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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Dec 30. 2023

야나할머니와 쥐 덫

쥐와 함께 떠오른 손녀의 뻥카

추석 무렵의 일이었다.

아침에 출근을 했더니 사무실이 어수선하기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옆 사무실 탕비실에 쥐가 들어 간식류를 헤집어 놓아 한바탕 난리가 났다는 얘기였고 급한 대로 시설팀에서 부랴부랴 쥐 끈끈이를 놓았는데 사람들이 쥐약을 놓는 게 빠르지 않겠냐고 의견을 제시했지만 출동한 외부 방역팀에게서 동물학대를 이유로 절대 안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사무실에도 길동 마우스님이 출몰하셨는데 친절하게 내 옆에 앉으시는 우리 사무실 간식의 여왕 부장님. 긴 회의를 다녀오실 때마다  받아 당 떨어진다며 여시던 작은 편의점이 마구마구 파헤쳐졌는데 희한 케도 커피 캡슐은 손대지 않고 갔다. 옆에 동료는 처음엔 소독티슈로 책상을 열심히 닦더니 결국엔 서랍이며 책상 위에 있는 모든 군것질 거리들을 폐기하는 어마무시한 결단을 몸소 실천했고 나는 살짝 고민하다가 책상만 닦고 그냥 먹기로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길동 마우스님의 출동으로 모든 직원들의 책상 위에 간식이 정리되는 좋은 결과를 남겼던 며칠 뒤 건물 밖 끈끈이에서 길동 마우스님이 강렬히 전사되셨다는 소식과 함께 이 사건은 일단락되어 잊히는 듯했다.




그리고 한 번 더 계절이 바뀌어 겨울이 되었고 주말 내내 긴긴 비가 내렸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출근을 하니 정말 영화에서 연예인 스캔들 터지고 뭐 사고 나면 빗발치는 장면처럼 인터폰과 휴대폰연신 울리는 상황 자리에서 연출되었다.


전화가 걸려온 이유는 2층인 나의 사무실부터 5층까지 전화선과 인터넷이 일부 먹통이 되었다는 얘기였는데 희한 케도 자리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핑계김에 좀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라며 솔직히 아쉬웠지만 답답한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고 나의 신고로 부랴부랴 전산업체에서 출장을 나오셨다.


처음엔 겨울비치곤 천둥 번개까지 동반한 큰 비가 내려 구조적으로 뭔가 이상이 생겼나 싶었는데 그러기엔 건물이 번개를 맞아 불이나지 않는 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다.

월요일 아침부터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으니 사람들은 진짜 멘붕에 빠져 아무 도 못하고 있었고 삼삼오오 모여 커피로 추위를 달래고 있을 즈음 도착하신 전산업체 팀장님과 제한 구역으로 갔다. 말 그대로 제한 구역이라 들어가진 못하고 문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는데 제한 구역도 지난번 부장님 자리에 길동 마우스님이 다녀가신  바닥 중간중간에 쥐 끈끈이를 놓았었는데 쥐 대신 다리가 많이 달린 벌레들만 들러붙었던 것을 기억하기에 이번에도 그럴 거라 별로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산업체 팀장님이 기함을 하시더니 이리저리 사진을 찍고 나와 결과를 보여주셨는데

흐헉! 언뜻 보아도 곰팡이가 핀 귤 세 개, 츄파춥스 사탕은 열개도 넘어 보였고 계란 껍데기와 하리보 젤리와 갖가지 간식들 흔적에 쌀알 같은 까만 응가도 모여 있었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색색으로 옷을 입고 있던 전선들이 끊어지고 잘린 것이 보였다.


"라따뚜이가 범인이었나 봐요"


나의 이 말에 근처에 와 안에 상황을 살피던 동료들이 몸서리를 치며 사무실 구석으로 우르르 도망을 갔고 나는 초토화가 된 전산실의 복잡한 기계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아 견적이 얼마나 나올라나?'




라따뚜이를 잡아라

그날 오후 사무실에 쥐 전문 방역업체 직원분들이 방문하셨고 기가 막히게 오시자마자 크게 울부짖는 라따뚜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제한 구역 앞으로 갔고 쥐 울음소리를 들은 동료들은 또다시 소리를 지르며 구석으로 도망치듯 쫓겨갔다.


"우와 꽤 크네요. 응가 봐선 작은 쥐인 줄 알았는데"


"선생님은 쥐 안 무서우세요?"


방역업체 직원이 놀라며 물었다.


"무섭긴요. 아마 제가 더 무서울걸요"


쥐를 봉투에 담아 나가시던 아저씨가 나의 농담에

당황한 듯 웃으셨고 진짜 쥐가 잡히자 당황한 시설팀에선 덫을 사 오셨는데 덫에 넣을 간식이 있냐고 물으시기에 나는 노란 소시지를 내어 드렸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쥐가 있나 없나 유리창 너머로 살피던 나도 진짜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쥐덫의 문이 닫혀 있었 우리 안엔 몸을 잔뜩 웅크린 쥐색 빛의 큰 쥐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라따뚜이 너 빅마우스구나"


나는 동료들을 아침부터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자리에 앉았고 시설팀장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유독 쥐 얘기에 예민한 우리 사무실 메텔여사가(평소 스타일이 은하철도 999에 나오는 긴 머리 여주인공을 닮음) 얼굴이 빨개지며 소리를 질렀다.


"아악 나는 쥐가 정말 싫어요"


그러게 길동 마우스가 좋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팀장님은 쥐 덫을 봉투에 담아 나가셨고 다음날 복도서 팀장님을 마주친 나는


"팀장님 라따뚜이 어케 됐어요?"


"에이 선생님 뭘 아시려고 그러세요. 대부분 여성분들은 쥐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시던데 선생님은 안 무서우신가 봐요?"


"무섭긴요. 저 출퇴근하다가 건물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담벼락 사이로 도망가는 쥐 종종 봐요. 그리고 클 때 많이 보고 컸는걸요"


"허허허 그렇습니까?"




"야야 얼른 니 애비 오라 해 본나"


할머니가 숨이 넘어가는 목소리로 아빠를 찾으셨다.


"야야 이것 좀 봐 본나. 쥐새끼가 이래 저지레를 해놨데이"


"어머이. 장롱을 을매나 안 들여다봤음 쥐가 이래 집을 짓는지도 몰랐대요"


"보자기에 이래 꽁꽁 싸매논 걸 뚫을 줄 누가 알았나. 아이고야 이 아까운 걸 우짼다나"


할머니 방 장롱 속 고이고이 모셔져 있던, 할머니가 약초 판 돈과 쌈짓돈을 몽땅 털어 큰맘 먹고 장만하신 당신 수의용 삼베천을 쥐가 야무지게도 뚫었고 그 뚫은 공간에다 보기 좋게 새끼도 낳아 기르고 이주를 한 것을 뒤늦게서야 아시고선 기가 막혀하셨다.

아빠가 장롱서 보자기 보따리를 끄집어내니 구멍 뚫린 보자기에서 나오는 쥐 배설물 더하기 이상한 냄새, 결혼식장에서나 쏟아지는 꽃가루처럼 떨어지는 천조각들 곡식 껍데기들, 갖가지 끈과 털 뭉치들 그야말로 기함하기에 충분했고 할머니는 어떻게라도 그 삼베천을 살려보려고 마당에다 펼치셨는데 마치 내가 색종이를 여러 겹 접어 가위로 가운데에 덥석 구멍을 낸 것처럼 삼베천은 회생 불가였다.


"마한노므 쥐새끼들이 이래 저지레를 할 때까지 닌 모 하고 있었나?"


할머니가 뜨럭에서 햇볕을 쬐며 졸고 있는 애나에게 버럭 화를 내셨다.


"할머이는 왜 애나한테 화를 내. 사고는 쥐가 쳤는데"


"고녜이가 쥐를 잡아야지 저래 잠만 자니 쥐가 저지레를 하지"


"할머이 내가 커서 돈 벌믄 삼베천 다시 사 줄 테니 아빠 말대로 이건 버강지에 넣고 태워버리자 냄새너무 나"




어느 해 인가 아랫동네 빈 회관에 먹을까 말까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나프탈렌부터 자개가 박혀 있는 크고 만 밥상까지 없는 게 없었던 물건을 싣고 온 만물장수가 왔고 저녁마다 구경을 가시던 할머니는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단체로 수의용 삼베천을 사 오셔서 아빠랑 큰 소리가 났었다. 할머닌 수의를 스스로 마련하면 장수를 한다는 장사치의 영업에 넘어갔고 훗날 아들 내외에게 부담을 덜어주고 싶으셔 사셨다 하셨지만 아빠 눈엔 당장 필요치 않는 큰돈을 들여, 게다가 제작된 수의도 아니고 또 할머니 신체 사이즈에 맞춰 재단을 해서 수의를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남아있는 삼베천이 반가울 리 없으셨고 무엇보다 젤 큰 이유는 미리 죽음을 준비하는 머니가 맘에 들지 않으셨을 것 같다.


그렇게 쥐  부부의 신혼방이자 산실과 육아의 용도로 귀하게 쓰인 뒤 한 바가지의 재로 변해버린 삼베천. 그리고 더 이상 우리 집엔 삼베천이 들어온 기억은 없었다.




할머니의 입관식에 들어갔더니 장례지도사가 할머니가 입으실 수의천을 고르라고 했다.

날실 올실 나일론, 가사 시간에나 들어봤던 온갖 용어들이 다 나왔고 나일론 실이 썩는 데는 삼십 년이 걸린다며 환경 걱정까지 하시던 장례지도사님. 그 당시 나일론 섞인 수의와 백퍼 수의는 정확히 가격 차이가 오십만 원이 났고 아버지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젤 비싼 수의를 선택하셨다. 나도 그땐 할머니한테 가장 좋은 수의를 입혀서 보내드리는 것이 당연지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장례지도사의 영업에 너무 혹 했던 것은 아니었나? 그런 생각도 사실 찜찜하게 남아있다.




돈 벌면 할머니한테 좋은 삼베천을 사드린다고 뻥카를 야무지게 날린 손녀는 지금도 그 지키지 못한 약속을 쥐가 보일 때마다 떠올리며 살고 있다.

또다시 다가온 새해 앞에 이런저런 생각과 감정의 정리들을 하다 보니 새삼 지키지 못한 약속들이 꽤나 많았음을 기억한다.

언제 밥 한번 먹자는, 조마간 얼굴 보자는 말들은 왜 그리 많이 한 건지...

그리고 또다시 365일이란 시간이 지나 찾아온 할머니의 추도예배.

내가 두고두고 가장 후회가 되는 것은 그 아픈 다리를 시원하게 주물러 드리지 못한 것인데 얼마 전 무릎 수술을 마치고 고통스러워하시는 시어머니의 틀니 빼신 납작한 볼을 보고 있으려니 자꾸만 할머니 생각이 보태져 눈물이 났다.




나는 지금도 매일매일 출근을 하면 쥐덫을 확인하고 있고 다행히 소시지도 사탕도 덫 안에 말라 비틀어진 그대로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사고 수습 견적은 삼백만 원이 나왔고 지은 죄는 괘씸하지만 나는 길동 마우스가 지금도 불쌍하다. 그날 소시지를 드리지 말걸 하는 후회가 내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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