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진료

2023년 12월 26일 (D+12)

by 김부경

입원 전 마지막 날이자, 마지막 외래 진료가 있는 날이다. 아침 일어나 시어머니가 해주신 영양 토마토 스튜를 먹고,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은 유방암 선배이자 나보다 쫌 더 아픈 J 양을 만나기로 한 날이다.

약간 시간이 남아서 머리를 잘랐다. 미용실에서 잘라야 하는데, 시간이 없었다. 아무래도 너무 긴 머리는 수술 후에 좀 불편할 것 같았다. 혼자서 머리를 자르니 미국에서 문구용 가위로 혼자 머리 자르던 생각이 났다. 일 년 내내 문구용 가위로 자르다가 돌아오기 직전에 미용가위를 하나 사면서 이제 이걸 어디 써먹으려고 이제야 사나 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J양과 햇살이 따뜻하게 드는 카페 창가에 앉았다. 아프니까 이전에 중요하게 생각하던 것들과 이전에 걱정하던 것들이 모두 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더라는 것에 우린 서로 깊이 공감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새롭게 태어난다. 죽음이라는 것이 나의 문제가 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존재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의 인생은 왜 시작되었는지, 어디로 갈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살면서 때때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그것이 피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실제로 나의 문제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암이라는 것은 살면서 죽음이 나의 문제가 되는 흔치 않은 경험이다. 암을 진단받는다고 바로 죽지는 않으니 말이다. 우리는 둘 다 새롭게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이 땅에서 허락받은 이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서 우리가 무엇을 할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무엇이 될까? 이제 이 치료 과정이 끝나면 우리는 무엇이 될지 기대가 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J 양과 헤어지고, 지금 병리과에 있는 선배 언니가 밥을 사준다고 해서 만났다. 언니는 몇 년 전까지 나와 같은 연구실을 썼다. 그래서 언니는 내가 겪었던 어려운 일들을 거의 모두 알고 있다.

“부경아, 수고했어.”

그래, 언니는 모두 알지. 그래서 그런지 언니가 나보고 수고했다고 하는 말은 다르게 느껴졌다. 눈물이 났다.

“언니, 나 이제 예전처럼 열심히 안 살 거예요. 나도 이제 편하게 내 맘대로 살 거야.”

“그래, 니 할 만큼 했다.”

이렇게 말해주는 언니가 있어서, 힘들 때 밥 사주는 사람이 있어서 감사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진료에 들어가기 전에 심호흡을 했다. 지난주에 쉽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은 무사히 넘어가길 바랐다.

‘하나님, 수술 전 마지막 외래예요. 제가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도와주시지 않은 것 같았다. 이날 외래 진료는 정말 힘들었다.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속을 썩였다. 그도 그런 것이 보통 담당의사가 바뀔 때 이런저런 일이 많이 생기는데 내가 귀국하고 새로 진료를 시작한 지 아직 3개월이 되지 않았으니 거의 모든 환자들이 처음 보거나 오랜만에 본 분들이다. 환자들도 짜증 날 만도 한 것이 2년 사이에 담당의사가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 다음 예약은 또 내가 없다고 하니, 간호사 데스크는 정말 난리법석이었다. 진료실 안에서는 환자들이 왜 전에 먹던 약을 안 줬냐,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안 하겠다, 어떤 분은 시킨 대로 하지도 않고 왜 이렇게 안 되냐, 어떤 분은 약을 이렇게 저렇게 바꿔달라, 정말 대혼란이었다. 다른 교수님들이 보던 패턴에 익숙해진 환자들은 원래 담당 의사가 바뀔 때 질문도 많고 불만도 많다.

‘그래 이거였어. 이런 게 나를 병들게 한 거야. 왜 내가 시키는 대로는 하지도 않고, 잘되게 해 달라는 거야.’


결국 마지막쯤에 나를 눈물 나게 한 환자가 있었다. 그분은 내가 오랫동안 보던 분인데, 연수를 가있는 동안 다른 교수님이 보다가 오랜만에 만난 것이다. 사실 처음 오셨을 때 많은 것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약을 조절해 준 후부터 혈액검사는 모두 정상이다. 분명 증상도 엄청 좋아졌을 텐데, 불평불만이었다.

“아니, 내가 이 병원을 얼마나 오래 다녔는데, 그것도 하나 편하게 못 만들어줘요?”

아니, 이분은 정말 얼마나 많이 좋아졌는데, 왜 좋아진 것은 하나도 생각 안 하고 늘 불평만 하는 거지? 결국 눈물이 핑 돌았다.

‘진짜 배은망덕한 인간, 그러니까 맨날 좋은 날이 없는 거지.’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하나님, 제가 마지막 진료라고 잘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기도했는데, 이게 뭐예요.’

서럽고 짜증 났다. 아침에 J 양과 나눈 이야기들은 다 뜬구름 잡는 얘기였던 것이다. 나는 이것밖에 안된다는 것이 속상했다. 퇴근길에 어떻게 아셨는지 담임 목사님에게서 괜찮냐고 전화하셨다. 그래도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저녁을 먹었다. 남편이 후식도 챙겨주고 디카페인 커피도 내려줬는데 눈물이 났다. 더 이상 환자를 보고 싶지 않았다. 이것이 영원히 마지막 진료였으면 했다. 그냥 이대로 집에서 남편이 내려주는 커피 마시고, 밥 하고, 애들 픽업 가고 하는 가정주부로 살고 싶었다.


왜 안 하고 싶은 걸까? 실은 정말 내가 해주고 싶은 것은 환자들의 삶을 바꿔주는 것이다. 정말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짧은 진료로는 그 삶을 바꿔줄 수 없으니까 그렇게 항상 힘들고 애가 타는 것이다.


진심은 언제나 힘든 것이다. 레지던트 2년 차 때였다. 혈액종양내과 파트를 돌 때 20살 대학생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도 유방암이었는데 왜 그렇게 어린 나이에 발병한 걸까? 그 친구는 항상 책을 읽었다. 그 친구가 하늘나라에 가던 날 침대 옆에서 동생이 울고 있었는데, 사망선고를 하고 커튼 뒤로 나와 그 동생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나도 하염없이 울었다. 그날 이후 나는 혈액종양내과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환자가 하늘나라에 갈 때마다 진심이면 내 심장은 녹아 없어질 것 같았다. 이 세상의 모든 혈종 선생님들을 존경한다. 그래서 아무도 죽지 않는 내분비내과를 선택했는데, 환자가 죽지 않는다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으려면 진심과 무관심 사이 그 어디쯤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 지점을 찾지 못하면 이 일은 할 수가 없다. 지금은 내가 다시는 그 지점을 찾지 못할 것 같다.


이제 내일이면 나는 진짜 환자다. 잠자리에 들기 전, 남편과 아이들과 온 가족이 손을 잡고 돌아가면서 기도했다. 온 가족이 함께 거실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 행복한 일이다. 남편이 있어서,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그래, 내가 만약에 지금보다 더 아팠다면 당연히 일보다는 가족을 택했겠지.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감사한 일이지. 얘들아, 엄마가 빨리 건강해져서 돌아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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