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8일 (D+4)
간밤에 여러가지 꿈을 꾸고 아침에 있어났다. 그런데 어쩌면 이건 암이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금요일에는 전이가 된 줄 알았고, 토요일과 주일에는 전이가 없더라도 분명히 심각한 암이고 죽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날 아침에는 이건 분명히 암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출근하면서 남편한테 그렇게 이야기헸다.
“남편, 이거 암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냥 그런 기분이 들어.”
“음, 아직 검사 결과를 보기 전에 그렇게 생각하면 나중에 실망하지 않을까?”
“괜찮아. 그냥 그런 기분이 든다고.”
회진을 돌고 오전 외래를 시작하기 전에 유방외과 초음파실로 갔다. 초음파를 보시는 교수님이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리고 계속 한숨을 쉬셨다. 결국 내가 먼저 물었다.
“모양이 안좋죠?”
“그게… 여러 개 있어요.”
가슴이 다시 쿵! 했다. 그럼 아침에 그 기분은 뭐였을까? 그럼 항암치료 해야 되나?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되지?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이 많은 환자들은 어떻게 되지?
초음파를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10분 걸릴 줄 알았는데, 이미 20분이 지났다. 내가 자꾸 시계를 보자 교수님이 물어보셨다.
“진료 보러 가셔야 되죠? 내분비내과에 이제 혼자 밖에 없죠. 아이고…. 그게 문제가 아니고 지금…”
교수님이 계속 한숨을 쉬셨다. 결론적으로 병변이 4군데 있었다. 다행이 임파선은 없었다. 초음파를 다 보고, 김구상교수님이 빛의 속도로 조직검사를 해주셨다. 조직검사는 병변 4군데 중에서 가장 사이즈가 큰 것에서만 했다. 어차피 수술로 전부 제거를 해야 되니 일단 그것만 결과를 보자고 하셨다. 조금 지혈을 하고, 가슴을 붙잡고 바로 진료실로 갔다. 유방 외과 바로 옆 방이 내분비내과 진료실이다.
진료를 시작했는데, 그날 따라 컴퓨터가 먹통이었다. 얼마나 로딩이 오래 걸리던지…. 그래서 쉬엄 쉬엄 환자를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1시경 아예 병원 전체 시스템이 셧다운 되었다. 이 병원에 20년째 일하면서 이런 저런 전산 문제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전체 시스템이 완전히 셧다운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진료실 밖에는 환자가 구름처럼 몰려 있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내 방으로 유방외과 교수님, 소화기내과 교수인 우리 남편, 혈액종양내과 교수인 내친구가 동시에 들어왔다. 어떻게 이렇게 다같이 왔냐고 누가 연락했냐고 물으니 다들 오다가 만났다고 했다. 컴퓨터가 셧다운 되는 바람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다들 갑자기 시간이 난 것이다. 그러자 다들 내 조직검사 결과가 궁금해서 병리과에 연락을 하고 각자 내 방으로 쫒아 오던 길에 만난 것이다. 갑자기 다학제가 되었다. 나는 너무 눈물이 났다. 내가 이토록 사랑받고 있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온 병원의 수 천명의 환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이 미안하지만, 마치 나를 위해 온 세상이 멈춘 것만 같았다.
병리과는 또 어떻게 그렇게 빨리 슬라이드를 만들고 결과를 봐주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빨라도 오늘 오후나 내일쯤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 자리에서 바로 검사 결과를 듣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다행히 놀랍게도 조직검사 결과는 상피내암이었다. 상피내암은 제자리암이라고도 하는데 전이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암이라고 하는 악성종양과는 조금 다르다. 아침에 암이 아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 이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머지 병변에서 무엇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유방암 전문의인 종양내과 교수가 친구가 나머지 3군데는 크기가 아직 작기 때문에 수술 결과에서 설사 침윤성 암으로 나온다 하더라도, 전절제를 하게 되면 수술로 이미 치료가 다 된 것이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모든 병변을 다 제거하기 위해 전절제를 하고, 다행히 피부와 유두와는 거리가 조금 있어 유방재건 수술을 바로 같이 하기로 하였다. 유방외과 교수님이 설명을 해주시면서 눈물을 글썽이셨다. 훗날 말이지만 우리 남편은 그 때 교수님이 눈물을 글썽이시는 걸 보고 저렇게 감정적이면 수술을 잘 하실 수 있을까 살짝 걱정했다고 한다.
나는 죽다가 살아난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감사하고 꿈꾸는 것 같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또 우리 남편이 당신 내과 의사 맞냐며 싫어하겠지만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마치 원래 전이가 있었는데, 많은 분들의 기도로 통증이 줄어들었을 때 전이가 사라진 것 같았다. 원래 큰 덩어리의 침윤성 암이 있었는데, 처음에 갑자기 찢어질 듯 아팠을 때 큰 조각와 여러 개의 작은 파편들로 쪼개진 것 같았다. 그리고 어제밤 사이에 하나님께서 제일 큰 덩어리를 상피내암으로 바꾸어두신 것 같았다. 그냥 내 기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큰 산이 남았다. 병원 일을 어떻게 정리하지? 이 많은 환자들을 어떻게 하지? 병원장님과 기획조정실장님을 또 만났다. 이미 소식을 알고 계셨다. 나보고 환자 걱정은 하지 말고 진료를 잘 받으라고 하셨지만, '이 많은 환자들은 어떻게 하지?' 싶었다. 암 걸린 마당에 하고싶은 말이나 하자 싶어서 병원에 대한 나의 소망과 기도제목들을 말씀드렸다. 병원장님께서 기도해 주셔서 함께 기도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감사하고도 막막했다.
저녁에는 여기저기서 문자가 왔다. 나는 이제 괜찮다고 했다. 죽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수술만 받으면 된다고 한다. 나는 정말로 내가 죽을 줄 알았기 때문에 검사 결과 이후에 정말로 감사했다. 그래서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찬양을 보내주었다.
“괜찮아, 나는 이제 소풍가는 것 같아. 정말로 감사해”
그리고 엄마가 오셨다. 엄마는 우셨다. 그래서 그냥 식탁 앞에 앉아서 나의 찬양 전용 마이크를 들고 찬양을 불렀다. 엄마가 우시는 것은 힘들다.
‘엄마, 저 안죽어요. 괜찮아요. 울지 마세요. 하나님, 우리 엄마 행복하게 해주세요.’
소풍
고난이 없는 것이 평안함 아니듯이
고난 중 거하여도 주 계시니 평안하네
폭풍이 다가와도 내 삶에 주 계시니
내 삶은 평안하니 내 삶 소풍과 같네
우리의 인생의 많은 길들 외로운 길이나 슬픈 길도
고난의 언덕을 지날 때도 주님 계시니 소풍같더라
내가 걸어갈 길을 다 알지 못하지만
언제나 주 계시니
내 삶 소풍 같으리
우리의 인생의 많은 길 외로운 길이나 슬픈 길도
고난의 언덕을 지날 때도 주님 계시니 소풍같더라
'지선'의 찬양 '소풍' 링크입니다.
https://youtu.be/LCWouAbaHfs?si=1sezZ8Z4P8-PIJ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