각해 보니 통증은 이번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은 항상 아팠다. 항상 내 체력보다 무리한 일을 해냈다. 그래서 항상 아팠다. 그렇지만 항상 참고했다.

결국 그래서 암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서글펐다. 미련하게도 힘든데 늘 참고 꾸역꾸역 해낸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암 걸려서도 이 많은 환자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서글펐다. 이 지경이 되도록 일하라고 아무도 안 그랬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비웃음을 사게 될 것 같았다.

‘그러게 내가 그 망할 병원 진작 그만두라고 했었지, 그냥 편한데 더 돈 많이 주는데 가라고 했었지. 고집부리더니 잘난 척하더니 결국 지가 암 걸려 죽게 생겼네, 자기 혼자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그렇게 설치고 돌아다니더니, 거 봐 그럼 그렇지, 그렇게 무리하면 결국 탈 난다니까. 자기 몸하나 못 챙기면서 뭘 하겠단 거야. 거 봐 내가 못한다고 했지.’


늦은 오후, 외래를 마칠 때쯤 사람을 무척 힘들게 할 것 같이 생기신 아주머니가 들어오셨다. 암환자였는데, 역시나 나를 무척 힘들게 했다. 뭘 물어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딱 마음을 거슬리게 하는, 그런 사람들은 그런 게 있다. 물론 내가 그날 친절하게 설명했을 리가 없다. 그런데 그분이 결국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참 못됐네요.”

그분에게 뭐라 대꾸했는지, 또 그 뒤엔 어떻게 환자를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외래 진료를 간신히 마치고 내 방으로 돌아와 털썩 주저앉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래, 나 참 못됐다. 암환자한테 쫌만 친절하게 해 주지 그랬냐.’

‘근데…. 나도 암환자라고.’

그분도 많이 힘드셨겠지. 그래,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긍휼히 여겨야만 하는 거야. 어떤 이가 당신이 기대한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는 거야. 인생이 다 그런 거야. 모두들 웃고 있지만, 실은 어떤 아픔을 안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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