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길어진 해와 눈 부신 햇살, 찬바람 사이에서 살짝살짝 숨바꼭질을 하듯 느껴지는 봄기운을 느꼈던 나는 근질거리는 몸과 울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퇴근 후 남편과 산보를 나갔다.
분명 집을 나설 때는 희미한 어둠이었는데 몇 걸음에 주변은 금세 어둠에 묻혔고, 용인시와 성남시의 경계가 있는 탄천에서 깜깜한 밤을 뚫고알록달록 작은 불빛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는데가로등 밑에서 만난 불빛은 네댓 살쯤 된 작은 꼬마가 공룡 티라노사우르스 등에 있는 가시 모양이 박힌 안전모를 쓰고 전구가 반짝이는 씽씽이를 타고 있었다.
"아~ 나도 씽씽이 타고 싶돠아."
"안돼~ 부러워하고 그러면 지는 거야 부지런히 걸어"
"난 이미 진즉에 졌어"
나의 말에 남편이 피식 웃었다.
"당신은 어릴 때 타고 논거 뭐 있었어? 자전거 말고"
"나? 글쎄, 롤러장에도 몇 번 간 거 같고 스케이트도 있었고, 아 스카이 콩콩도 있었네."
"당신이 롤러장에를 갔었다고? 언제? 그리고 스카이 콩콩까지? 나는 롤러장에 못 가봤는데"
놀라 걷다 말고 멈춰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니 이 쏴람이 나를 동급으로 모네. 왜 이러셔. 모르긴 몰라도 내가 당신보다는 문명인이었을걸"
"아니 놀라서 그래 당신이 롤러장에 갔다고 하니까. 우리 동네서 롤러장에 가는 애들은 일명 좀 노는 애들이었거든. 뭐 맨날 공부만 하는 범생이었다고 하더니 다 뻥이었구먼. 근데 스카이 콩콩은 누가 사주신겨?"
"국민학교 4학년 땐가 아마 아부지가 사다 주셔서 한참 탔던 기억이 있고 롤러장은 친구들이랑 중2 때 열심히 다녔지. 그때 애들 놀만 한 게 별로 없었는데 읍내에 딱 롤러장이 생겼고 그 앞에 작은 분식집이 있었는데 쫄면 사 먹으려고 진짜 용돈 악착 같이 모았었다. 그 쫄면 맛이 지금도 생각나곤 해"
"이제 당신 촌놈이라고 놀리면 안 되겠네. 스카이 콩콩 소유자에다 스케이트에다 롤러장도 다니고. 내가 놀라운 거 말해줄까? 우리 동네엔 스카이 콩콩이 한 대도 없었다. 아예 존재조차도 몰르고 큰 애들도 많았을걸. 나는 여름방학 때 외갓집에 갔다가 서울 이모네 오빠 거 첨으로 영접했는데 생각보다 타는 게 쉽지 않아서 포기했지. 아 갑자기 소름. 그때 스카이 콩콩 타던 오빠들도 이제 낼모레면 환갑이네."
주인과 이별한 씽씽이
그리고 며칠 뒤 분리수거 날이었다. 남편과 재활용품을 챙겨 나갔던 나는 아파트 폐기물을 모아 두는 공간 구석에 새롭게 등장해 있는 씽씽이를 보게 되었다.
"누가 새 씽씽이를 장만하셨나? 씽씽이랑 이별했네"
슬금슬금 다가가는 나를 눈치챈 남편이
"안돼. 손대는 거 아니야"
"사진만 찍을게 사진만. 슬마 내 무게를 감당하지도 못하는 저걸 내가 타겠어"
"응 당신은 타고도 남아"
"요새 희한하게 씽씽이를 자주 만나네. 아무래도 이건 자전거를 사지 말고 씽씽이를 사라는 하늘의 계시일지도 몰라"
"응 그러는 거 아니야"
"여보 나 클 때 우리 집에 티티카카 있었다고 내가 얘기한 적 있었나?"
"그때 티티카카가 있었다고? 그거야 말로 빅뉴스인데"
"우리 동네에 유일하게 우리 집만 빨간색 티티카가가 있었어. 중심축에 티티카카 대문짝만 하게 써 있는. 온 동네 애들이 구간 정해 놓고 돌려 타고 놀았었는데 기본 틀은 비슷한데 발판은 쇠로 되어서 앞에 바퀴 하나 뒤에 바퀴가 두 개가 달려있었고 브레이크는 상상도 못 했지. 그 덕분에 내 무릎은 맨날 피딱지가 앉아 있었고.
"동네에 한 대 밖에 없었고 신문물을 들여온 거라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고 장모님이 처남한테 사주셨겠구먼"
"땡"
"그럼?"
"우리 할머이"
4학년의 봄 어느 날.
그날 나는 동네 친구들과 무리 지어 동네를 쏘다니다 가겟방에 버려진 깡통을 하나 주워 공터에서 깡차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마을 고개에 하루에 몇 번 다니지 않는 하늘색 버스가 때 마침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고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버스에서 누가 내릴 것인지, 그냥 지나칠 것인지를 점치며 흥분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버스가 우리의 마음을 알았는지 저 멀리부터 브레이크 잡는 소리와 타이어 가열된 냄새를 뿜으며 정확히 우리 무리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유리창 너머 버스 안으로 낯익은 우리 할머니 얼굴이 보였다.
"야야 내리야 될 짐이 많다."
할머니는 버스문이 다 열리기도 전에 손을 휘저으시며 다급히 나를 불렀고 나는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버스에 올라 짐들을 들어 내리자 버스 밑에 있던 친구들이 덥석덥석 짐을 받아 주었다. 금세 짐을 다 내린 것을 확인한 할머니는 차비를 지불하셨고 버스는 시커먼 방귀를 뀌고 다시 털털거리는 소리를 내며 멀어져 갔다. 나는 덕문이네 마당에 주차되어 있던 리어카를 끌고 와 할머니가 장에서 사 오신 짐들을 옮겨 실었고 그 짐들 사이 보자기에 싸 있는, 여지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신기한 물건에 가슴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할머이 이거 누구 줄라고?"
"와 누구 줄 거 같나?"
"몰르니깐 물어보지. 할머이가 우리 안 주고 태형이나 재영이 줄 수 도 있자네"
"마한 것. 가들은 외손자들인데 내가 가들한테 머하로 주나"
"그럼 이거 우리 거야?"
"그래. 느 동상 줄라 그라지"
그렇게 우리 집에 오게 된 티티카카는 나와 동생들 그리고 동네 아이들, 중학생 언니와 언니 친구들까지 타고 노는 동네 공용 씽씽이가 되었고 그 수명을 다할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나는 두 발을 모으고 쪼그려 앉은 동생을 태우고 한 발로 열심히 밀어 먼 밭에서 일하시는 할머니 마중을 가기도 했고 토끼풀이랑 나물이 한가득 담겨 있는 할머니의 다래끼를 싣고 오기도 했었다.
안전하게 달려라 힘센 씽씽이야
몇 년 전부터 강력 파워 배터리를 품은 전기 킥보드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그것을 처음 영접했던 나의 호기심은 킥보드의 속도만큼이나 앞서갔지만 이미 나의 속을 훤히 꿰뚫어 본 남편의 "안돼"라는 한마디, 고가의 가격과 가끔씩 화재 사고 소식들에 겁을 먹은 나는 맘을 접고 그저 부러움의 눈빛을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 '누가 타다 말고 놓고 갔나?' 하고 오해할 뻔한 킥보드들이 도로와 탄천에 보이기 시작했고, 면허 등록을 하면 탈 수 있는 공용 킥보드가 보급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애석하게도 지금까지도 승차는 해보질 못했는데 그 이유는 음주 후 귀갓길 저걸 타다가 넘어져 코뼈 골절로 대수술을 한 직장상사와 대문니 두 개와 송곳니 한 개를 잃어버린 큰 아이의 친구, 그리고 속도를 줄이지 못해 신상 패딩 점퍼 팔뚝을 담벼락에 긁으면서 아까운 거위 털들을 길바닥에 뿌린 지인의 얘기까지 듣고 나는 절대 타면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가깝고도 먼 씽씽이
여전히 출퇴근길에 내 곁을 쌩하고 찬바람을 선물하고 지나가는 킥보드를 본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땀이 가득 밴 나물과 약초 판 돈으로 어린 손자에게 선물해 주셨던, 바퀴도 작고 브레이크도 없고 발판도 작았던 티티카카였지만 그 덕분에 온 동네 아이들이 행복하게 놀았고, 기동력이 생긴 내가 꽤나 열심히 동생들을 태우고 놀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련해진다.(어쩌면 막냇동생 입장에선 억울할지도)
나의 삶 구석구석엔 할머니의 정취와 향기가 꽤나 많이 머물고 있다.
사계절 내내 바쁘셨지만 유독 봄에 더없이 부지런히 바쁘셨던 할머니.
봄이 오고 있어서인지 할머니의 미소와 덜컹거리던 틀니를 진정하며 웃으시던 웃음소리가 더 진하게 떠오르고, 평생 모르는 게 속 편할 수도 있었는데 스카이 콩콩을 영접했으나 탈 수 없었던 나는 뀡대신 닭이라고 그 뒤로삽을 탔었는데 한날은 삽날이 '빠각' 큰 소리를 내며 땅속에 박혀 있던 돌 하고 부딪히면서 그 충격은 고스란히 척추뼈로 전달되며 삽이 휘어졌고,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아픈것은 둘째치고 억지로 삽을 피려고 했던 시도에 삽날은 반으로 빠개져 쇠죽 간 아궁이 재를 푸는 용으로 사용해야만했다. 그땐 연장 하나도 얼마나 귀했었는지...
그리고 지금껏 재밌는 것은 할머니가 나에게 말씀하셨던 '개버릇 남 못준다'라는 말을 증명하듯 나는 지금도 들일을 도우러 나가면 삽을 꼭 타보는데 맘은 언제나 가벼운데 몸이 무거워서인지 예전만 재미는 못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