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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Nov 19. 2022

야나할머니네 부뚜막 그리고 누렁이

그리운 온기

배를 지지고 있는 앙꼬

떨어진 기온에 난방을 돌리니 우리 집 냥이인 앙꼬가 평상시에 눕지 않던 곳에 철퍼덕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있다. 거참 녀석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기가 막히게 보일러 선을 따라 배를 깔고 몸을 데우고 있는 것이 얼마나 앙증 맞고 신기한지 나도 앙꼬를 따라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는데 그간 나도 몰랐던 보일러 선의 위치. 정말 기가 막히게 따숩다.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남들보다 평균 한 달 정도 내복을 일찍 입는다. 그래서 그즈음이 되면 어린 시절 군불로 덥혀지던 방이 몹시 그리운데 결단코 전기장판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깊디깊은 그 따뜻함. 그나마 아쉬운 대로 느껴보려고 코로롱 암흑시대가 열리기 전엔 아파트 상가에 있는 찜질방에서 뒹굴거리며 목욕가방보다 더 푸짐하게 싸간 만화책이나 책을 읽다 오면 온 몸 마디마디에 숨어 나를 아프게 하던 곰지(할머니가 겁을 주실 때 쓰시던 말)들이 따뜻함에 소독되어 소멸되는 것만 같았는데 그 느낌을 느껴본지가 언제인지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아이고 깜짹이야. 이 마한 것들 썩 안 나가나? 사람 기함하게시리"


쇠죽 간에서 놀란 할머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머이 왜에?"


방문을 활짝 열고 할머니가 계신 곳을 바라보자


"마한 노므 고녜이들이 날이 추워지니 마캉 다 여와 있네. 용하긴 지들 살 궁리는 다해"


할머니의 인기척에 놀라 달아나던 고양이 두 마리가 가다 멈추고 나를 보고 있었다.


"재승이네 고양이 같은데 우리 집에서 잤나 봐"


"재스이네 고녜이라고? 지덜 집 냅두고 어째 여와가꼬 사람을 놀래키나"


아침 군불 겸 쇠죽을 챙기러 가셨던 할머니는 부뚜막 위에서 웅크리고 있다 갑자기 튀어나간 고양이 두 마리에 화들짝 놀라셨고 밤 새 부뚜막이 따뜻하다는 것을 어떻게 기억했는지 그 뒤로도 재승이네 고양이는 어김없이 우리 집에 와 잠을 청했는데 아침 쇠죽을 끓이러 나가시던 아빠도, 무심코 그곳을 지나가던 나도 몇 번 놀란 뒤 식구들은 아침마다 큰 소리로 기척을 고 쇠죽 간에 들어서는 버릇이 생겼다.




한 날은 할머니가 장에서 황토색 털을 가진 갓 젖을 뗀 강아지 한 마리를 사 오셨다. 우리는 그 강아지를 서로 안아보고 싶어 숙제며 씻는 것도 다 내팽개치고 할머니 방에 있는 상자에 목이 빠질세라 고개를 숙이고 쳐다보고 있었고 갑자기 엄마와 헤어져 긴 시간 버스를 타고 우리 집까지 오게 된 강아지는 놀란 것인지 멀미가 난 것인지 웩웩거리며 토를 하기 시작했는데 하필 딱 그 모습으로 우리 엄마에게 첫눈도장을 찍었다. 이미 집에 넘치는 토끼들과 닭장의 닭, 일부러 기르지는 않았지만 밤마다 천정 위에서 우르르 우르르 단합대회를 하는 쥐들 때문에 신경이 예민한 엄마는 늘어난 강아지의 기가 막힌 입주 신고식을 보고 기함을 하고선 단전에서 끌어올린 크고 웅장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얼른 씻고 숙제 안 햇"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누르며 눈은 강아지에게 발은 이미 할머니 방을 빠져나와 수돗가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장에서 데리고 온 강아지는 집안 모든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갑자기 젖도 떼고 엄마 잃은 충격에 밤새 낑낑 앓는 소리를 내며 온 식구들의 잠을 설치게 했고 날이 밝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람을 졸졸 따라다녔는데 아궁이에 불이 때지고 뜨거운 물이 바가지에 퍼져 왔다 갔다 하며 칼질 소리가 쉴 새 없이 나는 그 정신없는 부엌에서 강아는 성가신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바삐 움직이던 엄마의 발에 차여 저 죽는다고 엄살까지 보태 깨갱거리는 울음소리를 냈고 그 소리는 할머니의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못해 심기를 건드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부엌에서 흘러나오는 이상 기류를 감지하곤 엄마가 등을 돌려 요리에 집중하는 사이 얼른 강아지를 안고 나와 마당 끝 뜨럭에 앉아 쓰담쓰담 하며


"이 아무 데나 니 맘대다니도 되지만 부엌에는 가지 마아"


나는 우리 집에 평화가 머물기를 기도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강아지 눈을 보며 말해 주었다.




우리 집에 와 가족이 된 강아지. 할머니와 나와 동생들이 한참 동안 머리를 맞대어 당첨된 강아지 이름은 누렁이가 되었다. 고민한 것치곤 너무도 일방적인 털 색인 이름으로 결론이 났지만 누렁이는 제 이름이 맘에 드는지 우리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맞아 주었는데 아직 다리가 짧아 대문을 한 번에 넘지 못해 매달리다 구르며 마당을 나와 우리를 따라다니던 누렁이는 집을 크게 돌면 외양간을 지나 바깥 마당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내곤 우리가 대문간을 번쩍 뛰어넘어 나갈 때마다 집을 빙 돌아 바깥 마당에 그 짧은 다리로 발발거리며 달려 나왔다.




처음에 누렁이는 할머니 방에 있는 라면 상자에 담겨서 살았는데 할머니가 분유 가루에 말아준 밥 덕분이었는지 하루하루가 다르게 쑥쑥 컸지만 덩치가 커지면서 희한한 냄새가 났다. 그렇다고 추운 계절에 목욕을 시킬 수도 없고 수건으로 닦아 줄 수도 없었기에 할머니는 방에서 누렁이 퇴출을 결정하시고 방문 앞으로 박스를 내놓고 그곳에서 자게 했는데 어두워서였는지 추워서였는지 며칠 동안은 밤마다 방에 들여보내 달라고 발톱으로 문을 긁으며 애절한 목소리로 낑낑거려 우리들의 마음을 애달프게 했지만 결국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지 상자 안에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추워진 기온 탓에 군불의 온기가 사라지는것을 안타까워하며 점점 더  아랫목으로 굴러가며 아침잠을 던 어느 날 깨갱하는 누렁이 울음소리 그리고 이어진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갔다. 누렁이는 부엌 문턱을 넘어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며 턱걸이를 하고 있었고 그 뒤로 잔뜩 화가 난 엄마 얼굴이 보였다.


"엄마 왜?"


부엌 부뚜막 위를 본 순간 나는 웃음을 참느라 두 손으로 얼른 입을 막았다. 만약 그 순간에 내가 재밌다는 듯이 깔깔거리고 웃었다면 엄마의 큰 손바닥에 나의 등짝은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일부러 그랬대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엄마의 등 뒤로 보이는 부엌의 광경은 연출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바가지에서 쏟아진 쌀알들이 부엌 구석구석까지 흰 눈처럼 뿌려져 있었고 부뚜막에 올려 둔 그릇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쭉 쭉 반씩 갈라지고 뒤집혀 있고 어제 저녁 먹다 남은 김치찌개 냄비 사이로 시뻘건 국물이 흥건히 새어 나와 있었다. 그리고 반짝이며 깔끔하게 정리된 부뚜막에 계급장처럼 척하고 올려져 있는,  언뜻 봐서는 찐 고구마 두 개를 올려둔 것 같이 보였지만 손가락 굵기의 작디작은 고구마 그것은 분명 누렁이가 힘주어 꺼내 놓은 응가였다.


부엌에서 들린 누렁이의 깨갱 소리에 할머니도 쫓아 오셨고 당황한 할머니는 어찌나 맘이 급하셨는지 누렁이 응가를 불쏘시개로 쓰는 솔가지로 얼른 훔쳐 손으로 받쳐 나가시곤 뜨거운 물로 몇 번이고 부뚜막을 닦으셨다. 그 사이 엄마는 비로 쌀을 쓸어 담아 내게 닭장에 넣어주고 오라하시곤 다시 쌀을 씻기 시작하셨고 부엌에는 고요한 정적만이, 마당에선 그 사실을 알리 없는 막내가 누렁이가 자기만 좋아서 계속 따라온다고 목소리만이 마당을 넘쳐 부엌 안에까지 꾸역꾸역 넘쳐 들어왔다.


하지만 그 사건은 누렁이 삶에 작디작은 사건에 불과했고 그날 누렁이의 집은 할머니 방 앞에서 쇠죽 간으로 옮겨졌는데 부엌에서 최대한 멀리, 마당을 파고 놀다가 마루로 기어올라 콩콩콩 발도장을 찍어 놓는 횟수를 줄이는 방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밤마다 잠을 자러 오는 재승이네 고양이들과 누렁이가 같은 공간을 쓰게 되면서 누렁이가 밤새 앙앙 짖는 소리와 고양이들의 하악질 소리, 그리고 그 소란함에 외양간 터줏마님 엄마소가 놀라 일어나 움직이면서 딸랑이는 방울소리와 엄마가 움직일 때마다 덩달아 놀라 매애 매애 하며 우는 송아지 엄마소의 못마땅한 크고 큰 음머~ 음머~ 하는 불협화음 음악회가 밤마다 반복되자 엄마의 스트레스 지수는 하늘을 찔렀고 그때마다 우리는 걱정스런 맘으로  밖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잠에 들었다.


"야야 안즉도 자나?"


"할머이 왜?"


"누래이가 안 빈다"


"누렁이? 부뚜막에서 자고 있겠지?"


"안 비네. 어디 갔을꼬"


누렁이가 안 보인다니. 나는 혹시나 쥐를 잡으려고 둔 쥐덫에 이 끼인 건 아닌지, 재승이네 고양이들한테 까불다가 피를 보고 쓰러져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누렁이를 부르며 집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다 들린 할머니의 다급한 목소리


"야야 니 애비 오라 해라 얼른"


"둔하기도 둔하기도 어찌 이래 둔하나?"


아빠가 손에서 뭔가를 툭툭 털면서 이리저리 살피고 계셨다.


"아빠 그거 뭔데?"


"이게 뭐게?"


"누 누렁이?"


아빠 손에는 수염은 물론 한쪽 몸통이  타버린 누렁이가 들려 있었다.


"아빠 야 왜 이래?"


"밤에 뜨뜻한데 찾다가 버강지에 들어갔나 봐. 지 털 타는지도 모르고 자니 둔하기도"


아빠는 불쌍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신지 누렁이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구석구석 살펴보셨고 다행히 누렁이는 털만 탔지 화상은 입지 않았다. 그간 부뚜막이며 뜨럭이며 장독대에 응가와 쉬를 주책같이 하고 다녀 엄마에게 미운털이 단디 박혀 있던 사고뭉치 누렁이는 반쪽 털을 까실구는 바람에 전화위복이라는 말을 증명하듯 좋은일도 있었는데 절대 쓰다듬어 주시진 않았지만 엄마는 우리가 먹고 난 잔반들로 신경 써서 누렁이 밥을 챙겨주셨다.


그 사건으로 누렁이의 집은 쇠죽 간에서 다시 부엌 부뚜막으로 옮겨졌고 희한하게 부뚜막에선 절대 울지 않고 곤히 잠을 잤다. 그 덕분에 쇠죽 간의 부뚜막은 다시 재승이네 고양이들의 차지가 되었지만 변덕쟁이 고양이들은 영원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 엄청나게 커진 누렁이는 목줄이 채워진 채 바깥 마당 국기대에 묶여 집을 지키게 됐는데 꼬리로 마당에 쌓인 눈을 다 쓸어버릴 태세로 학교에 오가는 우리들을 격하게 반겨주었다.


방바닥에 앙꼬랑 누워 조금 더 따뜻한 지점찾으려고 시곗바늘 돌 듯 몸을 빙빙 돌리다가 점점 더 깊은 아궁이에 들어갔다가 털을 홀라당 태워먹고 기어 나왔던 누렁이 생각이 났다. 앙꼬 덕분에 떠오른 누렁이와의 추억과 또 오랜만에 이렇게 방바닥에 누워 허리를 지지다 보니 장판이 탈 정도로 달아올랐던 구들장도 그립고 찜질방도 그립다.


꽤 여러 날을 무결점 수능이 치러지길 바라는 간절함을 담아 준비했던 수능이 무사히 지나갔고 긴장이 풀렸는지 온 몸에 기운이 빠지고 몸이 으슬거린다. 난방을 돌리자 방바닥에 퍼지는 온기에 앙꼬가 처음 누웠던 그 자리에 등을 대고 누웠는데 좋으면서도 뭔가 아쉽다. 군불로 달궈진 구들장과 뜨끈한 부뚜막에 엄마가 세워두었던 털신을 신고 학교가던 날이 정말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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