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바라기 May 06. 2023

야나할머니와 곰지

곰지 너의 정체는?

*삼태미 : 삼태기의 방언(강원, 충청)

영감님이 된 소나무

어린 시절 내가 놀던 뒷동산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나무가 어찌나 큰지 어마무시한 솔방울들과 솔가지를 떨궈냈고 우리는 할머니를 따라 솔가지를 긁으러 뒷동산에 종종 올랐다.


그때도 소나무는 엄청나게 컸었는데 그 뒤로 훨훨 훠얼씬 더 자라서 지금은 고개를 뒤로 젖혀도 한 번에 나뭇가지 끝을 볼 수 없을 정도고, 초봄 친정행에 나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남편과 솔가지를 긁으러 오랜만에 뒷동산에 올랐다.


"신기하기도 하지. 그땐 산이 엄청 높아 보였는데 금방 올라오네. 산이 낮아진 건가? 내가 커진건가?"


"산이 낮아졌을 리는 없고 당신 다리가 길어졌겠지"


"여보 당신도 클 때 이렇게 솔가지 긁으러 다닌 적 있었어?"


"아니 없었던 것 같아. 그리고 우리 동네는 평~야 지대라서 여기처럼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산이 없어"


"아이고야 누가 들으면 도시 남좐 줄 알겠네"


"어 왜 이러셔 그래도 내가 다닌 학교는 면소재지에 있었다 뭐. 여기는 리잖아 리"


"미안하오 감히 분교 출신인 내가 면 출신하고 동급 먹으려고 해서"


나는 주변에 있던 솔방울을 세 개 집어 냅다 남편 등을 향해 던졌는데 크아~ 한 개가 찡콩으로 명중했다.


"그래. 사방에 널린 솔방울이 왜 안 날아오나 했다"


남편이 역시나 본인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듯 장갑 낀 오른손 검지를 까딱 거리며 웃고 있었다.


솔방울 전화기

"엽때여? 거기 도시 옵뽜 있어요?"


"잘못 거셨습니다"


내가 솔방울로 만든 전화기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수신 거부 멘트가 날아왔다.


"여보 당신도 이거 알지?"


"아니. 지금 첨 봤는데"


"헐. 어떻게 이걸 모를 수가 있지? 우리는 산에 오면 전화 놀이도 하고 수류탄 놀이도 하고 과일장사 놀이도 하고 진짜 유용하게 잘 갖고 놀았는데. 그럼 당신은 클 때 뭘 하고 놀았어?"


"나는 낚시?"


"아~ 우리 동네선 범접 불가 놀이였네"




금세 모은 솔가지

"야야 해 떨어지기 전에 뒷동산에 가서 솔가지 좀 긁어오재이"


"할머이 불쏘시개 벌써 다 떨어졌어?"


"오냐. 니말 맨치로 벌써 다 떨어졌다"


"그라믄 책 찢어서 불 붙이믄 되자네"


"책은 재만 날리고 거름이 안돼. 재가 모이야 느 애비가 내년 농사에 거름으로 쓰잖나"


할머니를 따라나선 나와 동생은 뒷동산 큰 소나무 밑에 쌓여 있는 솔가지와 솔방울을 손으로 슬슬 긁어 할머니 앞에 있는 삼태미에 끌어다 놓으면 할머니는 자루 속에 꽉꽉 눌러 담으신 뒤 어느 정도 찼다 싶으면 주댕이를 꼭 여며 큰 공 굴리듯 집 뒷곁에다 굴려 보내셨다. 동생과 나는 가마니가 잘 내려갔는지 확인한 뒤 서산으로 꾸역꾸역 넘어가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해가 엄청 똥그랗다고, 미국도 중국도 우리랑 똑같이 똥그란 해를 보고 사는 게 신기하다는 얘기를 나누며 산을 내려왔고 뒷동산 올라가는 입구에서 한참을 기다리면 할머니가 아픈 다리를 주섬주섬 끌고 산에서 내려오셨다.




추억의 뒷동산

솔가지를 긁을 때 기구를 써서 팍팍 긁으면 좋겠지만 부엽토까지 딸려와 먼지가 펄펄 날려 손 끝으로 살살살 긁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래도 김없이 한아름 떨어트려 준 소나무 덕분에 솔가지를 금세 모은 우리 부부는 자루를 들고 집으로 내려가던 길에 발걸음을 돌려 동네 성황당이 있던 자리로 갔다.



설날 고향을 방문했던 나는 뒷동산을 바라보며 뭔가 달라진 느낌을 받았지만 퍼뜩 눈치채지 못했는데 아버지를 통해 성황당이 뽀사진 것을 전해 들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작년까지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던 성황당. 나는 산에 올라온 김에 어린 시절 두려움의 기억이 머물고 있던 자리가 궁금해져 다가 갔고 곁에 있던 나무 그루터기 밑에서 약간의 한자가 보일 듯 말 듯 이끼가 잔뜩 낀 깨진 기왓장 몇 장이 나뭇잎 이불을 덮고 자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여보 저어기 언덕 꼭대기 보이지? 저어기부터 여기까지가 잔디 썰매 타는 코스였어. 비료푸대에 지푸라기를 넣거나 종이 박스를 잔디에 문질러 반질반질하게 길들인 다음 출발하면 성황당을 몇 미터 냄겨 놓고 딱 멈춰. 근데 썰매가 지나치게 잘 나가는 날은 성황당 뒷벽까지 내려와 멈추는데 내가 또 한 스피드 하잖아. 그러면 애들이 성황당 귀신 붙는다고 지르는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나 애들 있는 언덕 꼭대기까지 미친 듯   갔어.   딴딴 아리 근육이 그때 다 생겼을걸"


"재밌게 놀았네.  근데 우리 동네는 삼삼오오 모여 놀진 않았어. 동생들을 데리고 논 기억도 없고 나는 주로 형들하고 어울렸지. 동네 안쪽에 상엿집이 있었는데 어른들이 거기 가면 곰지가 잡아간다고 해서 얼씬도 안 하다가 하루는 범식이 형 패거리 따라갔다가 진짜 미친 듯이 뛰어 동네로 내려오던 일이 생각난다."


"대박 당신도 곰지라는 말을 아네. 저기 귀촌한 사람들이 별장 지은 저 자리 말이야. 저기가 원래 우리 동네 상엿집 터였거든. 클 때 상엿집이랑 성황당엔 곰지 있다고 가지 말라는 소릴 엄청 듣고 컸는데 저 사람들이 이층 집을 짓고 저래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거 보면 곰지는 없는 거지"


"원래 애매한 게 무서운 거야. 눈으로 본 적이 없으니. 클 때 어른들이나 애들이 정체 모를 무언가로 두려움을 갖게 할 때 곰지라는 말을 썼는데 근데 곰지가 진짜 쥐인 건 알지?"


"진짜 쥐라고? 나 처음 듣는데"




아침에 일어나 변소에 갔다 오다 보니 대문 앞에 하얀 봉투가 하나 놓여 있었다.


"할머이 이거 뭐대?"


나는 봉투를 냅다 할머니 앞에 내밀었다.


"이잉 이거 부고짱이 자네. 이 마한 것. 이걸 머하러 마당까지 갖고 드왔노. 얼른 대문 밖에 다 놓고 오래이"


"왜? 이거 편지 아니야?"


"아침부터 까매기가 사납게 울드만 부고짱이 왔네"


할머니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씀하셨고 얘기를 들은 아빠가 봉투를 열어보셨다.


"이런, 호식이 아부지가 돌아가싰네"


"아빠 호식이 아부지가 누구여?"


"남수 할아버지"


"에? 남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가 죽으믄 상여 종은 누가 흔들어?"




술도 마이 드시고 담배도 많이 피우셔서 평소 목소리가 걸걸하던 남수 할아버지가 언제부턴가 기침을 하면 피를 한 됫박씩 쏟는다는 흉흉한 소문이 돈지 꽤나 지났고, 이 집 저 집 품을 팔러 다니느라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시는 남수 할머니로부터 할아버지가 괜찮아지셨다는 말을 들은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리고 원래 닭부터 까치 까마귀 이름 모를 새들까지 많이 우는 동네라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그날 내가 변소에 앉아 있던 시간에 희한하게도 까마귀가 많이 울었다는 것도 뒤늦게 생각났다. 


"니 행여나 니 동상 델꼬 남수네 집에 건네가지 마래이"


"할머이 왜?"


"그 집에 곰지 있어 잡아가.  니 내 말 꼭 들으래이"




할머니는 남수네 집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마라고 신신당부하셨지만 나는 무슨 용기와 호기심이 발동한 것인지 정숙이하고 덕문이하고 동생들을 데리고 덕문이네 상할머니 산소를 넘어 봉섭이네 뒷산을 내려와 뒷곁 장독대 앞으로 잠입을 성공했고, 마당 구석에 있는 수돗가에서 노란 수건을 쓰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 엄마를 확인한 나는 엄마 눈에 띄지 않으려고 동생들 손을 잡고 사랑채 쪽으로 숨어  마루 구석에 뚤뚤 말린 하얀 광목 이불 무더기 속으로 시커멓고 시뻘건 흔적이 한가득 남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사랑채를 돌아가니 나무 마루 위 널따란 상엔 과일들과 음식들이 올려져 있었고 향로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는데 영정 사진도 남수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누런 수의에 지푸라기 왕관을 쓰고 초록색 대나무 지팡이를 든 남수네 아빠가 마루로 올라가려고 신발을 벗는 사람을 보고선 "아이고아이고" 소리를 내자 곁에 있던 얼굴 모르는 아저씨 두 명도 목소리를 합쳐 "아이고아이고 " 소리를 냈다.




상가에 나타난 아이 다섯은 어른들의 눈에 금방 띄었고 정숙이를 본 정숙이 엄마가 화들짝 놀라 우리를 마당 밖으로 급하게 내좇았다. 마치 간첩 침투하 듯  산소를 넘고 산을 타서 집으로 들어갔던 우리는 허무하리 만큼 편하게 대문으로 밀려 나왔고 정숙이 엄마는 앞치마에서 대추만 한 빨간 사탕이 든 봉다리를 꺼내 우리들의 꼬질꼬질한 손바닥 위로 두 개씩 쥐어 주셨는데 아까워서 금방 입에 넣지 못한 대추 사탕은 곧 빨간 물을 내며 녹기 시작하자 우리는 사탕 두 개씩을 한 입에 모두 넣기로 합의 했고 동생들볼은 다람쥐 같이 빵빵해졌는데 할머니 옛날 얘기에 나오던 구미호가 닭을 잡아먹고 입에 흐르는 피를 쓰윽 닦는 장면 맨치로 막냇동생의 입 가엔 빨간 사탕물이 줄줄 흘렀다.




곰지가 있다고, 잡아간다고 할머니가 절대 가지 말라고 했던 남수네 집. 

폐결핵을 앓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딱하지만 어린 손주들에게 행여나 전염이 될까 잔뜩 겁을 드시곤 가지 말라 신신당부하셨는데 나는 할머니가 폐결핵으로 먼저 떠나 보낸 동무들과 이웃들의 죽음 지켜보며 살아오신, 슬픔을 넘어선 공포의 기억을 떠올린 염려의 당부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철부지 손녀였다. 


장례가 끝난 뒤 남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과정의 얘기들과 폐결핵의 무서움에 대해 알게 된 나는 그날 피 묻은 이불을 본 공포에 혹시나 나와 동생들, 친구들이 병에 걸려 죽는 건 아닌가 한동안 떨었었는데 할아버지가 결국은 밥을 못 드셔서 돌아가셨단 할머니 말에 나는 죽지 않으려고 밥을 더 열심히 먹었다.




이제 5월이 오고 어버이날 기념(?)으로 친정에 가게 될 텐데 꽃동산 할머이 산소에 들러 말 안 들어 미안했다고 잔디라도 쓰담쓰담 만져 드리고 와야겠다.  그리고 곰지라는 단어가 그땐 정말 무서웠는데 지금은 너무 귀여운 이름이다.

이전 04화 야나할머니의 티티카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