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와 쥐똥구녕

쥐똥꾸녕의 어원은?

by 별바라기

지나간 설. 주말을 포함해 설날 앞으로 연휴가 길기에 친정부터 들르기로 형제들과 일정을 맞췄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이미 만두는 다 빚어 냉동고에 얼려 두시고 나머지 음식들 재료를 잔뜩 준비해 놓고 계셨다.


"엄마 이걸 누가 다 먹으라고 이래 많이 만들어. 음식 하다 날 새서 한 살 더 먹겠네"


"많긴, 우리가 사람이 몇인데. 해 놓음 다 먹어"


"아 진짜, 우리 이제 손 많이 가는 메밀전병이랑 찹쌀 반달떡은 하지 말자. 작년에 나 이거 하다 손 끝 다 익는 줄 알았어"


"손이 익긴 왜 익어. 니가 쥐똥구녕 할 줄 모르니 그러지"


엄마 입에서 오랜만에 들어본 쥐똥구녕이란 말에 내가 한참을 깔깔거리고 웃자 그런 내가 웃겨 엄마가 또 한참을 웃으셨다.




"할머이 뭐 해?"


"모개 썬다"


"난도 해 볼래"


"아서 손꾸락 쓸지 말고"


"그냥 썰기만 하믄 되는 거잖아 "


"그래, 그래 자신 있음 함 해 보래이"


할머니가 칼 끝을 잡고 손잡이를 내미셨다.


"끄응"


"칼 인내. 내 이럴 줄 알았지. 모개 썰다 똥 빠지겠네"


"잘 안 되네. 이거 말고 딴 거 줘봐. 딴 거는 잘 쓸릴지도 몰라"


"빨리 쓸고 소죽 끼리러 나가야 돼. 저리 나 앉어"


칼을 건네받은 할머니가 도마 위에 모과를 북북 소리가 나게 가지런히 썰으셨다.


"우와 이래 억센 걸 할머이는 진짜 잘하네?"


"잘하긴. 니가 쥐똥구녕도 할 줄 몰르이 그라지"


쥐똥구녕이란 말에 내가 배꼽이 빠져라 웃기 시작하자 할머니는


"니 숭보는긴데 뭐가 좋나? 고매 웃어 손에 기운 빠져"


할머니가 칼질을 멈추고 손등으로 코를 훔치셨다.


그 뒤로 나는 할머니와 동생들이 실수를 할 때마다 쥐똥구녕도 모른다는 말을 하며 웃었고, 똥이란 말만 나와도 까르르 웃던 동생들과 나는 한동안 쥐똥구녕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시들해졌다.




설날 친정행에 조금이라도 음식을 덜하고 싶어 구시렁대다 엄마에게 들은 쥐똥꾸녕도 모른다는 말에 나의 웃음은 그칠 줄 몰랐다. 어림잡아 사십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바로 어제 듣고 오늘 또 듣는 것 같은 말. 할머니가 하던 말을 할머니가 된 엄마한테 들으니 기분이 좀 더 묘했다.


온 가족이 커다란 상을 펴고 둘러앉아 음식을 준비하며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는 시간.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지, 엄마가 이젠 땅콩엿, 깨엿, 콩강정, 들깨강정, 참째 강정, 타래과, 산자를 안 만드시니 지금 하고 있는 이 정도 음식은 음식도 아니었다. 가마솥에 붙어 서서 엿질금을 고아내던 그 긴긴 시간들. 아우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들을 소담스럽게 담아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섣달그믐의 밤은 깊어갔다. 깊어가는 밤만큼 아부지의 주름도 깊어지고, 엄마의 손가락 관절은 더 휘어지고 있지만 그분들의 사랑과 헌신에 나의 몸과 맘과 영혼은 오동통 더 살이 올랐다. 감사함과 아쉬움, 죄스러움이 늘 비례하는 삶. 쥐똥구녕도 모르던 내가 이제 살짝 철이 들고 있는 걸까? 그런데 궁금하긴하다. 쥐똥구멍의 어원은 뭐였을까? 응가 모양도 예쁜 누에똥구멍도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