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수술과 엄마의 기도

2023년 12월 20일 (D+6)

by 김부경

수요일이다. 예약 환자가 116명이었다. 그래도 수요일은 우리 PA 선생님이 도와주니 훨씬 수월했다.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 어제는 수술 후에 복귀해도 다시는 환자들을 못 볼 것 같았다. 오늘은 왠지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환자들에게 약을 최대한 길게 처방해 주면서 다음에 보자고 인사했다. 다신 못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인사를 하니 뭐가 진심인지 모르겠다.


오후 외래 시간에 폭풍같이 환자를 보고 잠시 짬을 내어 성형외과 진료를 보았다. 다행히 내 병변이 피부와 약간의 거리가 있어 바로 재건술이 가능해 성형외과와 동시에 수술을 한다. 성형외과 교수님의 아내는 내분비내과 의사라 내분비내과 학회에서 종종 만난다. 교수님은 먼저 아내를 통해 들은 나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그것이 너무 위안이 되었다. 누군가 나의 수고를 알아준다는 것은 이토록 위로가 되는 일이다.


성형외과 교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학적 관점으로만 설명을 해 주셨다. 설명을 듣다 보니 내가 암 수술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성형수술을 받는 것 같았다. 사실 이번 겨울에 성형수술을 받아 볼 계획이 있긴 있었다. 이번에는 꼭 시간을 내어 ‘눈 밑 지방 재배치’ 수술을 받고야 말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어머, 아직 20대로 보여요. 어머, 어쩜 이렇게 어리게 보이시나요?’ 사실 남들보다 조금 동안인 것이 은근히 내 안의 자랑이었던 것이다. 그 허영을 더 활활 태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처음 통증이 찾아온 그날부터 그렇게 사고 싶던 회색코트 생각도 얼굴에 뭘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완전히 사라졌다. 암 진단을 받으면 갑자기 이전에 중요하게 생각했던 문제들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하나님, 덕분에 뜻하지 않게 제가 성형수술도 다 받아 보네요. 감사합니다.'


저녁에 엄마가 기도를 해주시기로 하셨다. 외할머니가 기도하시기 전에 아이들이 내용을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이제 곧 중2가 되는 첫째에게는 아빠가 학원에서 데리고 오는 길에 이야기했다. 첫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묘미~ 아프지 마~ “

라고 하면서 '퍽'하고 안겼다. 눈물도 조금 흘렸다

우리 딸들은 엄마 아빠를 ‘묘미’, ‘됴디’라고 부른다. 어원은 영어 ‘마미(Mommy)’ 와 ‘대디 (Daddy)’에서 시작되었다. 중간에 ‘묘맹미’와 ‘됴댕디’를 거쳐 결국 나는 묘미가 되고, 우리 남편은 됴디가 되었다.

“괜찮아. 엄마 가슴 원래 짝짝인데, 오늘 성형외과 선생님 만났는데 이제 짝 맞춰준데.”

눈물이 쏙 들어갔다. 우리는 깔깔 웃었다. 우리 딸을 웃겨주기 위해서 오늘 성형외과 면담을 받았나 싶었다. 감사했다.

우리 첫째는 자기 동생에게도 사랑스러운 네이밍을 해줬는데, 둘째의 이름은 '하묭'이다. 눈치가 빠른 하묭이 나에게 안기며 말했다.

“엄마, 여기가 아파? 이게 엄마를 아프게 해?”

“응, 맞아. 여기 엄마를 아프게 하는 게 있어서 그걸 잘라내야 돼. 엄마가 13 밤 동안 없을 건데, 하묭 잘할 수 있지? 아빠 말씀 잘 듣고,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있으면 돼. 엄마가 안 아프게 돼서 돌아올게”


맞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다. 힘들었던 일들, 서글펐던 일들, 계속해서 따라다니는 분노, 죄책감, 좌절, 아픔, 시기, 질투, 미움, 원망, 후회들이 모여 결국 암이 된 것 같았다. 이 병변만 잘라내면 모두 없어질 것 같았다. 암과 함께 과거의 내 인생의 수많은 아픔들도 다 깨끗이 잘려나갈 것 같았다.

‘하나님 인생에서 나를 아프게 했던 모든 것들이 수술로 완전히 깨끗이 제거되게 해 주세요. 더 이상 어떠한 것도 나를 아프지 못하게 해 주세요.’


저녁 식사 후 온 가족이 둘러앉았고, 엄마가 기도를 해 주셨다. 늘 소녀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 우리 엄마는 기도도 참 곱다. 엄마도 소녀 같은 얼굴과 다르게 모진 삶을 살아내셨는데, 결국 딸이 아픈 일도 겪으시게 만들어 죄송했다. 내 삶을 돌아보니 힘들었는 줄 알았는데, 축복이었고 선물이었다. 이렇게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우리가 다 예수님을 알고, 함께 기도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했다. 우리는 모두 슬펐지만 하나같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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