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수술은 무서워

2023년 12월 23일 (D+9)

by 김부경

토요일 아침이다. 검사를 받으러 응급실에 다녀온 지 딱 일주일 만이다. 그런데 왜 눈물이 나는 걸까? 집에서 맞이하는 아침이 너무 평화로워서인가?

내가 죽는 것도 아니고,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이제 아무 문제가 없는데, 수술만 받으면 되는데 나는 왜 눈물이 날까? 아마도 바쁜 일들을 모두 마무리하고 한가해서인 듯하다. 아픈 것이 겁이 났다.


마약성 진통제인 무통 마취를 달고도 그토록 아프다고 하니, 진통제가 없으면 그 고통이 상상할 수나 있을까? 마취 기술이 발전하기 전에는 수술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마취 기술과 진통제가 이토록 발전해 온 것이 너무 감사하다. 수술만 해도 내가 레지던트 할 때와 비교하면 어마어마하게 많이 발전했다. 의학 기술의 발전이 이토록 감사할 수가 없다. 그래도 아플 것을 생각하니 무섭다. 손가락에 1cm만 베어도 아픈데 오른쪽 가슴 전체를 피부만 남겨놓고 전부 다 파낼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아플까 싶었다. 그런데 사실 아프다는 건 좋은 것이다. 그곳에 신경이 살아있다는 의미이다. 아픈다는 건 살아있다는 뜻이다. 그곳에 새 살이 돋아날 것이라는 증거이다.


그렇게 생각해도 무서운건 여전했다. 남편에게 통증이 무섭다고 했다.

“무통 달잖아.”

“음… 자기 수술받은 사람 못 봤구나. 무통 달아도 아파. 무통 달아서 그 정도 아픈 거야.”

“그럼 무통이라 하면 안 되겠네. 사람들이 무통 달았으니까 안 아플 줄 알잖아. “

“음, 그 정도면 안 아픈 거지 뭐. 옛날에는 사람들이 통증 때문에 죽었잖아. 총 맞아도 통증 때문에 쇼크로 죽는다잖아.”


갑자기 그동안 내가 환자들에게 너무 쉽게 말했단 생각이 들었다.

‘수술만 받으면 됩니다. 수술받는 건 좋은 거예요. 죽을병이면 수술도 안 해줘요.’

맞는 말이긴 한데, 영혼 없이 말했던 것 같아 미안했다.


경제적인 것도 걱정되었다. 미국에 있는 동안 마이너스가 점점 늘어나서 거의 맥시멈으로 찼었다. 이제 겨우 갚기 시작했는데 휴직을 하면 마이너스가 다시 빠른 속도로 불어날 것 같았다.

‘도대체 사람들은 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어떻게 감당하지?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막막할까?’

아파도 일해야 하는 사람들, 마음편하게 병원에 오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서러울까 싶었다.


오전 내내 눈물이 났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데 수술을 해주실 외과 김구상 교수님 교수님한테서 문자가 왔다.

며칠 전 찍은 PET-CT에서 우측 임파선이 커져 있다고 판독 나온 것은 걱정 말라고 하셨다. 그렇잖아도 그것 때문에 핵의학과 교수님과 남편이 통화를 했었다. 사실 그건 걱정 안 되는데 아플까 봐 좀 걱정된다고 하니까, ‘호호 불면서 안 아프게 수술해 줄게요’라고 하셨다.

‘세상에, 귀여우셔라. 호호 불면서 수술한다니….’

교수님 덕분에 크게 한번 웃게 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진료부장님이신 서경원 교수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과에 사람 뽑는 일에 대해서 며칠 전에 제안드린 것이 있었다. 그것이 잘 되지 않았서 미안하지만 최대한 도와주려 하고 있다고 하셨다. 목소리가 감기에 걸리신 것 같았다. 전화를 끊을 즈음에 문득 ‘어? 설마 우셨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은 학생 때부터 알던 관현악단 선배이다. 그때 선배님은 외과 레지던트였고 나는 본과 학생이었는데 도서관 옆 휴게실에서 우리들에게 둘러 싸여 음료수 캔을 들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선배님의 모습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레지던트가 학교로 찾아와서 학생들과 수다를 떨어주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그것은 엄청난 관심과 사랑이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참 좋은 선배님이다.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다들 이제 과 걱정, 환자 걱정, 병원 걱정은 하지 말고 너 몸이나 챙기라고 했다. 그런데 그럴 수 있나? 나를 걱정하는 것이 내가 보던 환자를 걱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의사가 갑자기 사라지면 그가 보고 있던 환자들은 갑자기 오갈 데가 없어진다. 밤중에 레지던트가 사라지면 그 환자들은 담당 의사가 없어지는 것이다. 누군가 그 환자들을 맡아야 한다. 봐주어야 한다. 담당의사가 없으면 누가 그들의 검사 결과를 봐주고, 약제를 변경할지 판단해 주고, 무엇이 원인인지 찾아준단 말인가?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는 데는 내가 하던 일들을 누군가가 책임져 준다는 전제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성적 입력은 학교 직원에게 부탁할 수 있지만, 학생들의 시험지를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는 일은 나만 가능하다. 누군가에게 맡긴다고 생각하고 환자들을 보니, 내분비내과 전문의만이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너무 많다. 수련이란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이걸 나 아니면 누가 판단해 줄 수 있을까? 그렇지만 나 혼자서 어떻게 다 할 수 있단 말인가? 한 사람에게 너무나 과중한 업무가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현재의 의과대학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두 분 교수님의 연락을 받고 나니 아침에 그렇게 눈물이 나고 두려웠던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아무것도 없었다. 나처럼 사랑을 많이 받는 환자가 또 있을까? 내가 걱정하는 것은 복에 겨운 사치다. 내가 이 병원에 의사인 것이 다행이고 감사했다. 이토록 많은 배려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감사했다. 다른 환자들은 얼마나 두렵고 막막할지를 생각했다. 수술이 걱정되어도 나처럼 담당교수가 문자 해 줄 수도 없다. 검사 결과가 궁금해도 쉽게 물어볼 곳도 없다. 지금 내가 받고 있는 기도들은 모두 그분들에게 돌려드리고 싶었다.

‘하나님 아프고 두렵고 막막한 환자들 지켜주세요.’


미국으로 연수를 떠나기 직전에 불렀던 찬양이 생각났다.

마치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안다. 내가 너의 마음을 모두 안다. 걱정 말아라’ 고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았다. 어제 내가 죽지 않는 것에 대해 그렇게 감사하고서도, 고작 아플까 봐 이렇게 눈물을 흘리는 나에게 ‘넌 왜 그리 말귀를 못 알아듣냐’고 나무라지 않으시고, 교수님들을 통해 위로해 주시고, 찬양으로 위로해 주신다. 하나님은 이토록 좋은 분이다.


축복하노라


나의 은총을 입은 이여 너를 아노라.
너의 이름을 내가 아노라.
나의 사랑을 아는 이여 함께 가노라
내가 친히 함께 가노라
내가 너로 편케 하며
나의 모든 사랑으로 너의 앞을 지나며
나의 이름으로 너를 지키리라
나의 은총을 입은 이여
나의 사랑을 아는 이여
내가 너를 축복하노라


박종호의 찬양 '축복하노라' 링크입니다.

https://youtu.be/02ooNZEaAxM?si=za0GDiACMyysB_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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