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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Jun 07. 2022

야나할머니의 오아시스

(산딸기가 익어가는 계절)

등산로 초입 양지바른 곳에 뱀딸기가 올망졸망 달린 것을 보았다.

작년에도 많이 달렸었는데 올해는 더 많이 달린 것 같다. 매해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자라고 달리는 뱀딸기는 초록색 친구원을 받으며 그 빨강을 더욱더 탐스럽게 빛내고 있었다.


"올해는 혹시 맛이 더 좋아지셨나? 개미 씨가 많이 갉아드셨어"


나는 듬성듬성 물어 뜯긴 모습을 살피면서 딸기들에게 말을 건넸.


엄마는 딸기 숲에는 뱀이 있으니 가지 말라고, 특히 풀숲에 갈 때는 슬리퍼를 신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런 엄마의 잔소리를 항상 듣는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딴생각을 하며 건성으로 알았다고 대답했고,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동생에게 딸기를 따러 가자고 꼬드겼다.


"엄마가 딸기 따러 가지 말라고 했잖아"


"엄마가 어떻게 알아 너만 비밀 지키면 돼"


"산에 간걸 누가 보면 어떡해?"


"보긴 누가 봐. 어차피 언니는 학교서 늦게 오고 지금 집에 아무도 없잖아"


"언니 그런데 나 운동화 없어"


"괜찮아. 뱀 없어. 엄마가 겁주려고 그런 거야. 뱀 나오면 언니가 잡아줄게"


나는 온갖 말들로 동생을 안심시키며, 언젠가 언니와 언니의 친구들을 따라 딸기를 따러 갔던 으로 동생을 데리고 갔다.


"에이 아직 안 익었네"


나는 산딸기 덩굴에 종알종알 달려 있는 덜 익은 딸기들을 보면서 열 밤은 더 있어야 먹을 수 있을 거 같다며, 열 밤 뒤 다시 오자 하고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오는 길에 밭가에 펼쳐져 있는 뱀딸기 군락지를 발견했다.


"언니 이거 먹어도 돼?"


"그러엄 이거 엄청 맛있어"


나는 뱀딸기라도 발견한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며 실망한 동생을 위로하고자 맛도 없는 뱀딸기를 맛있다고 대답했다.


"퉤  퉤, 언니 이거 맛이 없어"


"아 이게 원래 그냥 먹는 게 아니고 설탕을 타서 먹어야 맛있는 거야. 집에 가서 설탕 뿌려줄게. 이거 다 따가자"


나와 동생은 근처에 있는 머위잎을 따서 딸기를 한알 두 알 차곡차곡 담았다.


집에 가니 산에 다녀오신 할머니가 나물을 다듬고 계셨다.


"니들 오데 댕기오나?"


"할머이 언니랑 나랑 딸기 엄청 많이 땄다. 근데 이거 맛이 없어서 언니가 설탕 뿌려준대"


"뱀딸길세. 어우야 마이도 땄네. 근데 야야 이거 어서 땄노?"


"이거? 다리 건너 허씨네 밭가에서 땄는데 왜 할머이?"


"허씨네 밭가? 아이고야 니들 이거 마이 묵읐나?


"아니 안 먹었는데"


"잘했데이, 어여가서 비누로 손 깨끄씨 씻고 그거 이리 내논나"


할머니는 동생이 펼쳐 보이며 자랑하는 딸기를 건네받으시더니 거름더미에 꽂혀 있던 삽으로 구덩이를 파시고 묻어 버리셨다.


"아아, 할머이 그거 왜 버려!"


"야야 오늘 꼭두새벽에 허씨네 배추밭에 약 칬다. 약이 튔을까 봐 그라지"



농약이라는 말을 들은 나는 언젠가 이웃동네에서 농약을 먹고 죽은 아저씨가 피를 토하며 죽었다 했던 친구의 말이 생각났고, 아까 밭가에서 뱀딸기를 입에 넣었다가 뱉은 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쿵쾅쿵광심장이 방망이질 하기 시작했고,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귀가 먹먹했다. 나는 후다닥 동생을 수돗가로 데리고 가 입을 물로 열 번 헹구라 하고 하나 두울 셋 열까지 세었다. 그리고 손 하고 슬리퍼 신은 발을 비누로 빡빡빡씻겨 주었는데 동생은 그런 내 속을 모르니 간지럽다고 다리를 베베 꼬며 까르르거렸다. 하지만 동생이 웃고 있는데도 내 심장은 조용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집으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고, 전화를 받으신 아빠는 애들 괜찮다는 대답을 하시고 끊으셨다. 그리고 안방으로 불려 간 동생과 나는 다시는 아무데서나 딸기를 따먹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고, 그날 허씨네 배추밭에 친 약은  평상시 치던 약보다 더 강력한 살충제였다 했다. 우리가 딸기 숲에 다녀오던 것, 허씨네 밭가에서 뱀딸기를 따는 모습을 본 동네 아줌마가 허씨네 아줌마한테 말을 건넸고, 아줌마가 당신의 남편에게, 아저씨는 우리 아빠에게까지 전화를 건 이어달리기 같은 일이 일어났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엄마는 동생 잡을 뻔했다며, 하필 그 많고 많은 매체 중에 곁에 있던 파리채를 집으셨고, 내가 잽싸게 도망갈 것을 사전 차단 하 듯 안방 문을 막은 채 내 팔뚝을 잡고 인정사정없이 등짝이랑 엉덩이를 때리셨다, 우리 엄마는 울면 뭘 잘했다고 우냐고 더 때리셨기 때문에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고, 찰싹찰싹 거리는 따가움을 느끼며 마치 내가 파리가 된 것 같았지만 동생이 죽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야야 누가 있나?"


오늘도 들리는 할머니 목소리


"할머니 나 여 있다."


"거 있나? 야야 니들 이리 와보래이"


"할머이 왜?"


"왜긴 이  딸 줄라고 그라지"


할머니가 동동 묶어온 풀끈을 풀자 칡잎 속에 통통하고 윤기 나는 산딸기가 소담스레 담겨 있었다.



"야나 딸 무라"


"우와 딸기네. 할머이 이거 어서 땄대?"


"안갈차준다. 갈차주믄 니 또 딸 따러 갈라고 그라제?"


"아이 할머이 비밀 지킬게. 어딘데 나한테만 말해줘 봐"


 "아서라 또 애미한테 맞지 말고"


어제 내가 파리채로 찰싹찰싹 맞는 소리를 할머니도 들으셨나 보다.


작년에 아버지가 따서 택배로 보내주셨던 산딸기가 생각이 나 꿀을 넣고 갈아보았다. 아버지는 지금도 나와 동생이 산딸기를 좋아하시는 걸 기억하고 계신다. 그 시절엔 할머니가, 지금은 아버지가 기억하시는 우리들의 애정 산딸기.


올해도 지하철 역 앞에 있는 과일가게에 산딸기가 진열된 것이 보였다. 산에서 딴 것이 아니라 농사지은 딸기겠지만 어디서 난들 어떠랴? 딸기 자체만으로도 반갑고 그 맛을 알기에 금세 입안에 침이 고였다.


내가 파리가 되었던 그다음 날, 할머니는 당신이 산에 오르실 때 목을 축이시던 오아시스 같은 딸기 덤불을 떠올리셔서 일부러 산에 다녀오셨다. 나는 할머니의 산딸기 덕분에 매 맞은 아픔도 금세 잊고 동생과 맛있게 먹었었는데, 어린 손녀들을 위해 그날은 몇 알의 진통제를 드시고 산에 오르셨을까?


나는 할머니의 오아시스를 끝내 알아내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이 정도의 딸기를 따신 것을 보면 혹시 아버지한테만 알려주신 건 아닐는지? 하지만 할머니의 대답을 들을 수 없으니 이것도 그냥 물음표로 남겨둬야겠다.


올해도 할머니의 오아시스에는 딸기가 갛게 익어가고 있겠지? 다람쥐도 노루도 새들도 지나가다 목을 축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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