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와 촛물

동상아 안녕~

by 별바라기

코가 찡하게 추웠던 날. 나의 퇴근길에 친절히 마중을 온 작은 아이. 겨우 9시간 떨어져 있었고, 낮에 전화 통화도 했지만 반가운 얼굴에 힘껏 포옹하고 덥석 잡은 손을 얼른 내 코트 주머니에 당겨 넣었다.


"우 짼 일이래? 손이 이래 다 따시고?"


"엄마 아픈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어. 기초 체온이 높아지니 손이 따뜻해. 엄만 손이 차네. 동상 걸리면 어떡하려고 장갑도 안 끼고 그래? 장갑 없어? 내가 하나 사 줄까?"


"없긴. 가방에 있어. 성가셔 안 꼈지"


"엄마 맨날 뼈마디 시리다 하지 말고 평상시에 아껴. 알겠지?"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멘튼디? 기회는 이때다 반사하는 거야? 근데 엄마 어렸을 때 진짜 해마다 동상이 걸리긴 했었어. 심했던 해는 양쪽 새끼손가락이 다 터져서 진물이 났었는데, 여기 봐봐 그래서 손가락이 이렇게 휜 거야."


"엄마 진짜로 손가락이 휘었네. 나는 원래 이렇게 생긴 줄 알았지. 으 불쌍한 우리 엄마"


아이가 내 주머니에서 제 손을 빼 따뜻한 양손으로 내 차가운 볼을 감싸 주었다.





"할머이 나 손이 시리 죽겠어"


"뭔 언나가 죽는단 소릴 그래 잘해 쌌는지"


"아니 진짜라니깐 할머이. 봐봐 내 손 좀"


"이 엄동설한에 그래 짤짤 거리고 댕기는데 손이 안 시리고 배기? 어여 여 구들장에 손 디 밀어"


할머니는 내 손을 덥석 잡아 이불이 깔린 아랫목으로 이끄셨다.


"할머이 손이 개루와 죽을 거 같애"


"이잉, 또 죽는다 하네"


"할머이 진짜여 손이 개루와 죽겠다고"


"어디 함 보재이"


할머니는 시뻘겋고 푸르스름하며 노란빛도 띠는 내 손을 들여다보셨다.


"이런 동상이 걸맀잖나?"


"동상이 뭔데?"


"동상이 뭐긴 뭐여 동상이지"


"그럼 나 죽어?"


"이 마한 것"


할머니는 코가 가득 찬 내 코를 움켜쥐셨다 콧물이 묻자 기함을 하며 곁에 있던 면포에 닦으셨고, 크게 웃던 나는 숨을 잘못 쉬는 바람에 콧물이 윗입술까지 훅 하고 흘러내렸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내 손과 발은 겨울마다 동상에 걸렸다. 어른들 말대로 정말 내가 동서남북 온 천지를 짤짤 거리고 싸돌아 다녀서는 절대 아니었다. 아무리 조신하게 방바닥을 지키고 있어도 서리가 내리고 겨울이 시작되면 이미 내 손은 붉고 파랗게 변했고 발가락은 뚱뚱 부어 있었다. 엄마가 사다준 털신도 처음에만 따뜻했지 털이 납작해지면 발이 시렸고, 양말을 두 켤레 세 켤레 껴 신어도 증상은 같았다.


한 날 해질녘. 온 동네 찬바람을 집으로 몰고 돌아왔던 나는 가려움과 붓기가 극에 달해 숟가락도 들지 못했고 곧 손가락 발가락이 잘릴 거라는 엄마의 협박에 내 두려움은 산처럼 커다. 그래서 한 동안 도랑에도, 산에도 가지 않고 동생들을 돌보며 집을 지켰다. 하지만 억울했던 것은 랑 교회만 다녀왔을 뿐이었는데, 기도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개는 또 어김없이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야야 큰 아야, 니 동상들 다 델꼬 일로 온네이"


할머니 방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우리 사 남매는 우르르 몰려갔다.


"다 왔나? 니들 여 삥 돌래 으 여다 손담그고 있으래이"


할머니 방바닥엔 세숫대야에 누런 물이 담겨 있었다.


"할머이 이거 뭔데?


"촛물이여"


"촛물이 뭔데?"


"뭐긴 뭐여 두부하고 나온 물이지. 오늘 일종이네 두부 한다 해서 한 배가지 퍼 왔어. 여 촛물에 손을 담그고 있음 동상이 낫잖나"


대야에 담긴 따뜻한 촛물은 처음엔 엄청 뜨거워 손가락이 화끈거리며 가렵다가 촛물이 식어가자 기분 좋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 뒤로 두부 하는 날이 되면 우리 사 남매는 촛물에 손을 담그려고 마지막 두부틀에 순두부가 담기길 기다렸다. 그리고 촛물에 사십 개의 손가락이 꼬물거리며 키득거렸고, 그 때문이었는지 정말 해가 갈수록 동상에 걸리는 일은 줄어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신이 있다면 엄마와 언니가 밤을 새우며 떠준 벙어리장갑과 아빠 스웨터를 풀어 뜬 종아리 토시였는데 크기만 다르지 색이 같은 네 켤레의 벙어리장갑은 다른 색으로 된 끈으로 묶어 바뀌지 않게 구분을 했는데, 겨울 내내 동생들과 나의 목엔 벙어리장갑 줄이 목마를 타고 있었다.




글을 쓰다 말고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때 정말 아팠었는데 할머니의 촛물 비법 덕분에 이 정도만 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만년설처럼 눈부시게 쌓인 눈 때문에 더 추웠던 산골의 기온. 땀이 난 손과 발을 잘 건조해줬어야 탈이 나지 않았을 텐데 장갑과 양말이 늘 젖어 있던 넘치는 에너지 덕분에 동상이 걸리는 게 너무 당연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좀 더 자라고 난 뒤였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들을 키울 때 나는 장갑과 방한화에 유독 예민하게 굴었는데, 와르르 쏟아져 나온 크고 작은 핫팩 덕분에 나의 근심은 온기 속에 훌훌 사라져 버렸다.




예전엔 아이들의 동상을 걱정하던 나였는데 이제 아이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으니 이것 또한 우습고 재밌는 일이다. 이제 나는 남을 걱정할 때가 아닌 나 스스로를 잘 돌봐야 할 때가 된 것인가? 어제 아침에 흔들어 주머니에 넣었는데 오늘 아침까지 따뜻함을 유지하고 있는 핫팩을 만지며 이 따뜻함이 겨울 내내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온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이거 마치 강병장 핫팩 홍보대사 같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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