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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Aug 05. 2023

야나할머니와 땅강아지

우리 집엔 사라진 똥강아지


"야마큼 와본나"    

 

할머니가 다른 날과 다르게 다급한 목소리로 우릴 부르셨는데 나보다 더 가까이 할머니 곁에 있던 동생이 먼저 나도 달려가 보니 할머니가 양손을 모아 동그랗게 공을 만들고 기다리고 계셨다.      


"할머이 왜?"     


"야나 이거 본나"     


"게 뭔데?"     


할머니가 모으고 계신 손을 조심스레 열자 그 안에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갈색 곤충 한 마리가 얹혀 있었다.     


"할머이 그건 무슨 벌거지여?"     


"땡깡애지여 땡깡애지"


"이잉 이게 땅강아지라고? 강아지가 뭐 이르케 생겼대? "


땅강아지가 할머니 손에서 도망가려고 바둥바둥하자 할머니가 간지럽다고 웃으시며  다시 손에 가두셨다.  

   

"할머이 나도 만져볼래"     


할머니는 손을 내민 막냇동생에게 조심스레 건네셨고 할머니처럼 손 공을 만들려고 하던 순간 땅강아지가 덥석 동생 손가락을 물었고 순식간에 놀람과 아픔을 체험한 동생이 휘두른 손에 땅강아지가 포물선을 그리며 마당에 떨어졌다. 동생은 손가락을 붙잡고 울음을 터트렸고

               

"어디보재이 피가 나나 안 나나? 마한기 요기를 물었네. 갠자네 피 안나"


할머니가 웃음을 참으며 동생의 손가락을 살펴보시곤 당신의 손으로 썩썩 문지르시더니 마당으로 날아간 땅강아지를 주우러 가셨다.


"진짜 피 안나?"


동생이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울먹거리며 손가락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마이 아파? 땅강아지가 개처럼 콱 물어서 땅강아진 가봐"  

  

나는 빨갛게 물린 자국을 '호호' 불어 주었다.  


"땡깽애지가 니가 언난거 알고 덥석 물었나 보다. 마한 것. 지 명만 줄이찌"     

   

할머니는 주워온 땅강아지를 닭장에 넣어 주러 가셨고  닭들이 서로 먹겠다고 요란한 소리와 날개를 푸드덕 거리며 한바탕 쟁탈전을 치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할머이 땅강아지 안 살리 주고 닭장에 느줬어?"     


"마한노므 땡깽애지들이 산에 안 있고 저지레 할라고 마당까지 내리 왔잖나. 마당에 왈칵 알이라도 쓸어 느 애미 아끼는  뿌렁지들 다 갉아 문다. 그라니 들 눈띄거들랑 싹 다 잡아다 달구새끼 주래이"   

  



그리고 며칠 뒤여느 날과 똑같이 마당서 놀던 동생 눈에 땅강아지가 발견되었다.


"언니야 여기 땅강아지 있어"     


나는 땅강아지를 자세히 보려고 마당에 납작 엎드렸다.     


"우와 얘 디기 신기하게 생겼네. 날개도 있고 앞다리에 가시 같은 게 달려 있어. 지난번에 막내 물었던 애가 입으로 문 게 아니고 이 가시 발로 찝었나봐"     


"할머이가 보이면 잡으라고 했잖아. 얼른 잡아서 닭 주자"     


"니가 잡아"     


"언니가 잡아"     


둘이 서로 잡으라고 미루는 사이 땅강아지는 날개를  붕하고 날아 화단 풀숲으로 숨어 버렸다.


"어, 어, 어 어떡해 자가 화단으로 날아갔어. 꽃 갉아먹으면 어떡하지?"     


"쟤는 오늘 닭 모이가 될 아이가 아니었나 봐 그냥 살리 주자"     


나는 동생에게 물릴까 겁이 난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인심 쓰듯 말했다.     




"요새 동네에 땅강아지가 확 퍼져 임씨네 오이밭에 오이싹이 마이 죽었다네요. 니들도 다니다 땅강아지 보면 잡아"   


저녁을 드시던 아빠가 말씀하셨다.


"아빠 우리 오늘도 땅강아지 봤는데."


"그래? 어디서 봤나?"


"우리 마당에서"


"마당에서?"


"아빠 근데 땅강아지가 물어. 막내도 물려서 울었었어"     


"마당서 땅강아지를 봤다고? 그럼 손으잡을라 하지 말고 발로 밟아 등을 으면 되잖아"     


"히히히 그건 몰랐네"          


그 뒤로 우리는 밤마다 백열등으로 날아들고 마당에 슬금슬금 돌아다니고 화단서 보이는 땅강아지를 매미 잡듯이 눈에 불을 켜고 잡아 닭장에 간식으로 넣어 주었고 아빠가 가르쳐 주신대로 잡다보니 물리지도 않았고 무서워 하지도 않게 되었다.               

      



구피 치어들을 넘보는 뚱이

우리 사 남매는 할머니 덕분에 아주 많은 곤충 공부를 하며 자랐고 그 덕분에 나는 두 아이를 키울 때에도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엄마 이게 모예요?"    


"응 그건 소금쟁이야"


"엄마 이게 모예요?"


"그건 물방개지"


"엄마 이건 모예요?


"그건 풀색노린재야"


"엄마 이건 모예요?


"그건 땅강아지야"


" 이게 저라고요?"


"똥강아지 아니고 땅강아지"


주말 시골에 가거나 생태공원에 산책을 나가면 하루에 백번도 넘게 질문하는 아이들 때문에 솔직히 지쳤던 적도 있었지만 한참 곤충에 관심을 갖은 아이들의 물음에 그래도 막힘없이 척척 대답해 주면 아이들은 곤충들을 손바닥이나 나뭇잎 위에 올려놓고 신기해 했고 나 또한 즐거웠다. 그러다 보니 유치원과 학교에서 들고 온 누에와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딱정벌레를 유충부터 성충까지 키우게 되었고 알도 낳고 탈피도 하는 한살이 과정도 지켜보면서 오히려 아이들보다 내가 쏠쏠한 재미를 느꼈 는데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병아리와 오리를 키우던 일이었다. 병아리는 아이가 학교 앞에서 오백 원을 주고 사 왔고 오리는 작은 아이가 방과 후 수업에서 데려 는데 가족들의 작명 회의 끝에 아리와 뚱이라고 불렀었다. 하지만 뚱이가 너무 쑥쑥 자라고 꽥꽥 거리는 바람에 시골로 데려가 우리를 짓고 키웠는데 나중엔 기르던 것을 차마 잡아먹을 수 까진 없어서 고민 끝에 당숙부님 댁에 가져다 드리는 걸로 이별을 해야 했다.

아리가 당숙부님 댁으로 가기 전 사진




떼어 놓고 올 뚱이가 안타까운 아이들 뒷모습

산책을 하다가 정신없이 달아나는 도마뱀과 땅강아지를 만나 얼른 전화기를 꺼내 사진을 찍었지만 굼뜬 손놀림에 아이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보도블록만 찍히는 상황이 연출됐다. 나는 할머니의 소개로 땅강아지를 만났던 그날이 떠올라 함께 걷던 남편에게 땅강아지 사건을 들려주었고 또 그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얘기하다 보니 아이들 어릴 적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던 아리와 뚱이의 기억도 끄집어냈고 자연스레 아이들의 어린 시절까지 소환해  웃었는데 꼭 붙일 얘기가 하나 있다. 그 시절 남편은 아이들을 똥강아지라고 불렀었는데 한날은 작은 아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자기를 개취급하지 말아 달라고. 그래서 남편은 더 이상 똥강아지란 표현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24시간 돌아가고 있는 에어컨 밑에서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산책길 생각지도 못하게 만난 땅강아지와 도마뱀이 사라지지 않고 아직까지 우리 동네서 살고 있다는 것은 반갑긴 한데 사람도 훅훅 쓰러지는 이 더위에 어느 바위틈에서 더위를 잘 피하고 있을는쪼꼼 염려가 된다. 그리고  우는 아이들을 온갖 말로 달랜 뒤 비료포대에 아리와 뚱이를 담아 한참을 달려 당숙부님 댁 마당에 두고 왔던 일과 어른들은 그때 몸보신이 좀 되셨을까?주책 맞은 궁금증이 생겼다. 



뚱이를 시골로 데려다 놓았던 날.
아이들이 너무 조용해서 찾던 중 우리 앞에서 둘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한참 지켜보고 있던 아이들 뒷모습이 너무 귀여워 사진을 찍어 두었었는데 십 년도 훨씬 넘은 지금 이 사진을 다시 소환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지금도 좋지만 그 시절도 살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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