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지키기로 결심하다

2023년 12월 22일 (D+8)

by 김부경

내과 레지던트 중에 한 명이 병원을 나갔다. 다행히 어제 오후에 돌아왔다고 한다. 아침 출근길에 남편이 이번 연차 레지던트들이 한 번씩 돌아가면서 병원을 나갔던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우리 레지던트 때 이야기도 했다. 누구는 언제 나갔고, 누구는 얼마 만에 돌아왔고, 누가 제일 길게 나갔고….


나도 병원을 나갔던 기억이 났다.

“나도 병원 나간 적 있는데….”

“언제?”

“그때 있잖아, MRI 실이랑 싸우고 진짜 열받았잖아. 근데 나 병원 나간 거 자기 빼곤 아무도 모르긴 하지. 일 다 해놓고, 간절곶까지 갔다가 새벽에 회진 전에 다시 돌아와 있었지. 병원 나간 건 아무도 모르고 나만 피곤하기만 했네.”

“그건 나간 게 아니지.”

맞다. 나는 살면서 거의 한 번도 펑크를 낸 적이 없다. 그날도 너무 화가 나서 병원을 뛰쳐나가면서도 콜이 오지 않도록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나갔다. 그래서 나는 분만실에서도 보고서를 썼다. 연구비를 땄는데, 아기를 낳고 나면 그 보고서를 기한 안에 완성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직은 아기가 나오지 않았으니, 분만실에서 진통을 하면서 마무리해서 이메일을 보냈다.

'그렇구나, 내가 사람한테 한 약속을 지키려고 그렇게까지나 했구나.' 그런데 하나님한테는 약속하고 펑크 많이 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면서, 다 용서하신다면서, 그래도 사랑하신다면서 거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쓰기로 했던 글이 생각났다. 사실 그걸 안 쓰기로 해서 이런 일이 생긴 건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게 아닌 걸 알지만 계속 마음에 걸렸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하나님께 하기로 했던 약속이었던 것이다.

‘그래, 이번에는 약속을 지키자. 뭐 때문에 주저하는 거지? 기껏 써냈는데, 아무도 읽지 않을까 봐? 그게 무슨 상관이지? 누구 읽으라고 쓰는 거지? 아무도 읽지 않아도 되잖아. 하나님만 아시면 되잖아. 그리고 나중에 질문을 했던 우리 딸만 읽으면 되잖아. 초등학생 같은 유치한 문장이라도 뭐라도 써내자. ‘

사실 나는 그냥 아무것이라도 쓰기만 하면 약속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그래, 사람과의 약속은 지키느라 분만실에서도 보고서도 쓰면서 너는 도대체 하나님과의 약속은 왜 그렇게 못 지키는 건데, 이번에는 꼭 약속을 지키자.’


오전 진료를 마쳤다. 이제 마지만 한 번의 외래 진료만 남았다. 외래 간호사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학생들 성적 산출을 해야 한다. 오늘 중으로 다 못하면 예전에 분만실에서 보고서를 썼던 것처럼, 입원실에서 성적산출 해야 된다.

‘정신 바짝 차리자. 오늘 안에 마무리 하자. 내년에는 어떻게 할까? 교수가 나 혼자인데 이걸 다 할 수 있을까?’

80여 명씩 두 학년의 점수를 다 매기고 나니 오후 6시가 넘었다. 이제 입원 준비가 끝났다. 교학관리팀에 이메일을 보냈다. 이제 모두 내 손을 떠났다.

‘미안하지만 학생들아, 올해는 이의제기를 해도 받아줄 수가 없어. 과락은 없도록 Base up 은 충분히 해줬으니, 평락에 걸리는 녀석 없도록 모두들 Good luck~!!!’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술에 대해 떠올랐다.

‘내가 수술을 받는구나…’

두 달 전에 나와 똑같은 수술을 받은 S 양에게 수술이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보았다. 오전 8시 수술이라 7시쯤에 수술실에 들어가서 3시 15분쯤 병실로 올라왔다고 한다. 하긴 큰 수술을 두 개 받고 회복실에서 시간도 있을 테니 그렇게 오래 걸리겠구나 싶었다. 갑자기 조금 두렵기 시작했다. 수술 중에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나는 수술방이 환히 그려지지만 그래도 예측 못한 일이 생길 것 같았다.

‘나는 혈압도 낮고, 빈혈도 있고, 내 심장은 가끔 부정맥도 뜨는데 괜찮을까?’


지금까지의 기적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사실 유방암은 통증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 검진으로 발견한다. 그런데 나는 너무 신기한 방법으로 알게 되었다. 내 딸이 그렇게 집요하게 질문을 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글로 쓰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을 비워두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얼마나 바빴을 것인가. 신기하게도 글을 쓰기 위해 비워둔 첫날 설명할 수 없는 통증으로 병변을 발견하게 된 것도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제일 큰 덩어리가 상피내암인 것도 모두가 기적 같은 일이다.

‘그래, 내가 죽을 거였으면 그렇게 통증으로 알려주시지도 않았지. 죽도록 일하다가 아마 말기암이 되고서야 알았겠지.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나를 살리려고 하시는 거잖아. 이 땅에서의 삶을 더 허락하시는 거잖아. 나를 살리시려고 그렇게 통증으로 거기 암 있다고 그렇게까지 알려주셨는데, 수술방에서 죽을 리가 없지.’


퇴근길에 우연히 듣게 된 찬양이 나의 불안에 답하는 것 같았다. 그래, 나는 성도다. 이제 수술을 받고 나면 그 이후부터는 내가 계획하지 않은 새로운 삶이다. 이 땅에서의 삶을 하나님께서 연장시켜 주신 것이다. 이제 이 땅에서의 남은 시간은 나를 지으신 그분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다. 일단 약속부터 지키자.



성도의 삶
성도는 믿음으로 산다. 성도는 믿음으로 산다.
나의 모든 길 주님 인도하시니 성도는 믿음으로 산다.
성도는 하늘 은혜로 산다. 성도는 하늘 은혜로 산다.
하늘의 양식 하늘의 소망 성도는 하늘 은혜로 산다.
성도는 말씀으로 산다. 성도는 말씀으로 산다.
성경에 쓰신 주의 생명의 말씀 성도는 말씀으로 산다.
성도는 눈물 기도로 산다. 성도는 눈물 기도로 산다.
눈물의 간구 주님 외면치 않네. 성도는 눈물 기도로 산다.
성도는 복음으로 산다. 성도는 복음으로 산다.
나의 모든 죄 대신 지신 십자가. 성도는 복음으로 산다.
하나님 영광 위해 산다. 하나님 영광 위해 산다.
나를 지으신 주님 그분 뜻대로 하나님 영광 위해 산다.
하나님 영광 위해 한다. 하나님 영광 위해 산다.
나를 지으신 주님 그분 뜻대로 하나님 영광 위해 산다.


손경민의 '성도의 삶' 찬양 링크입니다.

https://youtu.be/mYtXHhY_NEQ?si=0zk77ihlWokpdv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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