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바라기 May 24. 2023

야나할머니와 장화

장화나 레인부츠나 거기서 거기

한참 전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작은 아이는 밤에 열이 펄펄 끓더니 밤을 꼴딱 새웠다. 급하게 코로나 키트를 했더니 음성으로 나왔지만 4월 모의고사를 앞두고 맘을 쉽게 놓을 수 없고, 밤 새 아이의 앓는 소리에 덩달아 잠을 깨다 말다 반복한 내가 살짝 졸던 그 찰나 웩웩거리는 소리가 들려 눈을 번쩍 뜨니 냥이가 헛구역질을 하며 맑은 물을 토하고 있었다.


"우뜨케 야도 감기 걸린 거 아녀?"


나는 급하게 청소와 소독을 했고 냥이는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뜨고 슬금슬금 다가와 킁킁 냄새를 맡고 돌아섰다.


"엄마 공복이 오래 지속되면 맑은 토를 할 수 있대"


"한참 자야 할 시간에 아픈 집사 걱정하느라 움직여서 공복을 더 많이 느꼈나 보다. 아고 불쌍해라. 이리 와 대모님이 까까 주께"


집사 간병하느라 부스스해진 냥이


생뚱맞은 새벽 시간에 츄르탕을 만들려고 부스럭 거리는 나를 보고 냥이의 꼬리는 우산 손잡이처럼 한껏 휘어져 에옹거리며 내 주변을 맴돌았고 홀짝홀짝 맛있게 먹곤 잠이 들었지만 딸아이는 소파에 앉았다가 누웠다가, 방바닥에 누웠다가 앉았다가, 침대에 누웠다가 앉았다가, 베란다에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아픈 몸을 어찌하지 못하고 서성이는 사이 날이 밝고 있었고 나는 졸린 눈으로 아이의 동선을 고 있었다.


 



"자 집합! 다들 아침 먹읍시다"


"일곱 시 반 밖에 안 됐는데 벌써 아침을 먹어? 토요일인데 좀 천천히 먹자"


덩달아 잠을 설치다 새벽에 막 잠든 남편이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왔다.


"토욜에다 비까지 와서 병원에 대기인 엄청 많을 거야 그러니 서둘러야 해"


"넌 다 계획이 있구나?"


남편의 성대모사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딸네미도 문제고 나도 살짝 별론거 같애. 오늘 비도 많이 온댔으니 빨리 다녀와서 쉬자"


부랴부랴 밥을 먹고 셋이서 집을 나섰다.




"비가 오는데 지렁이 세 마리가 꼬불꼬불 아침 먹고 땡 점심 먹고 땡 저녁 먹고 땡 아이고 무서워 해골바가지"


장화에 우산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물 웅덩이를 첨벙첨벙 밟고 앞서 걷는 나를 보고 함께 우산을 쓰고 던 작은 아이랑 남편이 소근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서두른 이유가 저거였군. 그리고 그 촌스런 돌림 노래는 뭐야"


"비 사이로 막 들리 둘이 내 흉보는 거"


주차장 웅덩이에 발을 담그고 첨벙거리던 내가 몸을 휙 돌려 둘을 째려보자


"흉은 누가 봤다고 그래.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간다고 칭찬한 거야"


남편이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흐헉! 아직 9시도 되지 않았는데 어림잡아 보아도 대기인이 20명이 넘는 것 같았다. 접수 대장에 이름을 쓰려고 보니 아이가 24번째 내가 25번째였다.


"대박. 다들 이렇게 부지런하다뉘. 우리 꽤 기다려야 할 거 같은데"


"그럼 둘이 진료 보고 연락해 나는 차 한 잔 하고 있을게"


나와 작은 아이는 대기실 구석 빈 의자에 앉아 사방에서 쿨룩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자꾸만 누우려고 하는 어린 꼬마를 안타까운 눈으로 보다 나는 발 끝을 흐뭇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엄마 장화 신어서 좋아?"


"응 좋아. 푹신하고 포근하고. 막 걸어도 되고. 콘푸로스트도 안 먹었는데 힘이 솟는 거 같애"


"엄마 클 때 장화 안 신어봤지?"


"안 신은게 아니라 못 신은 거지"


"엄마가 장화 신고 너무 흐뭇해 하는 거 같아서. 나는 초등학생 때 엄마가 장화 신고 학교 가라하면 싫었었는데"


"그래? 난 몰랐었네. 왜 싫었어?"


"우선 발이 무겁고 신고 벗는 것도 불편하고, 젤 싫은 건 신발장에 장화가 세워지지 않아서 눕혀 놓아야 했는데 그러면 복도로 툭 튀어나와 그런데 남자 애들이 뛰다가 툭 쳐서 떨어지고 다시 넣어도 떨어지고. 한 번은 누가 내 장화를 떨어트리고 갔는데 나는 몰랐거든. 그런데 1학년 때 담임 내 신발장 번호를 부르더니 정리 제대로 안 했다고 막 급발진을 하는 거야. 그때 엄청 억울해서 눈물이 날 뻔했지만 울진 않았어. 그 아줌마 선생님 잔소리 마녀였는데 지금은 퇴직하셨겠지?"


"그 샘 학부모들 사이서 두고두고 말 많았는데 애들한테도 안친절했구먼. 근데 왜 그때 장화 신고 가기 싫다고 한 번도 말 안 했어?"


"비만 왔다 하면 온 동네 애들이 다 장화 신고 학교가니 당연한 줄 알았지. 그래도 엄마가 우비까지 입고 가라 안 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 그리고 내 발이 팍팍 커서 그 장화 지수네 줬잖아. 나 그때 엄마가 장화 또 사줄까 봐 속으로 걱정했었는데 예상을 깨고 크록스를 사주는 바람에 너무 좋았지"


장화 얘기를 하다가 알게 된 아이의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맘. 갱년기라 그렇다고 이해해 주기엔 너무도 히스테리 적으로 아이들을 차별하고 학부모들에게 반말을 서슴지 않게 했던 아이의 담임. 장화는 까마득히 잊고 있던 사람과 아이의 기억까지 끄집어내 주었다.




길에서 친구들과 한 발 뛰기를 하고 있는데 동네 입구에 할머니가 걸어오고 계신 게 보였다. 관절염 때문에 원래 걸음걸이가 빠르지도 예쁘게 걷지도 못하시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그날은 유난히도 걸음이 불편해 보이고 힘들어 보였다. 분명 어깨에 다래끼 하나만 매신 걸로 보이는데 뭐 무거운 거라도 담으셔서 그런가? 나는 쏜살같이 할머니한테로 뛰어갔다.


"할머이 발이 왜 그래?"


가까이 다가가서 본 할머니 왼발엔 농사용 비니루가 붕대처럼 둥둥 감겨 있었다. 그리고 그 속으로 삐죽삐죽 튀어나온 시퍼런 쑥 잎이 보였고 고무신을 오른발에만 신고 계셔서 발이 시원치 않다는 걸 알았는데 할머니 등 뒤로 보이는 시멘트 길 위에 붉은 색을 띤 발도장이 쿵쿵 찍혀 있었다.


"할머이 발에서 피나?"


나는 할머니 다래끼를 건네받으며 물었다.


"그래 피난다. 어여 앞서 걸어"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수돗가에서 발을 칭칭 감고 있던 비니루와 쑥을 조심조심 벗겨 내셨다.




둥둥 싸맸던 쑥을 떼어내자마자 할머니 발에서 시뻘건 핏물이 틀어진 수돗물을 타고 스르륵스르륵 계속해서 흘렀다. 할머니는 발가락 사이에 난 상처를 엄지 손가락으로 한참 동안 꾹 누르고 계셨고 나는 안방에 있던 빨간 아까징끼와 오징어 뼈를 갖고와 할머니 곁에 쪼그려 않아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 피가 멈춘 것 같자 할머니는 아까징끼를 바르시고 오징어 뼈를 숟가락으로 벅벅 긁어 상처를 덮은 뒤 하얀 광목천을 대고 한복에 딸려 입는 허리띠 같은 긴 천으로 발을 꽁꽁 싸매시곤 손을 덜덜 떨고 계셨다.


"할머이 얼굴이 느므 하얘"


"발이 지릿지릿한기 한 잠 자야겠다."


할머니는 방에서 장수풍뎅이 애벌레처럼 잔뜩 웅크리신 채로 조용히 낮잠을 주무셨다.




"아빠 할머이 발에서 피가 엄청났어"


밭을 갈고 돌아오신 아빠가 외양간에 소를 들여 것을 본 나는 쪼르르 달려가 낮에 본 사실을 전했고 아빠는 할머니 방에 들어가 누워 계신 할머니 발을 들여다보곤 할머니를 업어 경운기에 태운 뒤 보건소에 가셨다. 할머니는 낡은 광목천 대신 병원에서 쓰는 노란 붕대를 둥둥 감고 오셨고 그날 할머니 저녁밥은 방으로 배달되었다.


저녁을 먹으며 아빠한테 들은 얘기는 할머니가 밭에 다녀오시던 길에 도랑가에 무성히 올라온 미나리를 보게 되셨고 그 미나리를 뜯으러 도랑에 발을 딛는 순간 풀 속에 숨겨진 깨진 유리병 조각이 할머니 고무신을 뚫고 엄지와 검지 발가락 사이를 찌른 것이었는데 시내까지 가서 꿰메기엔 시간도 늦었고 차편도 마땅치 않아 보건소에서 최대한의 처치를 하고 오셨고, 자꾸 움직여서 상처가 벌어져 출혈이 심해지면 생명도 위험하다고 절대로 할머이가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당부를 듣고 오셨다 했다. 다행히도 할머니는 저녁밥을 남기지 않고 다 드셨고, 보건소에 다녀오시고 식사도 마치신 뒤 그제야 맘이 놓이셨는지 내가 까부는 개다리 춤 웃기 시작하셨다.




며칠 뒤 할머니는 뜨럭에 앉아 뚫어진 고무신을 굵은 명주실로 꿰매고 계셨고 아빠는 뚫어진 신을 신고 또 발을 다치려 하냐며 버리라고 화를 내셨지만 할머니는 듣는 척도 하지 않으시고 꿰맨 고무신을 신발장 위에 가만히 올려 두셨다.

평상시엔 산으로 밭으로 늘 바쁜 할머니셨는데 발을 다치시는 바람에 종일 집에 계시는 덕분에 나는 학교에 다녀오면 학교 잘 다녀왔냐고 맞아주는 어른이 계신다는 것이 마치 테레비에서 보던 도시 소녀가 된 것 같아 너무도 좋았다.


그 뒤로도 나는 학교 다녀오는 길에 약방에 들러 소독약 하고 연고를 사 오는 심부름을 했고 심부름 값으로 꼬박꼬박 백 원씩을 얻었다. 할머니 발 상처는 막냇동생의 뽑힌 대문니가 올라오는 것 보다도 더디고 더디게 아물어 갔는데 나는 오래오래 심부름을 하고 싶어 할머니 발이 더디게 낫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철 없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발을 다치신 뒤 시간이 날 때마다 알람처럼 씨레빠 신고 맨발론 절대 도랑에 드가지 말라는 잔소리하셨고, 더 이상 약 심부름도 하지 않고 잔소리가 지겹다고 느껴질 무렵 발을 씻으실 수 있게 된 할머니는 그동안 가지 못하셨던 장에 가신다고 일찍부터 짐들을 꾸리셨는데 오랜만에 장에 가시는 할머니 발걸음에 나의 마음도 얄랑얄랑 설레며 부풀어 올랐다.




"눈나야 나 로보투 같지?"


학교에 다녀오니 막냇동생이 엉덩이까지 올라온 새까만 긴 장화를 신고 양팔에도 어깨까지 닿는 장화를 끼고 어그적 거리며 마루를 걷고 있었다.


"어 완전 태권브이 같애. 근데 쌔 장화가 어서 났나? 또 누구네 장사 터졌나?"


"아니 할머이가 사 왔어"


"근데 왜 두 개야?"


"할머이가 아빠 발 크기를 몰라서 두 개 사 왔대."


"야 근데 고무냄새가 너무 마이 나는 거 아니나? 야 니 다리랑 팔이 까매졌자네"


장화를 신고 땀이 난 동생의 종아리와 팔뚝에 검은 물이 들어있었다.




"아니 어머이 꺼나 사 오지 뭐 하러 비싼 장화를 두 켤레나 사 와요?"


"도랑에 소꼴 비러 갈 때 신고 가래이 유리 조심하고"


그리고 며칠 뒤 예배에 다녀오시던 아빠는 태화상회에서 작은 장화를 한 켤레 사 오셨고 장화를 받은 할머니는 뭐 하러 돈을 쓰냐고, 됐다 하시면서도 발에 딱 맞는 당신의 전용 장화가 생긴 것을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셨다. 그리고 할머니의 장화는 내가 신고 비 오는 날 처마 밑 웅덩이를 첨벙거리기도 하고 눈 오는 날엔 발도장을 찍고 다녔는데 장화는 발바닥에 있던 주름이 사라져 맨질맨질해질 때까지 할머니 신발장을 오래도록 지키고 있었고 나는 작아진 할머니의 장화대신 아빠의 장화를 신고 노는 날이 더 많아졌다.




나의 일터엔 가끔씩 재밌는 유행이 돌곤 하는데 처음엔 토끼털 조끼가 그다음엔 모피가 유행을 했고 또 눈썹 문신과 아이라인 문신이 유행이 되어 떼거지로 시술을 받는 일이 생겼었다. 그 뒤엔 또 장화가 유행을 했고 그간 이 모든 유행에 동참하지 않았던 나는 매번 요란하게 호들갑 떠는 직원이 사실 너무너무 꼴 보기 싫었다.


"쌤~ 우리 공구할 건데 같이 하면 어때요? 쌤은 걸어 다니니깐 우리보다 더 필요할 거 같은데"


"에이 됐어요. 비싼 장화를 몇 번이나 신는다고"


"쌤! 촌스럽게 장화가 뭐예욧. 수준을 좀 높여봐요"


"그럼 장화를 장화라 부르지 뭐라고 불러요?"


"그것도 몰라요 레인부츠잖아요"


'옘병...'




조카가 집에 놀러 왔는데 장화를 신고 왔다.


"똥장군 장화 샀네. 가 한 번 신어봐도 되지?"


"발은 큰데 찢어지면 어떡해요?"


"그라믄 모가 다시 사줄게"


또래 대비 키도 발도 한 뼘씩은 더 큰 조카의 장화는 내 발에 들어갔고 아빠랑 할머니 장화를 신고 놀던 그 포근했던 촉감이 떠올랐다.


"이모야 이거 어서 샀나?"


"팡팡. 요새 초등학생용도 크게 나와서 언니도 신을 수 있을걸"


나는 바로 팡팡을 검색했고 팔리지 않은 건지 판매 전략인지는 몰라도 재고가 1개 남았다는 장화를 하나 발견하곤 잽싸게 결재를 했고 다음날 내 생애 첫 전용 장화가 고무 내를 팍팍 풍기며 현관 앞에 도착해 있었다.




언뜻보면 단체 작업화 마냥 유행을 이끌었던 고가의 장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로고도 박히지 않은 평범한 장화지만 나는 내 전용 장화를 신고서야 할머니의 그 흐뭇했던 웃음을 이해했다.


여러 종류의 신발이 있지만 장화는 비 오는 날에 신어서 그럴까? 특유의 만족감이 있다. 애석하게도 장화를 신고 폴짝폴짝 간 곳이 진료를 위해 방문한 동네 병원이긴 하지만 물 웅덩이를 첨벙거리고 보니 어릴적 발을 적시지 않고 물고기를 잡으려고 어른들 장화를 끌고 도랑에 갔다가 장화 안에 물고기랑 가재들을 담아 맨발로 걸어왔던 기억도 떠오르고, 오늘은 왠지 내가 씩씩해진 기분이 들었다.


장화 한 켤레에 이렇게 씩씩해질 수 있다니. 이제는 비 오는 날도 곧 다가올 장마도 두렵지 않다. 허허 이러다가 모내기용 물장화나 해루질할 때 쓰는 전신용 장화를 사게 되진 않으려나?

이전 02화 야나할머니와 안경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