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실 그 어떤 것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신의 뜻에 따라 기다리는 것 밖에
그래서 남편이랑 2시간 걸려 만어사까지 가서 유명한 돌 할머니를 들어보며 소원을 빌고 오기도 했다.
소원을 빌고 돌이 들어지지 않아야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들 때는 들리지 않았다.
둘이서 은근 순진하게 좋아하기도 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원리가 보인 건 비밀이다.
그래서 뒤에는 돌을 들어버린 것도 모른 체 할 거다.
아파트 단지만 알고 있을 뿐 갈 수 있을지 못 갈지 몇 동을 갈지 몇 호 몇 층을 가게 될지 아무것도 나는 몰랐다.
단지 수시로 남편이랑 저번에 전화 걸고 일주일 지났어? 안 지났어? 하며 한국 토지주택공사에 전화를 걸어 "저 대기 몇 번 ㅇㅇㅇ인데요. 혹시 순위 변동 생겼나요??"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그러기를 몇 달
그러다가 나도 드디어 받았다
"차례가 되셨어요 b동 ㅇㅇㅇ동 ㅇㅇㅇㅇ호입니다."
공공임대 아파트 5년 임대 막바지에 추가 입주자를 모집하는데 대기로 걸려있다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는 소리다.
공공임대는 5년 10년 단위로 임대료를 내고 있다가 5년 또는 10년째 주변시세보다 싸게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게 지어진 아파트이다.
그런데 운 좋게 5년이 끝나는 시점인 올해 추가모집 합격이 되었는데 대기라서 될 수도 안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다리는 내내 되기를 바랐다가 순번이 가까워 오자 고층이길 층간소음이 없길 또 바랬다.
요즘 같지 않게 아이들이 많은 지역이라 조금 희박하긴 하지만 위층에 어린아이들이 살지 않길 사실 간절히 바랬다.
우리 집은 딸이 고3이고 나도 취업차 공부 중이라 이기적이지만 그렇게 빌었었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었나?
너무 감사하게도 희박하디 희박한 어르신들이 위층 앞집 옆집에 계셨다.
아래층은 사람이 안 보여 아직 모르지만 모든 일이 순조로웠고 깨끗한 집에 좋은 구조에 더 넓은 내 집이 생겨 너무너무 기뻤다.
뚜둥!
입주청소를 하러 간 토요일 워터파크를 경험했다.
아래 광장같이 생긴 주민들 쉼터 옆 배드민턴장에서 초등 고학년 아이들이 모여 피구를 한다.
함성소리가 어마 무시하다 고학년 여럿이 모이니 이건 무슨 아저씨들 소리만큼 크다.
7층 8층 위로 올라갈수록 소리는 광장 안처럼 울려서 워터파크 안에 앉아있는 느낌이다.
오늘 주말이라 아이들이 이렇게 노는구나..
아이고 뭐 주말이니 그럴 수 있지. 그랬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이사를 들어왔다.
짐을 정리하고 평일의 여유로운 저녁을 즐기려는데 괴성이 들린다.
또 배드민턴장 아이들이다.
그다음 날도 다음날도 2주가 지나가는 지금 나는 귀안이 멍멍하고 4시 30분이 다가오는 게 무서워졌다.
어마 무시한 굉음과 단체로 질러되는 고성에 짜증과 함께 몸이 너무 지친다.
울리는 소리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이중창을 다닫아도 들린다.
아주 잘....
몇 시간째 아이들을 지켜보니 공 받을 때, 공 놓쳤을 때, 누가 맞았을 때마다 단체로 소리를 지른다.
매일매일이 운동회다.
고민하다 하다 아파트 카페에 글을 써보려다 과거 글을 검색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야외 놀이에 관한 글은 없었다.
갑자기 소심해진 나는 동호수를 알려 공개하여야 하는 아파트 카페에 글쓰기가 부담 스러워졌다.
너무 별나 보일까? 인색해 보이나! 애들을 싫어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너무 미안해하거나 몰랐을 수도 있으니 그렇게 되면 내가 너무 쎄 보이는 아줌마가 되지 않을까?
별의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을 하다가.....,
아파트 카페보다는 지역 카페 익명 방을 빌어 엄마들의 반응을 좀 봐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정말 웬만하면.... 그냥 대충 사는 성격인데...
정말 매일매일 아파트 배드민턴장에서 초등 아이들 12명~15명이 매일 모여 피구를 합니다.
아시겠지만 저 상황이면 그냥 업되서 소리 지르고 누가 한 명 공 받거나 맞을 때마다 괴성을 지릅니다.
단체로 10명이 넘으니 아파트 안 소리가 울려서 고층인데 더 크게 들리네요.
실제로 밑에 내려가 보니 위보단 나아요 울리지 않으니..
이 더운 여름 이중창 다닫고 있는데 그래도 악쓰는 소리 들려요. 가위바위보 뭘 하는지 다 알아요.
그런데 더 미치는 건 매일 합니다.
누가 하라고 시켜도 못할 텐데 12명 이상이 매일 4시 30분 이후부터 슬슬 모여 8시 30분까지 지치지도 않고 몇 시간을.... 이사온지 얼마 안 되었는데...
미치겠네요... 아파트 카페에는 말하는 사람이 없네요.. 저만 별난 사람 될까... 말도 못 하고 더운 여름 바람 정말 시원한데 문도 못 열고... 들릴 때마다 너무 이러다 제가 미칠 것 같네요..
놀지 말라가 아닙니다.
배드민턴을 치든지 5명 이하 소규모로 모이든지....
주변에 두세명 모여 도란도란, 자전거 타고, 벤치에 앉아서 담소하고 보기 좋아요.
씽씽이도 타고, 엄마랑 걸음마도 하고, 근데 이건 무려 초등 열명이 넘는 아이들이 단체로 이러니...
오늘 보니,하물며 주변에 엄마로 보이는 두세 분 서있어요.. 고층이 더 시끄럽게 들리는 걸 모르는 걸까요? 제가 민감한 건가요?
워터파크 중간에 앉아있는 느낌이에요.
일주일을 그러고 나니 귀가 먹먹하네요
매일이 운동회!!
잊어보려고 신경 안 쓸려고
티브이 틀어도 소리도 안 들리고 음악을 들을 수도 없네요
지금 이 시국에...
주말만 해도 이해하겠어요
매일매일 4시 30분이 무서워요~"-
그랬더니 댓글과 반응이 생각보다 뜨거웠다.
그런데 나의 걱정과는 달리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절반 정도는 힘들겠다 민원 넣어봐라
또는 우리가 어른이니 가르쳐야 한다 모르고 그런 것 같으니 가서 얘기를 해봐라. 누구는 아이들 음료수 사줘가며 타일러봐라... 좀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드라마를 많이 보셨나 대충 이해할 것 같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럴 수 있지 공 받다 악 할 수도 있고 그러니 아이지 어른이 돼가지고 참 못났다. 쯧쯧'
'요즘 아이들 놀 때도 없는데 그렇게라도 놀 수 있는 게 어디냐'
'어디 가서 놀란 말이냐? 집안에서도 안된다 학교서도 안된다 학원서도 안된다. 이젠 밖에서도 놀지 말란 말이냐 너무한다.' '어른이니 그 정도는 참아라' '아이들 노는 모습 보기 좋더라 나는'
'그렇게 시끄러우면 원글자가 문 닫아라'
거기에 이어 '이 더운 여름에 본인 아이들 놀아야 한다고 문을 닫으라니 어떻게 그렇게 말하냐'
'당신 아이니 당신에게만 이쁜 거다'
'나 거기 어디 말하는지 알겠는데 나 거기 앞동 3층 사는데 그 정도 아니다 원글자가 예민하다'
그래서 나는 국어가 안되나... 내려가 보니 좀 덜하더라 그런데 고층은 훨씬 울려서 소리가 크게 들린다 써뒀건만... 하고 싶었지만 길어지는 댓글 논쟁에 나까지 보태봐야 해결이 안나는 결론 일 것 같아 에너지 낭비를 접었다.
인기글이 되다.
하지만 쓰기 전보다 더 짜증 나고 묘하게 심기가 불편해졌다.
밤늦게 까지 댓글은 쉼 없이 이어지다 조회수가 2000을 넘어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은 아마도 카페 인기글로 넘어가 있을 듯하다.
여긴 작은 신도시이다.
그래서인지 앞에서도 말했듯 신기하게 요즘 세상 모습과는 달리 아이들이 정말 많다. 한집에 기본 셋국가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도시다.
그러다 보니 댓글은 시간이 갈수록 원글자인 나를 탓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4시 30분이 넘어갈 무렵 아이들은 작은 놀이터와 배드민턴장으로 몰려왔다.
댓글은 자꾸 늘어나고 조회수가 많아지면 질수록 나는 꾸준한 욕을 들어먹고 있다.
이 소리가 과연 적응이 될까?
아니 요즘 세상에 이게 말이 되나?
어떻게 애들을 저렇게 밖에서 놀게 내버려 두나?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도록 교육시켜야 하지 않나?
갑자기 머리를 스쳐간 맘충이란 단어!
참 무슨 소린지 절묘하게 이해력을 높여준다.
내 아이만 내 아이를 위해서 내 아이는....
나는 아이들이 진심으로 뛰어놀지 말아 달라가 아니다.
소리를 지르지 말아 달라는 거다.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
아니 아이들에게 필수 불가결한 일인가 말이다.
나 역시 예전 이 아이들보다 아주 오래전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때도 저렇게 놀아본 적은 없다.
어른들 무서워서 혼날까 봐 조심조심....
물론 그때 저렇게 노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른들에게 불려 가 꾸지람도 듣고 벌도서고....
어떤 댓글이 그런다 당신은 아파트가 맞지 않으니 조용한 시골에 가서 살라고 그래서 너무 화가 나서 답글을 썼다.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으려면 시골을 가야 하는 거 아니겠냐고 아이들의 기쁨을 위해 나머지 어른들은 고통을 참아야 하는 거냐고? 이 지역에서 10년 바깥 도시에서 10년 넘게 아파트 생활했지만 이런 경우 처음이네요.'
조율을 해보거나 마땅한 방법을 찾아 의견 제시를 해보려 했던 내 생각은 틀렸다.
어디서 조금 공부하신 맘충은 그렇게 말했다.
이맘때 아이들은 발바닥에 리비도가 있어 마음껏 뛰어줘야 에너지도 발산되고 스트레스도 없어지고 성장호르몬도 잘 나온다고... 아네.. 그런데 그걸 왜 주변 사람들이 생각해서 챙겨줘야 할까요? 우리 아이도 평일 못 뛰어논 거 주말에라도 풀라고 차 타고 매주 야외로 놀러 나갔는데 부모님들이 그렇게 해서 풀어줘야지 왜 아파트 안에서 그렇게 하게 해 주라고 억지를 쓰십니까?
맘충이 들은 의견을 조율하고 맞출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든 아이들을 보호하고 맞서 싸우는 게 자신들의 의무인 줄 아는 사람들 같았다.
짜증이 며칠째 소음의 스트레스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이 사람들과 내가 맞춰 살 수 있을까?
아이들의 소음 속에 오늘은 그 엄마들의 댓글 하나하나가 머릿속을 채워간다.
공부를 할 때는 그렇게 안되던 암기가 어쩌면 이렇게 잘 되는지.... 아이들 머리 위로 엄마들의 댓글이 자막이 되어 지나간다.
같이 키워요!
"시끄러워" 창문을 열고 소리치고 싶은 맘 굴뚝같지만 이 아파트에서는 내가 특별한 사람인 게다.
내집의 기쁨은 아주 잠시 나는 이사온 내내 감옥살이를 하는 기분이다.
남편이 아래 편의점에서 아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돌아와 그런다.
"여긴 대부분 집에 아이들이 3명이란다."
"저기 중고생도 있잖아 그럼 그런 집은 시끄러울 것 아니야?
그런데 왜 아무 말도 없는 거지?"
"셋 이상이니 누군가 한 명은 아직 어리단다.
젤 큰애가 중고생이라도 막내가 초등학생 그러니 나가서 놀라고 하는 거다"
"마치 아주 오래전 동네 아이들처럼.....
아니 아이들은 자기들이 낳고 키우면서 왜 주변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라는 거야허락받고 낳았데?"
어떤 댓글이 떠올랐다.'전 아이들은 마을 전체가 키우는 거라고 생각해요'
"뭐래?"
왜? 내 아이도 키우기 힘들어서 안 놓는데 내가 왜 너네 아이를 위해 참고 힘들어야 해? 그럼 넌 날 위해 뭘 해주는데? 아주 미쳐 버리겠다. 이러다가는 내가 정신이 이상해질 판국이다.
내가 왜 쓸데없이 이런데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 정말 싫다.
여유로운 오후의 휴식은 내 헛된 희망이었던가
아아악... 난리도 아니다 5초에 한 번씩 소리를 질러댄다.
돌고래 소리에 함성 소리에 8시가 지나가야 조금씩 사라진다. 그것도 여운이 남아 아주 뭉그적뭉그적 서서히 사라진다. 엉덩이를 밀어서 아파트 안으로 넣어 버리고 싶을 만큼 천천히 사라진다.
안녕하세요!
그런 날이 이어지다가우리 집 중문 공사를 하게 되었다.
기사님이 소음이 날 거고 4시간 정도 해야 하니 미리 이웃들에게 양해를 구해달라고 했다.
알았다고 하고 나는 떡을 맞췄다
앞집에도 어르신 옆집에도 어르신이 살고 계셔 떡을 더 좋아하실 것 같았다.
기지 떡이 맛나고 포장도 개별로 잘 나오길래 카페 통해 주문서를 넣었다 작은 한 박스씩 앞집 옆집 옆집 앞집까지 돌리기로 했다
그리고 배달 온 떡을 남편과 함께 집집마다 초인종을 눌러 전달해 드렸다
소음에 대한 양해도 구했다.
옆집 앞 앞집은 잘 먹겠다고 자두도 가져다주신다.
우리가 소음 때문에 죄송할 거라서 드린 거다 해도 기어코 넣어주시길래 받았다.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경우가 바른 사람 이거나 상대에 대한 마음 전달을 하고 싶은 마음이 따뜻한 분 이리라.
인상도 좋으시고 우리 집에 고3이 있다고 했더니 더 조용해야겠다 하신다.
사실 괜쟎다 바깥 소음 덕에 난 층간소음 옆집 소음 아무것도 안 들린다 말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앞집 할머니는 손주를 아들네 대신 봐주고 계신데 아래층에 몇 번이나 시끄럽다 소리를 듣고 한 번은 경찰까지 다녀 갔다고 했다
아이에게 자제를 시키는데 그런데도 그렇다고...
속상해하신다.
아이들은....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많이 움직인다.
아이들은 금세 잊어버린다.
하지만 교육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원래 나는 아이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한때 어린이집 선생님을 꿈꾼 적도 있다.
아기들이 좋아 아기 사진을 찍었다.
남편과 함께 스튜디오를 열고 아기 사진만 20년 가까이 촬영했다.
아이들을 알기 위해 베이비시터 자격증도 따 보고 공부도 했다. 아이들은 순수하다.
하얀 종이처럼 그래서 하루하루 채워가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경기가 안 좋아지고 다들 사는 게 어려워지니 아이들 사진 촬영은 점점 후퇴하고 가격도 낮아지고 힘들어졌다.
그래서 긴 시간 투자했던 아기 촬영을 정리했었다.
나는 어른이다.
아이들만큼 하얀 종이가 없다.
그래서 어려운 걸까? 편견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순수한 모습의 아이들만 두고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럼 내가 화가 나는 건 뭘까?
단지 시끄러워서...
사실 나는 아이들에게 화가 난 게 아닌 것 같다. 어른들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 저 상황이 화가 나는 것 같다. 나와서 아이들을 보살피고 챙겨야 하는 어른들이 없어서... 더군다나 자신의 아이들을 방치한 채로 아이니까 봐줘라 나는 내 할 일을 한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동안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최대한 보살피고 쫓아다니며 힘들었는데 나보다 아이가 더 많은 그들은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는 힘들다고 주변에 때를 쓴다.
그리고 아이가 한 명인 나보다 더 여유롭게 자신의 할 일들을 하는 게 짜증이 났다. 나는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자신들도 어른인데 다른 사람들 보고 어른이니 참으라가 화가 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이들을 떠맡기듯 온 마을이 아이들을 함께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 게 화가 났다.
하얀 종이가 아니라서 나도 편견이 가득하다.
편견이지. 이 또한 내가 가진 편견.
그들의 내막이 마냥 편하기만 하지는 않겠지만 내 입장은 조금 더 아이를 위해 그들은 불편했으면 했던 것 같다.
나도 아이들과 20년
아이 촬영을 20년 가까이하면서 옆에서 지켜보면 그렇다.
아이가 한 명 혹은 첫째일 때는 두 부부가 애지중지 하기도 하지만 쫓아다니며 보살핀다.
그런데 아이가 둘 이상이 되면 아이를 보고 아이를 보라고 하고 두 부부는 주로 아이를 보지 않으려 한다.
아이를 세명이나 데리고 와서 동생들을 돌보는 건 큰아이 몫이다. 아빠는 커피를 마시고 엄마는 아이 옆에서 핸드폰만 한다. 작은 아이가 넘어져서 울면 큰아이를 꾸지람하기도 한다. 큰 아이가 몹시 가엽게 보였다.
아이가 많아지면 포기를 하나보다.
이렇게 저렇게 다 쫓아다니며 간섭하기 힘들어지니 포기를 하나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해를 한건 절대 아니다.
물론 모든 다자녀 부모들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아이들을 아빠가 더 강하게 훈육하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관리하는 집도있었다. 정답은 없다.
아이들 입장에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장단점은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우리는 어른이니까에서처럼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고 그것은 아이의 기를 죽이거나 아이를 마음껏 놀게 해주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로 어른들의 의무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이기도 하고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 생활의 기본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과 같이 살기 위해 배워야 하는 도덕이란 말이다.
그걸 가르치지 않고 아이들을 마냥 망둥이처럼 날뛰게 만드는 건 부모의 책임이지 않는가 말이다.
아이는 죄가 없다가 아니라 아직 모를 수 있으니 그 책임을 보호자가 지라는 뜻이다.
그럼 언제까지 아이들은 몰라야 하는 건가?
신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알 때까지?
다수의 어른들이 그런 책임을 같이 지던 적이 있었다.
어른들의 어린 시절엔 마을 사람이 다 같이 아이들을 키웠다.
그래서 마을의 어른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꾸짖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할 수 없다. 자신들은 아이들을 방치한 채로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되는 행동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본 지나가는 어른이 꾸짖거나 뭐라고 하면 그 부모들은 어김없이 화를 낸다.
그럼 그들은 어쩌란 건가?
우리 아이들이 좀 시끄러워서 죄송해요. 시끄러웠죠미안해요. 조금 더 주의를 줄게요. 한마디면 어쩌면 많은 어른들은 이해를 할 것이다.어쩌면 조금 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 줄 것이다.
따뜻한 관심 말이다.관심이 필요하고 편견을 지우고 되도록 하얀 종이 같은 아이들을 바라보려면 조금의 누그러진 애교가 필요하다.그렇다면 분명 넓은 아량으로 사람들은 아이들을 품어 줄지 모른다.
아이를 키우는 죄인이다 라는 말이 있다.
죄인이라서가 아니라 내 아이를 위해서 가지는 조금은 똑똑한 방향의 제시어가 아니었나 싶다.
죄인이라서 죄인이 아니라 조금 낮은 자세로 조금 더 현명하게 대처하면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결과를 줄 수 있으니 하는 말일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불필요한 것들이 있다. 악다구니를 쓰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면 상대도 지지 않으려 한다. 생각해보니 미친 듯이 세상과 싸우자고 내 할 말 큰소리 내어 다하고 다니던 젊은 시절이 나에게도 있다.
그렇게 말하니 내가 아주 늙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랬다.그 길지 않은 차이지만 그때는 몰랐다.
아이가 생기고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때로는 아이를 맡기면서 내 아이가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내가참아야 한다. 내 아이를 봐줄 사람이니 내가 부탁을 해야 한다.비용을 지불하지만 내 아이는 그 비용만큼의 소중함이 아니기에 맡기는 입장의 보호자인 내가 저분에게 부탁을 할 수밖에 없다. 저 사람은 비용만큼만 일하면 그만이지만 아이이다 보니 사건도 사고도 더 많이 생길 수 있다. 저 사람 역시 아이를 위한 봉사정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아이를 보는 일을 직업으로 가질 수 없다. 얼마나 힘들고 신경 써야 하는 일인지 너무 잘 안다. 내 아이뿐만 아니라 여러 명의 아이를 봐야 하는 일은 너무 힘든 일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내가 생각하는 한 가지는 맡기는 보호자가 까칠하거나 미우면 아이도 미울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들도 사람이다. 그래서 감정이 실릴 수밖에 없다. 요즘 가끔씩 떠오르는 어린이집 학대사건의 선생님들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런 선생님이 아니라도 분명히 사람이기에 감정이 실리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상적인 선생님이 아이를 방치하거나 미워서 어떻게 한다는 게 아니라 그런 감정이 들어서 서로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렇게 되면 감정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런 덕에 아이 가진 죄인이란 말은 오해받지 않기를 바라는 말 중 하나이다.
처음부터 나역시 알았던 것은 아니다.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나도 배웠고 엄마가 되어갔고 그리고 더 올바른 사람으로 현명하게 아이와 주변을 이어가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아이가 20대를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한 아이의 자지러 지는듯한 고함 소리와 돌고래 소리가 이어진다.
공을 튕기는 소리가 울리고 또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려나 보다.
이사온지 한달이 다 되어 가는 지금의 나는 그래서 뭘했을까?
결국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파트 카페에 글도 쓰지 못했고, 관리실에 전화를 넣지도, 경비실에 조용히 시켜달라 하지도 그 어떤 것도...
사실은 처음부터 할 생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4시간 동안 창문을 꽁꽁 닫았다 열거나, 소리를 잊기 위해 다른 일을 하거나...... 하지만 들리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