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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Jul 01. 2023

야나할머니는 놀이 슨상님

수염 난 꼬꼬놀이

진정한 개냥이

"앙꼬 놀이놀이할까?"


"에옹"


요즘 들어 점점 더 긴 기럭지를 자랑하는 앙꼬는 작은 아이가 흔들어 주는 깃털을 열심히 좇다가 포물선을 그리며 거실 구석으로 던져진 장난감을 쏜살같이 달려가 물고 와선 아이 앞에다 무심하게 몇 번이고 떨어트리곤 다시 던져 주기를 바라는 애원의 눈빛으로 대기를 하고 있다.


"앙꼬 놀이놀이하고 있어? 너는 진정한 개냥이구나?"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다 곁을 지나던 내가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주니 꼬리는 한껏 더 치켜졌다.




요즘 신식 제기

그날 오후 물건을 찾던 나는 서랍 구석에 있던 제기를 꺼내 부스스하게 구겨진 수술이 펴지라고 힘껏 흔들었는한 번 더 흔들려는 찰나 앙꼬가 식탁 아래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는지 소리도 없이 냅다 달려와 제기를 잡으려 뛰어올랐고 방바닥으로 후두둑 수술 비가 내렸다.


"아이 깜짝이야. 앙꼬 키가 크긴 컸네. 이래 단숨에 달려오고. 이게  장난감으로 보였어? 근데 이건 대모님 건데"


방울까지 달린 제기이리저리 흔드니 앙꼬는 더 신이 나서 번쩍번쩍 점프를 했고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수술을 기지 않으려 두 팔을 흔들고 있었는데 순간 든 묘한 기분은 놀이선생도 아니고 치어리더도 아닌 방울을 흔드는 주술사가 된 것 같았다.


"앙꼬야. 대모님 기운 딸려 그만 놀자"


마치 나의 말을 알아들은 것 마냥 앙꼬는 서랍에 제기를 넣는 나를 좀 전보다는 작아진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귀하고 귀했던 병뚜껑

얼마 전 주말 남편의 고종사촌 동생의 결혼식이 있어 예식장에 다녀왔다. 남편의 사촌들 중에 마지막 싱글이었던 아가씨는 혹시나 '비혼주의자인가?' 라는 묻지 못했던 나의 질문이 틀렸다는 듯이 눈부신 웨딩드레스에 대따시 큰 왕관을 쓰고 신부대기실에 앉아 쑥스런 미소로 우리 부부를 맞아주었다.

친구들 대비 늦은 결혼인 만큼 더 재미나게 알콩 달콩 살기를 바라는 맘으로 예식을 보고, 예식장에 들어설 때부터 쭉 나를 설레게 했던 뷔페식당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는데 식당에 유리병으로 된 음료수 병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와우 아직도 병으로 된 음료수가 나오는구나"


"그러게 오랜만에 보. 음료수병 하니까 생각난 건데 어렸을 적 동네에 잔칫집 있으면 음료수 한 병 얻세상 다 가진 것처럼 뿌듯한 맘으로 한 손엔 병들고 한 손엔 병뚜껑 들고 조금씩 따라서 홀짝거리며 태용이하고 놀았었다. 그 쇳내 나던 병뚜껑 냄새 진짜 강렬했었는데"


남편도 나만큼 반가웠는지  번도 들려주지 않았던 어릴 적 얘기를 해주며 음료수 병을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있었다.


"역시 부르주아는 달랐네. 음료수를 한 병이나 들고 놀았다니. 음료수가 뭐야 나는 병뚜껑 주우러 다니기도 바빴는데. 그때 나한텐 이 병뚜껑도 엄청 귀했어 이게 있어야 제기를 만들 수 있었거든"


"에? 제기를 병뚜껑으로 만들었다고? 나는 굴러다니던 엽전이나 구멍 난 부품 같은 거로 만들었었는데"


"굴러다니던 엽전이라니. 그니까 당신이 부르주아였다고. 그때 이렇게 쇠로 된 병뚜껑이 달려 있던 게 음료수랑 병이었어. 그래서 애들이 이거 구할라고 가겟방 앞에서 계속 기웃거렸는데 경쟁자가 많아서 하늘의 별따기가 아니라 가겟방의 병뚜껑 따기였어. 젤 대박은 뭐였는지 알아? 가겟방에 기대 없이 나갔다가 맨날 막걸리나 소주를 드시던 할아버지들이 웬일로 맥주를 드시는 날이 있어. 그러면 그날은 완전 계 탄 거지. 특히나 우리 옆집 할아버지가 맥주를 잘 드셔서 가겟방 들마루에 옆집 할아버지가 앉아계신다 싶음 계속 그 언저리에서 할아버지를 감시하며 놀았어"


"병뚜껑 때문에 스토커가 된 거야? 무서운 사람일세. 자 지금이라도 이 귀한 병뚜껑 챙겨 넣어"


남편이 동전을 포개어 듯 병뚜껑들을 집어 내 손에 꼭 쥐어 주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오늘 옷엔 주머니가 읍어. 근데 쇳네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하네"




우리 동네 파출소 마당에 접시꽃

"할머이~"


"와아?"


"저 담 밑에 쌔빨간 꽃 이름이 뭐여?"


"담삐락 밑에? 그거 집시꼬치자네"


"집시꽃? 꽃이 엄청 빨개. 아까부터 벌이 계속 꿀 먹으러와"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접시꽃에 들락거리는 벌들을 구경하고 있던 나는 문득 꽃 이름이 궁금해졌다.


"니 내가 재미진갈촤주래?"


멋쟁이 신사 수염이 될 거야

할머니는 접시꽃에서 꽃잎을 하나 떼어내고 꽃 끝부분을 살살 쪼개니 신기하게도 꽃이 나비 날개처럼 두 개로 펼쳐졌고 그 벌어진 부분을 내 콧잔등 위에 올려주셨는데 풀냄새와 촉촉한 느낌이 났다.


"여봐라 이래믄 달구시끼 대가리에 제?"


"우와 할머이 꽃이 갈라지네 엄청 신기해"


"후훗 신기하나?"


할머니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시더니 마당 화단에 있던 강아지풀을 머리만 뚝 떼어 또 좀 전처럼 끝 부분을 살살 갈라 두 개로 갈라 끝부분만 남겨 놓곤 내 인중에 수염을 붙여 주셨다.


"우와 이러면 수염 달린 닭이야? 꼬꼬댁 에헴~"


마당에서 들리는 신이 난 내 목소리에 안방 마루서 놀던 동생들이 내려왔고 할머니는 동생들 얼굴 크기에 맞는 접시꽃잎과 강아지풀을 뜯어 닭벼슬과 수염을 만들어 주셨다.




지금도 반가운 병뚜껑

"땡땡땡땡 땡땡땡땡"


마당 구석에서 할머니가 장도리를 들고 뭔가 두드리고 계셨다.


"할머이 뭐 해?"


"뭐 하긴 제기 맹글지"


"제기가 뭐여?"


"기다리보래이 내가 맹글어 볼테이"


한참 뒤 할머니가 나와 동생들 손에 쥐어주신 것은 병뚜껑에 뻣뻣한 비닐을 매달은 제기였고 할머니가 알려준 제기차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운동회날. 어떻게 듣고 그 산골까지 찾아온 것인지 이것저것 싣고 온 장사꾼에게 나는 운동회라고 할머니가 아침에 준 백 원으로 노란 머리에 노란수술이 달린 제기와 하얀 고무꽈리를 샀다.




나는 지금도 가끔 문구사에 들르면 전통놀이 코너에 가보고 새로 나온 제기를 산다.

제기도 시대에 따라 머리 크기와 수술, 방울까지 점점 더 진보하 크기가 커지고 있고 가격도 많이 올랐는데 제기는 혼자 차는 것보다는 여럿이 모여 함께 는 것이 진짜 노는 맛이 있기 때문에 학창 시절 산골에서 참 요긴하게 놀던 놀이였다.


 생뚱맞은 이력이긴 하지만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군에서 열린 체육대회에서 제기를 오십 개를 넘게 차고 일 등이 확정되자 사회자의 요청그만 찼던 기억과 제기를 찰 때마다 희한한 손놀림으로 우리 배를 움켜쥐게 했던 친구 옥미가 있었고 아무리 연습해도 딱 한 개 밖에 차지 못했던 순영이까지 제기는 참 많은 추억을 담고 있다.




할머니 덕분에 제기차기 조기교육자였던 나는 지금까지도 평생교육을 실천하 듯 제기를 차고 논다.

제기를 발견하고 앙꼬랑 놀아주던 그날 저녁 가족들과 산보 삼아 나간 공원행제기를 고 나갔고 아이스크림 내기를 걸고 공원에서 경기를 한 결과 나는 남편보다 간신히 한 개를 더 차고 아이스크림을 얻어먹었다. 지난번 보다 절실히 느껴진 무거운 몸에다 맘과 이미 차고도 남았는데 이제야 천천히 올라오고 있는 다리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표정을 촬영한 작은 아이는 남편과 영상을 돌려보며 배를 잡았고 나를 웃게 했던 친구들처럼 이젠 내가 가족들에게 웃음을 던져주었다.




며칠 전 셋이서 동네 파출소 앞을 지나다 한아름 펴 있는 접시꽃들보았는데 작은 아이가 어릴 적 엄마가 알려준 닭 놀이를 했던 꽃이라며 반가워했다. 할머니한테 배운 대로 나는 아이들과 함께했을 뿐인데 접시꽃이 지지 않는 한, 강아지풀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 아이들에게도 엄마의 어린 시절 놀이로, 아이들의 어린 시절 놀이로 기억될 것이라 생각하니 담장 밑에 빨갛게 피어있던 접시꽃이 마치 시대와 시대를 이어주고 오가는 타임머신 같다는 생각이 들었. 접시꽃을 보며 떠오른 할머니와의 추억. 할머닌 그 시절 우리들에게 참 좋은 놀이 슨상님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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