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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필통 Oct 24. 2023

앓이

아이가 성장하기 전에는 꼭 아픔을 수반한다. 한 번의 앓이를 한 이후 걸음마도 고, 옹알이를 시작한다.

나의 사랑스러운 조카도 그렇게 크고 있다. 이유 모를 바이러스로 2주를 꼬박 열이 나고, 배가 아프다며 시무룩하다 낫고 나니 갑자기 말이 트이고 문장의 완성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뛰는 폼이 제법 안정감이 생겼으며 낙엽이 떨어진다는 것은 가을이 오는 것이라며 4살답지 않은 감성을 토해내듯 읊조린다.


예전에 스치듯 어머니가 해주신 말이 있다. 애들은 꼭 아프고 난 후에 많이 크더라는 말.

갑자기 그 말이 떠올라 어머니에게 물어봤다. "엄마, 조카가 아프고 나니깐 저렇게 말도 잘하고 잘 뛰는 건가?", "응, 신기하지? 너랑 누나도 그랬어. 아프고 나더니 갑자기 걷고, 또 아프고 난 뒤에 갑자기 말이 트이고."


이야기를 듣고 보니 참 신기했다. 운동을 했을 때도, 고시를 준비할 때도 지독한 슬럼프를 극복하고 나니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노력을 수반한 시스템들이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삶에도 반드시 성장 전에는 앓음이 따라오곤 했었다.





'해가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낮이 지나고 바로 아침이 될 수 없다. 해를 보기 위해서는 가장 길고 어두운 새벽을 버텨내야 한다.

'물은 100도가 넘어야 끓기 시작한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끓는 물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99도까지 열심히 온도를 올린 뒤에야 마지막 1도를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마지막 1도를 마저 견뎌내면 그제야 물은 끓기 시작한다. 30도에서 갑자기 100도가 될 수 없는 노릇이다. 온전하게 이겨내고 버틴 자만이 따뜻한 태양을, 그리고 따뜻한 물을 얻을 수 있다.


살면서 겪었던 오류 중 하나는 빠른 결말만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따라오는 과정들에 버거움을 느꼈다는 것이다. 예컨대 두 발 자전거를 배우기 위해서는 많이 넘어져 봐야 된다는 사실을, 높은 산을 올라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서는 다리가 저리고 발에 물집이 생겨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할 때가 많았다. 당연한 과정들을 부정하다 보니 '원하던 결말'이 아닌 '쉽고 편한 과정'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멋지게 자전거를 타고 싶었지만 넘어지는 아픔이 싫어 차라리 뛰는 게 더 편하다고 오판하고, 차오르는 숨이 버거워 산 중턱에서 갖가지 핑계를 대며 출발점으로 돌아가기도 하였다. 아픔을 이겨낸다는 것이 늘 말처럼 쉽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어떻게든 아픔과 고통을 버텨낸 자만이 멋진 풍경을 눈에 담고, 멋지게 자전거 페달을 쌩쌩 밟을 수 있다. 앓음 단계에서 피하거나 도망가면 딱 거기까지만 성장한다. 그러니 앓고 있다면 힘들어도, 무서워도 부딪히고 버텨보는 거다. 정복이 바로 눈앞에 와있으므로.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은 나날에 실망하고 있는가?

삶이 버거운 나머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은 하루가 반복되는가?


그렇다면, 그대를 축하한다.
100도가 되기 전 90도에서 99도 사이 어디쯤을 보내고 있을 테니.

그렇다면, 그대를 추앙한다.
이미 90도까지 끌어올리기에도 당신은 충분히 뜨거웠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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