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否定

선임과 상사.. 신입 간호조무사로 사는건

by 모아

1년 6개월 정도 난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했다.


간호조무사를 준비하다.

늦은 나이에 자영업을 접고 힘들다면 힘들게 1년 동안의 과정을 밟아 간호조무사가 되었다.

40대의 간호조무사는 요양병원 밖에 갈 수 없다는 주변의 말을 무시한 채 그래도 누군가는 개인병원에 취업이 되고 희박하지만 소수는 그냥 병원에 취업한다는 말에 힘입어 초 긍정적인 마인드로 힘든 시간도 지나왔다.

늦었지만 그런 사람들 많으니 간호대를 편입학 방법으로 지원해 보라는 학원 선생님의 권유를 받을 만큼 정말 열심히 공부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사실 그때는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한 것도 같다.

덕분에 모의고사 98점 성적우수자로 간호조무사 협회를 통해 상도 받았다.

2차 병원급에서 실습을 마치는 조건이라 2차 병원에 있는 동안 의사 아래 수간호사 평간호사 그아래 간호조무사 그리고 그아래 실습생으로 6개월을 일했다.

실습이라기보다 현실은 궂은일을 도맡아 시키는 잡심부름꾼 정도로 기억하면 될 것 같다.

자존심도 무척 상했고 나의 자존감도 무척 낮아지는 순간의 연속이었지만 어쨌든 지나야 할 순간일 뿐이라 생각했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잡일들 가운데 어떻게든 하나라도 배워서 나가고자 머리를 숙였다.

타인들은 1년 남짓 학원 다니다 일하는 조무사 나부랭이라고 칭하는 사람들도 있다.

간호대를 나와 간호직으로 일하는 간호사들은 간호조무사를 무척 싫어한다.

1년 남짓 학원 나와서 딴 자격증으로 개인병원에서는 간호사 노릇을 하고 있으니 4년 동안 힘들게 공부해서 간호사가 된 그들이 보기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차피 시작점이 다르고 그래서 월급도 조금 부풀려 두배나 차이가 난다.

그런데 그들이 애태우며 간호조무사 따위를 시기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어차피 내 입장에선 그들이 지시하는 데로 말 그대로 어시스턴트로 일하는 편이 훨씬 속 편할 것 같아 그들이 걱정하는 그들을 올라서려 하거나 그들의 자리를 넘보거나 그들을 무시하는 태도 자체가 의미 없다는 소리다.

어떤 식으로 생각해 봐도 우위에 있는 그들이 굳이 아래 위치의 간호조무사 따위에 왜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들도 간호조무사에게 화가 난 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의료체계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일 가능성이 더 높다.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개인병원에서 의사 밑으로 간호사 없이 간호조무사를 채용하여 간호사의 업무를 맡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학원에서는 불법이라며 주사 따위의 침습 행위를 가르쳐 주지 않게 되어 있는데 실상은 다르다.

개인병원에 취업을 하려면 i.m근육주사와 i.v혈관주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조건:간호조무사 자격증, i.m, i.v가능자라고 되어있지 않은 병원이 없을 정도이다.

하물며 신입 가능해놓고도 i.m, i.v가능자를 찾는다.

학원에서 배워 오기를 바라는 거다.

그렇다고 실제 법대로 이 상황이 불법이냐 하면 또 그렇지가 않다.

왜냐면 의사의 지시하에 (개인병원의 경우 부득이하게) 간호조무사의 침습 행위를 허용한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인병원의 경우 부득이란 글쎄.... 지만 아마도 수입이 일정치 않고 적은 것을 감안해 월급이 높은 간호사를 대신해 조무사를 채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점을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감히 말하건대 개인 병원에는 간호사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법이 저런데 굳이 월급을 두배 이상 줘야 하는 간호사를 고용하는 의사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간호조무사에게 주사 맞기가 꺼려진다면 2차급 이상의 병원을 가야 한다.

하지만 오래되어 주사가 능숙한 간호조무사들은 간호사보다 주사를 잘 놓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은 잘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도 맹점이 있다. 보수는 대부분 최저 시급에 맞춰 주면서 능력은 간호사 급의 사향을 원하면 안 되는 게 아니냐는 말이다.

그런 이치에서 보면 사실 간호조무사가 주사와 같은 의료 행위를 직접 하도록 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의료 보조 행위가 아닌 환자로 하여금 어떤 결과를 낳게 하는 의료 행위를 간호조무사가 하게 함으로써 가져야 하는 책임감과 그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당 하기에 간호조무사의 월급은 너무나 적다.

최저시급이란 그야말로 단순 노동을 하는 일명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식당에서 간단한 서빙 업무를 돕거나 데스크 계산을 돕는 등의 일을 맡길 때 줄 수 있는 대한민국 최저의 인건비인 샘인데 그런 비용을 지불하고 환자에게 의료행위를 직접 하도록 맡기는 것은 맞지 않다는 말이다.

어쨌든 나는 1년 동안의 간호조무사 교육시간을 이수하고 시험을 쳐서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땄다.


간호조무사가 되다.

그리고 시험 결과가 나오고 자격증이 발부되기 한 달 사이 개인병원 두 곳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합격을 했다. 합격이라기보다 나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한 곳은 원장의 마인드가 시급이 얼마인 줄도 모른 채 터무니없는 금액으로 원래 신입은 그런 거다 하여 내가 그래도 최저 시급은 맞춰서 줘야 하는 거 아니냐 라고 하자 시급이 얼마죠? 오천팔백 얼마인가요? 하길래 2019년 현재 8350원입니다 라고 말을 했던 곳이라 가지 않기로 했다.

남은 한 곳은 이비인후과이며 환자가 많고 바쁜 곳이라 했다. 하지만 시급 이상의 금액을 받기로 했고 상여금도 준다고 하며 젊은 원장님의 마인드도 좋아 보여 가기로 했다.

여기도 처음부터 신입인 나를 뽑은 건 아니었다. 급한데 먼저 뽑은 사람이 갑자기 하루 만에 못하겠다고 나오지 않아서 면접 순위로 두번째 였던 나에게 연락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신입 간호조무사로 사는것은

여기는 간호조무사가 나를 포함해 4명, 나만 신입이었다.

그냥 1년은 죽었다 생각하고 배워야지 어떻게든 주사를 배워서 나도 경력자가 되어야 하니 머리 숙여 어떻게든 1년만 참아보자 생각했다.

그러기엔 한가한 병원보다 오히려 바쁜 병원이 서로 부딪힐 일도 없고 일도 빨리 늘 거라는 안일한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출근한 첫날부터 무너졌다.

나이가 비슷한 한 명, 나보다 6살 많은 한 명, 나보다 무려 나이가 13살이나 적은 한 명 모두 다 기본 병원일 6년 이상의 베테랑 들이다.

-"어머 새로 온 선생님은 너무 말랐다"

하길래 내가

-"아니에요. 선생님도 날씬하신데 뭘 그러세요 전 안 보이는 속살이 많아 우리 집에선 남편이 놀려요"

했더니 나이 많은 그녀가

-"0쌤아 얘기 들었나? 저 선생님보고 쪘다고 한단다"

했더니 13살 적은 뚱뚱한 그녀가 그런다

-"죽여버리겠어"

하니까 나이 많은 그녀가 좋다고 깔깔깔 거린다.


이건 뭐지? 내가 잘못 들었나?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저런 말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누가 자기 보고 그랬나?

어떻게 죽여 버린다고 말을 할 수 있지? 첫날부터 기분이 안 좋다.

말조심하라 말할 수도 없고 참 거침이 없는 사람이구나

아... 신음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거침이 없다.

행동이나 말 따위가 중간에 걸리거나 막힘이 없다.

내가 참 싫어하는 말이다.

그런데 자주 쓰는 표현이기도 하다.

저 사람 참 거침이 없다.


첫날 그녀의 인상은 그냥 그녀 그 자체였다.

그녀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분위기는 그냥 거침없는 사람들이었다.

본인들은 본인들이 쿨한 사람인 줄 안다.

속에 담지 않고 바로 표현하는 뒤끝없는 사람이라 편할 거라고

말하는 게 전부라고....

머리에 방울을 하고 갔다. 쑥 잡아 빼더니 이게 뭐예요? 하고 손에 끼고 잠시 살피다가 무거워서 어떻게 해요? 하면서 자기 머리에 꼈다가 쑥 빼서 집어던져 놓는다.

사소한 것 하나도 참 거침이 없었다.


신입이라 병원일은 아무것도 모르니 온통 배워야 할 것 투성이다.

실수를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하지 않기 위해 그들에게 묻고 또 물을 수밖에 없다.

눈치껏 잘해야지... 열심히 배워야지.... 나이도 많은 신입이 행여 걸리적거리기라도 할까 먼발치서 발만 동동 구르곤 했다.


수호신 같은 그녀

나이 많은 그녀가 나이가 비슷한 그녀를 지칭하며

-"이 선생님 따라다니면서 계속 배워요"

그나마 말이라도 붙일 한 명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이가 비슷한 그녀만 나를 떠보거나 시험하지 않고 비아냥 거리지 않고 질문에도 곧잘 대답을 해 주었다.

그녀가 있어 나는 숨이라도 쉴 수 있었다. 두 번 세 번을 물어봐도 짜증 내지 않고 초등학교 선생님처럼 하나씩 가르쳐 줬다. 나보고 하라고 해도 그렇게는 못하겠다 싶을 만큼...

감사했다.

그녀는 초등 아들이 두 명이나 되는 싱글맘이었다. 그래서 억척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또한 악착같았다.

하지만 누구보다 진지했고 사람을 진실하게 대해줬다.

하지만 나머지 두 명은 어떻게든 나를 골려줄 생각밖에 하지 않는 사람들 같았다.

나이 어린 그녀가 하루는

-"장쌤 이거 해봐요"

하면서 수액병에 약을 믹스하라고 지시했다.

문 앞에 나이 많은 그녀는 가만히 지켜보며 비아냥스러운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해 본 적 있어요? 할 수 있겠어요?"

당연히 해본 적이 없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다.

질문 하나에 내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못한다 못하겠다. 하고 싶지만 앞으로 내가 해야 될 일이고 못한다고 계속 안 할 수는 없으며, 또한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 하지만 나보다 너무 많이 어린 그녀 앞에서 버벅데고 실수하는 모습 보이기는 싫고 처음 하는 일을 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분명히 그녀에게 잔소리를 들어야만 된다. 그녀도 알고 있다. 그리고 나도 알고 있다. 그녀가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하자 나이 많은 그녀가 그런다.

-''0쌤아 나이가 들면 생각이 많아서 쉽게 대답 못한다. 한다고 할 수도 없고 안 한다고 할 수도 없고 나이 많은 신입이 못한다고 매달릴 수도 없고 뭐 그런 질문을"

얼핏 들으면 나를 대변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둘이서 중간에 나를 두고 골려 먹고 있는 중이다.

나이 어린 그녀가 말을 받아

-"아 그냥 한다고 하든지 못하면 못한다 하면 돼지 그게 뭐가 어려워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는

-"해볼게요. 처음이라 못하니 잘 가르쳐 주세요"

나이 많은 그녀를 보며 나름 간곡한 어투로 말을 하고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들에게 그런 것 따윈 통하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 내가 하는 것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그녀들이 뭐라고 무시한 채 내 할 일만 하고 싶지만 첨이라 떨리고 별 것 아닌 그녀들이다 생각해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더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손에 들고 있는 주사기도 맘대로 되지 않고 쪼끄만 앰플에서 주사 바늘로 약을 올려 넣는 손가락에 힘이 실려 바늘 끝이 압축이 된 느낌이다.

겨우겨우 주사기에 약을 넣고 새끼손가락보다 더 작은 앰플 병을 바닥에 내려놓으려니 손이 떨려 앰플병이 넘어진다. 넘어진 앰플병을 다시 세우려 하다 보니 반대편 손에 든 주사기 피스톤이 눌러져 겨우 밀어 넣은 약이 바늘 끝으로 세어 나온다. 그 모습을 놓칠세라 나이많은 그녀가

-"아우 장쌤 난리다 난리 그 옆에 약 다 센다. 센 거 그대로 약 믹스할 거야? 용량 안 지키면 어떻게 해, 약도 주사기에 제대로 못 넣어서 어쩌려고 그래 신입이라도 이런 건 알고 와야 하는 거 아냐? 요즘은 학원에서 이런 거 안 가르쳐줘? 아 일하기 힘들겠네.."

어린 그녀는

-"내려놓을 때 똑바로 놨어야죠. 두 번 일을 하려고 하니 힘들죠? 들고 있는 손으로 왜 그걸 눌러요? 누르니까 약이 새죠? 참 놔. 이리 주고 옆에서 보세요."


그럴 때마다 수호신처럼 나이 비슷한 그녀가 나타났다.

-"처음이니까 그렇죠 처음부터 어떻게 잘해요. 난 더 했어"

다들 비좁으니 나가서 다른 일 하라고 내보내고 나를 가르쳤다. 이렇게 잡고 이렇게 이렇게 하나하나 천천히 배우라고 다 처음엔 그렇다고.....

저 사람들도 처음부터 잘한 거 아니라고 기죽지 말고 저 사람들 원래 그러니 그러려니 하고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조금만 지나면 내가 조금 더 익숙해지면 그들도 저러지 않겠지.... 일이 익숙하지 않아 본인들 일하는데 힘들어질까 봐 그러겠지...... 내가 더 노력해서 일 인분이 될 수 있도록 해 줘야겠다.


열심히 연습하자

수시로 들어가 약병을 잡는 것부터 익숙해 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덕분에 본인들이 해야 하는 일까지 내가 다 했다. 처음엔 내가 자처한 부분도 있고 내가 익숙해지려면 많이 하는 수밖에 없으니 그러려니 하면서 손에 주사기를 들고 다니며 잡고 당기고 물을 넣어 병으로 옮기고 손에 감각을 익히기 위해 수없이 반복했다.

엑스레이 촬영 전 환자를 준비시키고 자세를 잡는 것도 수액 약을 믹스해서 환자에게 가져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도 진료 후 나온 설압자며 각종 진료 도구를 세척하고 소독하는 일도 데스크에서 환자를 받고 접수하고 카드 결제를 하는 일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들이 가장 싫어하는 진료실에서 반나절 이상을 서서 진료를 보조하는 일도 하루 종일 앉을 새도 없이 일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두세 달을 그렇게 보낸 것 같다.

그녀들은 덕분에 주로 앉아 있었다. 나이가 비슷한 그녀는 나보다 더 뛰어다니며 내 뒤치닥거리와 행여 실수할까 봐 노심초사 쫓아다니며 늘 나를 도와줬다.

응원을 아끼지 않았고 심적으로도 많은 위로를 해줬다. 누구보다 그녀가 없었다면 나는 한 달 만에 병원일을 접었을지도 모른다.

나이 어린 그녀는 나이가 비슷한 그녀가 보이지 않는 틈을 타 늘 지적질을 하기 바빴다.

-이건 왜 이랬어요?

-여기 불은 왜 안 껐어요?

-문은 왜 안 닫아요?

내가 일을 하고 나오면 아무리 바빠도 다시 들어가 쓰레기통까지 뒤져서 나에게 잔소리할 거리를 찾아냈다.

한 번은 본인이 엑스레이를 촬영하고 나에게

-" 장쌤 없어서 내가 대신 엑스레이 촬영했어요"

하길래 나도 모르게

-"아 네 고마워요"

해줬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왜 그게 내가 할 일이 되어 있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자기들은 뭘 하고.... 그래 놓고 잠시 후

-"장쌤 왜 엑스레이실 문 안 닫았어요? 거기 문 열어놓으면 애들도 들어가고 안된다고 문 주의해서 닫아 달라고 했잖아요."

그러길래 내가

"선생님... 근데 방금 엑스레이 선생님이 찍고 왔잖아요. 그 뒤로 아직 촬영 없었어요"

좋은 말로 조용히 얘기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늘 짜증 섞인 어투로 인상을 그렇게 써가며 말을 하니 나는 늘 가시방석이다. 자기가 해놓고도 모를 만큼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나를 지적질할 이유만 가득한 것 같았다. 나이가 비슷한 그녀가 있으면 분명히 한 소리 하게 되고 그러면 나머지 두 명은 내 앞에서 본인들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으니 늘 그녀가 없는 틈을 타 둘이서 번갈아 가면서 나를 쏴 댔다.


'무섭다.'

어린 그녀는 지적질로 하루를 보내고 나이 많은 그녀는 내 일거수일투족을 옆에서 지켜보며 비아냥 거리기 바빴다.

"장쌤 오늘은 머리가 꼭 새색시 같이 하고 왔네...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진료실 들어가면 원장님하고 부르면서 절해야겠다."

하루하루 그녀들의 괴롭힘에 나는 지쳐갔다.

어디서 '장'소리만 들어도 깜짝깜짝 놀랐다. 또 무슨 일로 나를....


'이건 아니잖아'

나이 많은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그곳엔 휴지가 떨어져 있었다.

누군가 코를 닦거나 뭔가를 닦고 흘려놓은 휴지조각!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손가락을 치켜올려 치우라는 시늉을 한다.

기가 막힌다, 저걸 지금 나보고 주우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거야?

하..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그래 어디까지 하는지 보자.. 그렇게 하니 너희는 재미있니?

하면서 어차피 내가 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을 조용히 넘어가고자 나는 그 휴지조각을 줍기 위해 그 자리로 갔다. 그런데 그녀는 그 휴지조각 앞에 두 세발 떨어져 있었고 나는 그녀의 반대편 데스크에서 환자의 계산을 돕고 보내는 중이었다.

휴지를 주우려다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잠시 덩그러니 서 있었다.

내 뒤로 나이 어린 덩치 큰 그녀가 저벅저벅 나이 많은 그녀가 사라진 쪽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잰걸음으로 빠르게 어린 그녀가 간호사실로 들어가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을 때쯤 나이 많은 그녀가 아주 빠른 걸음으로 화가 난 듯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새로 들어온 환자의 귀에 체온계를 꼽고 체온을 재고 있었다.

나이 많은 그녀는 내 쪽으로 와 바짝 다가오더니 귀에 데고 이렇게 속삭였다.

-"그 쓰레기 내가 주울 수도 있지만 장쌤한테 일부러 시킨 거야 원래 그런 건 막내가 하는 일이니까"

하면서 날 빤히 바라본다. 체온을 재다 체온계를 떨어뜨릴 뻔했다.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나이가 비슷한 그녀에게 이야기를 했다. 마치 그럴 리가 있나? 거짓말이 아니냐는 듯이 놀랬다. 나도 거짓말이고 내가 지어내는 소설 같았으면 좋겠다.

내가 실제로 이런 일을 당하고 있다는 게 너무 자존심 상해 미칠 것 같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지내야 아니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화가 나고 기가 막혀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이렇게 바보같이 지내는 게 맞는지 뭘 그녀들에게 얼마나 배운다고 내가 이렇게 까지 당해야 하는 건지?

내일부터 당장 나오지 않을 것 같으면 나도 하고 싶은 말 다하고 떼려 치우고 싶지만 내일도 모레도 일을 할 생각이라면 그럴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 내가 악다구니를 쓰고 그녀들에게 데들어 봐야 나만 더 손해니까

나이가 비슷한 그녀도 내 편이 되어주는데 한계가 있다. 무턱 데고 그전부터 같이 잘 지내오던 동료들에게 새로 들어온 직원을 감싼다고 같은 편처럼 보이면 안 되니까


텃세

텃세겠지..... 그 말로만 듣던...... 딱 맞아떨어지는 단어는 텃세뿐이구나.....

그게 하고 싶어 저렇게 하루 종일 잔머리를 굴리는 나이 많은 그녀와 그 뒤를 따라 지적질로 선생님 놀이를 하는 그녀 그들에게 난 그냥 재밌는 장난감일 뿐이었다.

한참이 지난, 내가 일이 익숙해지고 i.v도, i.m도 곧잘 하고 본인들이 안 들어가는 수술도 들어가고 그렇게 되어 병원 사정상 원장님이 나이 많은 그녀를 내보내려 하던 그 쯤 내가 그랬다. 나이 많은 그녀에게

-"사실 선임과 상사는 다른 거 아니에요?"

그랬더니 나이많은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

-"아니 똑같아"

한다.


나를 위한 후회

퇴근길 나의 가방이 되어버린 쓰레기봉투는 내가 안 들면 다른 사람은 굳이 일부러 챙기지 않았다.

50리터가 가득 채워진 날은 혼자 들기 버거웠다.

나이가 비슷한 그녀가 없는 날이면 나는 혼자 들고 일층 상가 입구 앞에 내어놓고 가야 한다.

나이 많은 그녀와 함께 내려가던 날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가볍게 쏙 빠져나와 지인을 만났다.

그 뒤를 무거운 쓰레기를 끌다시피 하며 들고 가는 나는 길이라도 좀 비켜주면 고마우련만 하며 그 뒤를 쓰레기를 든 채 따라가는 꼴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지인이 그 모습을 보고

-"언니 저 쓰레기를 혼자 들고 오는데 좀 도와주지..."

하니 나이많은 그녀가

"아 그렇게 안되어 보이면 네가 도와주던지"

지인은

"나는 그 병원 직원이 아니잖아"

아..... 내가 왜 부끄러운 건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정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고 내가 손에 쥔 쓰레기가 된 기분이었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 그날 난 집에 돌아와 한참을 울었다.

나이를 먹고 아버지가 돌아기 신 이후 처음으로......


자기들도 하다 보면 지치겠지 재미없어지면 그만두겠지

내가 자기들처럼 하지 않으면 내가 더 잘해주면 언젠가는 내 진심을 알아주겠지?

나그네의 옷을 벗긴건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 이었으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 편이 내 맘이 더 편했으니까....

나는 너희들과 달라서 너희보다 더 큰 걸 보고 더 넓은 마음과 아량으로 너희를 감싸는 거라고 하지만 현실은 비겁하게 그들을 피하는 아무 힘없는 비굴한 내가 보일 뿐이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도피일 뿐이다.

둘이서 함께 나를 골려 줄 때면 알아도 어떻게 하지 못한 채 나는 늘 바보같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비슷한 그녀와 몰래 그녀들이 없는 틈을타 i.v를 익혔다. 나이가 비슷한 그녀는 얼른 배워서 저들보다 잘하라며 나를 응원했다.

그러면 저들도 그렇게 까지 못할 거라고 그런 희망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배웠다.

그녀들은 나에게 일부러 이 핑계 저 핑계를 데며 혈관 잡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처음 몇 번 시켜 보고는 몇 번 시험을 하더니 자꾸 기회를 빼앗아 갔다.


그녀의 역할놀이

나이 어린 그녀는 늘 수액병을 챙겨 들고는 자기를 따라오라 했다.

기회를 주지는 않고 본인을 자꾸 보라고 늘 따라오게만 했다.

마치 무슨 의사가 인턴 데리고 다니는 것 마냥 나를 끌고 다니는데 재미가 난 것 같았다.

그녀가 원하는건 '어떤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하더라도 자기말에 토를 달지 말고 선임 대우를 해달라'는 거다.

아침이면 자기보다 먼저 나가 준비를 하고 뒷정리도 전부 내가 하고 끊임없이 선임 대우를 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나이많은 그녀에게 나에게 그렇게 지시해 달라고 했단다.

어떤 날은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알았다고 해도 그렇게 하루 종일 같은 잔소리를 열 번도 넘게 하기도 한다.


팔짱을 낀 채 선생님 어제 내가 외워오라고 한 거 외웠어요? 한번 봐요 하면서 예방 주사약이 가득 있는 냉장고를 가리킨다.

수두 약 찾아봐요! 일본뇌염은요? 미치게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녀의 이 재미난 놀이에 응해주지 않으면 심술은 대략 내가 사과할 때까지 최장 3일까지 버텨보았다.

그런데 내가 미칠 지경이라 사과까지 했다.

토라지면 아침부터 인사 안 하기 안 받아주기부터 시작해 안 그래도 인상이 좋지 않은데 더 구겨진 얼굴로 인상을 쓰고 따라다니며 잔소리는 두배로 더 많아진다. 이건 왜 이랬어요? 아... 이건 또 왜 한숨에 변명 따윈 들을 생각도 없고 그냥 잔소리를 할 생각뿐이다. 그 뚱한 얼굴과 표정은 나를 하루 종일 미치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너 두고 봐라 그런 심보로 이틀이고 삼일이고 나를 괴롭혔다.

내가 지쳤다 두 손 두발 다 들었다. 이 뚝보야 그래 니 뱃심 한번 좋다.

장군감이네. 장군을 시켰어야 했어 나라를 구할 수 있게

사실 내 약점이기도 하다 누군가 내 옆에서 뚱하게 있으면 그게 나 때문이 아니라도 나는 너무 불편하다 왜 그런지 알아내거나 뭔가 해결해 주지 않으면 그 이유가 혹시 나 때문일까 싶어 져서 인지 심장이 두근거리고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내가 괴롭다.

그래서 나는 어린 그녀가 그럴까 봐 그녀가 하는 걸 대부분 다 따라 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약병을 기억나는 데로 집어 보여주면 그녀의 선생님 놀이는 시작되는 것이다.

-"딩동댕, 땡땡이예요 선생님 내가 그렇게 가르쳤나? "

-"그게 아니죠 딩동댕... 땡땡"

하며 소리를 질러 댄다.

'아 미치겠다 진짜 너무 싫다.'

참 웃기지도 않다 내가 뭘 하는 건지 그녀의 뒤를 따라 나오면서 나이 비슷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황당하다는 듯 흉내를 내어 보여줬더니 웃겨 죽겠다는 듯 배를 잡는다.

본인이 하는 짓이 얼마나 웃긴 일인지 모르는 걸까?


사람을 미워하게 되면 내가 괴로워지니 같이 일하는 동료를 어떻게든 좋게 생각해 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점점 그녀의 단점만 보이기 시작했다.

미련한 몸으로 일어서면서 바퀴 의자는 늘 벽으로 내동댕이 쳐져 있어 다른 사람이 지나갈 수가 없다.

좋지 않은 인상으로 늘 사람을 무시하고 가르치려 들고 본인의 위치와 상황을 과시하려고만 하니 나로서는 그녀가 좋게 보일 수는 없었다.


그사이 원장은 나를 믿고 지지한다. 장선생님의 일하는 태도가 참 마음에 든다. 를 넘어서서 회식 자리에선 본인이 가장 원하던 간호사의 모습이다. 나로 인해 병원 이미지가 급 상승한 것 같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i.v가 조금 익숙해지고 나서는 나이 어린 그녀가 독점으로 들어가던 수술 보조도 하라고 몇 번이나 권했고 그래서 덕분에 시술에 이어 수술까지 나이 어린 그녀와 번갈아 가면서 보조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들의 심술은 더해져 갔고 나는 나날이 야위어 갔다.

어떤 사람들은 성질이 못되고 신경이 날카로워서 마른다고 하는데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본인을 채찍질하고 주변의 아주 작은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느라 늘 안테나가 서 있으니 스스로가 너무 피곤해져 살이 안 찌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도 해도 안된다는 다이어트를 나는 그녀들로 인해 저절로 얻게 되었고 덕분에 1년 만에 처녀 때보다 더 적은 몸무게와 더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녀들은 세 명이서 다이어트 환을 처방받아먹었다. 야식으로, 중간중간 먹는 간식으로 살이 너무 쪘다며 한꺼번에 처방받아온 다이어트 환을 나 보란 듯이 나눠 먹으며 서로의 몸무게를 공유하곤 했다. 나만 빼고


정말 궁금해! 도대체 언제까지 할건지

나이 비슷한 그녀에게 어느 날 나는

-"선생님이 보기엔 왜 저를 이토록 싫어하는 것 같으세요? 제가 뭘 잘못하고 있는 게 있을까요?"

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잠시 고민을 하던 그녀가 그랬다.

-"다른 건 잘 모르겠고 아마도 점점 나아지겠죠.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냥 먹을 거 주면 그냥 고맙다 하고 잘 먹고 뭐하라고 하면 모르거나 본인 생각에 아니라도 그냥 네 하고 그렇게 하세요"

하고 가버린다.

본인도 생각해서 하는 이야기이고 꺼내기 힘든 말이라 자리까지 뜨는 것 같은데 이 말은 두고두고 나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었다.

내가 짐승도 아니고 먹으라고 던져주면 그냥 네 하고 첩첩 먹고 하라고 하면 무조건 그냥 하라고

물론 말하는 의도는 그게 아닐 거라 생각하고싶다.

마칠 시간이 다가오는데 환자분들이 가끔 떼를 쓴다. 수액을 맞게 해 달라고...

수액은 아무리 작은 팩을 가장 빨리 맞는다고 하여도 1시간은 걸려야 한다. 안전하게 다 맞으려면 준비하는 시간까지 1시간 30분은 족히 걸린다. 그런데 퇴근시간이 30분도 남지 않았는데 그러면 참 곤란하다.

데스크에서 안된다고 하면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에게 조른다.

그러면 원장은 당연히 맞춰주라고 한다. 그러면 그녀들의 전쟁은 시작된다. 누구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다급히 아마도 응급 환자가 있는 응급실도 그렇게 빠르지는 못할 것 같다.

연결된 수액을 5분마다 한 번씩 들어가 속도 조절을 한다. 빠르게 빠르게 더 빠르게 너무 급속하게 수액이 들어가면 환자는 쇼크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배웠다. 하지만 그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속도를 높인다 그러다 나에게 시킨다. 나보고 들어가 속도를 더 올리고 오라고... 그럴 때마다 난 토아닌 토를 달 수밖에 없다. 너무 빠르지 않냐? 위험하지 않냐? 그러면 짜증을 내면서 그럼 집에 안 갈 거냐? 장쌤 혼자 남아 있어라 그래서 처음엔 그래 보겠다고도 했지만 그건 통하지 않았다. 나 혼자 그렇게 남아서 하고 있는 꼴을 원장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이유이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자신들에게 반박하는 게 싫다는 거다.


6년동안 배운게 뭐니?

수면 다원검사를 한다. 검사가 마치면 환자들은 병원 외래를 방문해 수면다원검사 결과를 듣는다.

검사 결과는 원장님이 직접 한글로 다 써둔다. 우린 그 결과지를 보고 환자에게 조금 더 쉽게 설명만 해 주면 된다. 그런데 가끔 모르는 말이나 전문 용어가 쓰여 있을 때가 있다. 그래서 그녀들에게 물었다. 늘 베테랑 인척 하는 나이 어린 그녀에게도 물었다. 나는 그녀가 그런 걸 잘 모른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도 좀 알았으면 했고 같이 찾아보고자 같이 공부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그녀는 늘 입에 달고 다녔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못했으며 영어는 전혀 모르고 간호조무사 시험도 간신히 턱걸이로 커트라인 맞춰 합격했다고.....

간혹 데스크에 같이 앉아 있으면 부끄러운 일이 종종 생기곤 한다. 환자가 약 이름을 말하면 찾아봐야 하는데 영어로 된 단어를 스펠링 하나하나 따서 치고 있는 거다. 환자가 약 이름이 써진 종이를 주는데도 약 이름을 얘기하지 못하는 거다. 왜? 읽을 줄 몰라서....

약상자가 배달이 와서 약을 정리해야 하는데 대충 보더니 나이 많은 그녀가

-"마늘주사 왔다 장쌤"

그러는데 보니 리파란주라고 영어로 써져있다. 리파란주는 마늘주사가 아니라 일명 신데렐라 주사약이다.

그런 그녀들에게 나는 같이 알면 좋을 것 같은데 찾아보자 공부하자 하면 잔소리 같고 기분 나쁠까 봐 모를 줄 알면서 묻기도 했다.

그러면 그때마다 나이 어린 그녀는

-"알면 뭐해요 왜 쓸데없는 짓을 해요 바쁜데.."

그러면 나는

-"환자분이 물어보시는데 설명하는 사람이 모르면 그렇잖아요. 환자들은 믿고 듣고 있는데 나는 알아야

설명을 해줄수... "하면

-"모르면 그냥 원장님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해요. 나는 그런 거 모른다고"

하고 하면서 짜증을 내곤 했었다.

그러니 그들 사이에서 나는 어려운 질문 하는 사람 꼬치꼬치 캐묻는 피곤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아니면 쓸데없이 골치 아픈 사람?

간혹 쉬는 시간 짬이 나서 핸드폰으로 뭘 찾아보고 있으면 오락이나 하고 있는 그녀들은 나를 비아냥 거리곤 했었다.

나이 많은 그녀는

-"의대 가지 그랬냐고 이젠 아주 의사가 될 판이네"

그러면 나는 그냥 못 알아듣는 척

-"그냥 심심해서 보는 거예요" 하면

-"심심해서 그런 걸 본다고? 우리 병원 박사 나시겠네 박사"

하면서 더 비아냥 거린다.


내가 다 옳고 그들이 다 틀렸다는 건 아니다. 난 정말이지 조금 더 진취적이고 시간을 더 유용하게 쓰고 싶고 또한 어차피 하는 일을 위해 조금 더 노력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쏟는 그 불필요한 관심 따위를 조금 더 효율적인 방향으로 돌려주고 싶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뭐 딱히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그런 것들을 어필할 뭔가를 했다는 건 아니다.

그러려면 그녀들과 부딪히며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데 나는 그녀들 덕분에 그럴 힘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하루하루 종이 인형이 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내 생각이 틀렸나봐!

내가 생각한 병원!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 교양 있는 사람! 일반인들에게 의료적으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 거기서 벗어난지는 꽤 오래되었고 그게 아니란 걸 인정하는 데는 시간이 꽤나 걸린 것 같다.

원장은 조금 더 진취적이길 원했고 의료적으로 더 알아가길 바라는 것 같았고 나로 인해 그들의 변화를 도모하고 싶은 생각도 충분히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로선 그녀들과 대화하기 조차 버거운 현실이었다.

원장과 나의 그런 생각은 아주 작은 변화를 가져오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들에게 부대끼며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로서는 역부족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병원 환자가 급속히 줄고 병원 역시 재정의 어려움이 생겨 원장은 한 명의 인원감축을 원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나가겠다고 했다. 도저히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안 되겠다고 나 스스로 나가겠다고...

원장의 한마디는 '왜 나간다고 하느냐.. 내가 내보내려 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그 사람이 나가도 나는 계속 힘들 것이 뻔히 보여 그냥 나를 내보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원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든지를 물어보며 본인이 판단한 상황으로 도움을 주려 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냥 순차적인 본인의 계획 일뿐 나를 위한 도움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즉 데스크를 어린 그녀에게서 나로 옮겨주어 실세의 힘을 낮춰 보겠다는 건데 그 의도가 과연 실세를 바꾸려 함인지 아니면 아직 데스크가 익숙하지 않은 나를 위한 훈련인지 알 수 없다는 얘기이다.

실은 두 가지의 의도가 다 있었을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분명한 건 첫 번째 의도는 완벽하게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나이 많은 그녀가 병원을 나갔고 나이 어린 그녀가 진료실을 들어가며 데스크에 내가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런데 그런 이후 환자들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데스크가 바빠지자 경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그 환자들을 다 쳐내기가 힘들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들게 나에게 그런 시간을 배분했다고 꼬집어 말하기도 애매하고 내가 데스크로 가면 환자들이 몰려와서 내가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그럴 때마다 어린 그녀는 그 핑계로 들어가기 싫은 진료실을 박차고 데스크를 점령하려 했다. 정작 필요할 때는 오지 않다가 아는 환자가 오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업무가 생기면 나를 진료실로 밀어 넣고 본인이 나와서 일처리를 하는 척 진료실과 데스크를 모두 점령하고야 말았으니 이는 분명 장군의 기상이고 장군의 힘일 지어다.

아무도 자신의 편이 아니라도 아무도 자신을 지지해 주지 않아도 그쯤은 가뿐히 무시한 채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그녀는 내가 보기엔 아주 대단한 사람 같았다.

그리고 언제든 데스크가 힘들면 자기에게 와서 'ㅇ선생님 힘들어요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라고 한다.

그럼 그렇게 말 안 해서 일부러 보고 있었다는 건가?

원장이 데스크에서 일어나는 가벼운 트러블과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나이 어린 그녀에게 잔소리 따위를 조금 해봤자 그녀는 전혀 기분 나빠하지도 그렇다고 그 이야기에 반응해 본인의 행동을 고치지도 아니 그럴 생각도 없어 보였으며 그냥 묵묵히 그녀의 길을 갈 뿐이었다. 그런 걸 두고 원장은 타성에 젖어서라고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녀는 내가 보기에 그냥 원래 그러했다. 본래 성격이 그렇다.

거침이 없고 다른 사람을 별로 염두에 잘 두지 않으며 좋게든 나쁘게든 생각 따위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불자도 아니며 교회도 다니지 않는 무종교인이지만 어떤 스님이 쓴 글이 기억이 난다.

-'어리석은 자는 평생을 지혜로운 이와 함께 살아도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국자가 국 맛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냥 그녀는 알고 싶어 하지도 다른 사람의 뭔가에 의해 변화 따위를 할 생각 조차가 아예 없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어쩌면 지금 현실의 병원일에는 가장 적합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너무 생각이 많았다. 이일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것처럼....


끝이 없는 터널

한 번은 원장이 그녀를 불러 나를 좀 잘 대해줘라 이제 일 년이나 같이 있었고 이제 3명이서 같이 일해야 하니 신입일 때 했던 것처럼 하지 말고 잘 지내보라고 대충 그렇게 말을 한 모양이었다.

그랬더니 그녀 역시 힘든 과정이 있었다고 그 힘든 4년을 보내고 지금 이렇게 나에게 이러고 있는 거라고 원장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는데 본인만의 이유가 되기도 할 것 같다.

그녀 역시 신입으로 이 병원에 들어왔고 그래서 그녀를 가르치던 나이 많은 선임에게 정말 많이 당했다고 그래서 그게 본인도 모르게 남아서 따라한 것 같다고...


물론 핑계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사실 생각 없는 그녀라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본인의 판단이 없으니 옳고 그름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애초에 구분하고 싶지 않으며,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냥 시키는 데로 움직이니 그 선임으로부터 힘든 시절 본인은 그냥 나중에 후임 들어오면 내가 편해지겠구나 그때까지만 참자 했는지도 모른다는 거다.


실제로 그 쯤 나이 많은 그녀도 나이가 비슷한 그녀도 나에게 질문을 했었다.

선생님은 밑에 후임 들어오면 이렇게 안 할 거냐고?

그래서 나는 똑같이 대답해줬다.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나는 부끄럽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사람이며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 사람보다 단지 먼저 이일을 했을 뿐이며 그 사람과 앞으로 같이 일을 하기 위해 또한 내가 편하고자 일을 안내해 줄 의무가 생긴 것일 뿐 그 사람은 나를 괴롭힌 선임도 아니고 그런 일로 하여 내 인격에 손상을 주는 일은 안 하고 싶다고. 아니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그들에게 난 정말 재수 없는 그녀가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정말 진심에서 한 말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내 마음의 소리를 들려준 것이었다.

그러라고 신입보다 그들이 월급도 더 받는 게 아닌가 말이다.

먼저 왔다고 해서 내가 이 병원의 원장은 아니다.

내 사업체도 아니며 내 마음대로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냥 한마디로 나에게 이득도 없는 무의미한 사람 괴롭히기가 왜 재미가 있어야 하고 그들에게 주 업무가 되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왜 모여서 한 사람을 골탕 먹일 계획을 짜는 시간이 필요한 건지 나의 발전과 일하는 곳의 발전을 위해 아니면 직원으로서 좀 더 나은 대우를 받고자 필요한 의견을 나누던지 얼마든지 의미 있는 할 거리가 많은데 왜 그 의미 없는 행동들에 시간을 낭비하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나이 많은 그녀는 내 말을 무시한 채 장쌤도 나중에 후임 들어오면 그렇게 해

뭘 뭘 그렇게 하라는 거니? 넌 네가 뭔가 그런 행동을 한 걸 그럼 알고 있다는 거니? 정말 너도 생각 이하구나.

인지를 한 채로 일부러 나에게 그런 행동들을 했다! 그런데 그만두고 나가는 마당에 지금 혹시 그걸 사과라고 하는 거니? 그리곤 마지막 카톡 인사로 본인이 더 잘 이끌어 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는 한마디를 남겼다.

정말 바닥이다. 나까지 바닥에 딱 달라붙은 기분이다. 존재감도 없이.....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는데 나이가 비슷한 그녀도 그들과 아주 많이 다르지는 않았다.

적당히 아랫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서로 지적질이 필요하다고 마지막까지 누가 불을 안 껐는지 누가 쓰레기를 안 치웠는지 누가 정리를 못한 게 아니라 안 하고 나왔는지 찾아서 그 사람에게 꼭 주의 좀 해 주세요 라는 뜻의 말을 해야만 할까?

어차피 나는 여태까지도 한 적이 없고 아니할 수도 없었고, 상황이 조금 나아진 그때도 그리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일이었다.

나는 그랬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너무 바빠서 그렇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란 걸 누구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데 정말 중요한 실수라면 짚고 넘어가야겠지만 그런 사소한 일들은 우리 지적하기보다 발견한 사람이 좀 해주고 그냥 넘어가면 안 될까 라고....

바쁘고 힘든데 우리가 그렇게 하나하나 지적하기 시작하면 그때마다 맘 상해야 하고 신경 쓰이고 그럼 일하는 게 너무 힘들지 않겠냐고 우리 그러지 않으면 어떻겠냐고.....

그랬더니 그랬었다. 아니 난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아니 난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

그래서 그녀들은 환자에게도 그랬다.

"이번만 해드리는 거예요.다음번엔 일찍오시지 않으면 안해 드립니다.!"


그리고 나이 많은 그녀가 없어진 병원에서는 두 사람의 기싸움이 이어졌고 결국 나이 비슷한 그녀가 승리한 듯 보였다. 나이 어린 그녀가 꼬치꼬치 그녀에게 일어나는 모든 걸 전달하기 바빴고 대부분 그녀가 결정을 내리려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어쩌면 딱히 그녀가 원하지 않았는데 나이 어린 그녀가 먼저 선택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셋이 함께 있을 때도 그렇지만 돌아가며 한 명씩 쉬거나 빠져 둘이 되면 나이 비슷한 그녀에게 나이 어린 그녀는 끊임없이 일과들을 보고하느라 카톡이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사소한 것 까지 하나하나 카톡으로 그녀에게 알리고 마치 허락을 받길 원하는 어린아이 마냥 말 잘 듣는 척을 했다. 둘이서 세력 다툼을 하든 새로운 우두머리를 정하든 나는 상관없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내 위치가 생기기는커녕 나에게 돌아오는 잔소리의 양은 똑같았다.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나이 많은 그녀가 빠진 자리엔 생각하지도 못한 내편이라 생각했던 그녀가 또 다른 발톱을 세우려 했다.


마치 니가 이제 좀 기를 펼려고 했어?그건 안돼지....

이 상황을 뭐라고 할 수 있으랴 그녀도 점점 앞의 그녀들처럼 본인이 뭐라고 하는 줄도 모르고 내가 기대한 좀 더 나은 직장 생활은 이미 멀어진 지 오래였다.

그때의 상황은 마치 새로운 군주가 들어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며 주변 세력을 누르려고 하는 상황이었고, 그녀는 사냥 전 발톱을 갈며 목표물을 향해 덤벼들기 직전의 맹수 같았다.

이미 나이 어린 그녀는 깨갱 하며 머리를 조아렸고 그다음 타자인 나를 향해 잔소리를 해댔다.

마치 어린 아들에게 하듯 나를 좌지우지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였다.

앉은 회전의자를 빙그르 돌려 앉히고 초등 아들에게 말하듯 나에게 하던 잔소리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그때 내가 몰라서 눈치가 없어서 그렇게 했겠니? 이미 넌 예전처럼 나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기에 상황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환자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어휴 뭐가 이렇게 지저분해 좀 치워 가면서 하지 "하면서 상담 중인 사이 대화를 막고 눈앞에서 물건들을 쓸어 제자리에 넣거나 버리는 등 말도 안 되는 행동들을 했다.

나를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 그런 행동은 나와 있는 환자의 상황과 그 사람까지도 무시를 하는 게 되는 걸 모르는 걸까? 정말 그녀들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들의 세력 다툼에 끼고 싶지도 않았고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무례함에 지칠 대로 지쳤다.

어린 그녀는 이미 눈치를 챈 것이다. 그녀에게 어떻게 해야 본인이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어차피 본인이 이길 수 없는 사람이라고 인정한 거다. 그리고 마치 조폭 집단의 똘마니를 자처한 냥 납작 엎드려 사력을 다해 충성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보고 과연 사회생활을 잘한다라고 말해야 할까?

씁쓸하다.

나이 비슷한 그녀가 없는 날은 당연히 그녀가 진두지휘를 자처하고자 아침부터 분주했다.

장쌤.. 이것 좀 해요. 엑스레이실 켰나? 묵직한 엉덩이를 회전의자에 딱 붙이고 분주히 아침을 준비하는 듯 하지만 지휘할 거리만 끊임없이 찾아낼 뿐...

이런 상황도 이런 모습도 그리고 무엇보다 시급보다 조금 더한 월급으로 버티기엔 나는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 무의미한데 상처만 남고 그 상처도 모자라 인격이 무너지는 이 상황을 무엇보다 견딜 수가 없었다.

그냥 그때는 너무 싫었다.

그래 그럼 그만두자.

마지막으로 붙잡았던 그녀의 손을 뿌리치는 게 아니라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그 손을 피하는 거다.


이해하기. 참기.견디기.

부질없다. 그래 그렇게 너희들이 원하는 내 위치 지키기 권력 키우기 둘이서 실컷 해봐라

땅따먹기 하는 어린아이들 마냥 내 것 내 것 조금만 더 이만큼 이만큼 여기까지......

안간힘을 쓰며 지켜내는 너희 모습이 난 참 안타깝다.

그렇게라도 일부러 악착을 떨고 싶은 거니? 안 해도 될 걸 엄한데 힘을 쓰고.....

신입이 들어오면 기 죽여 못 올라서게 만드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니?

내가 너희에게 올라갈 생각 없음을 그렇게 보여줬는데... 그래서 더 밟았던 건지...

정말 일도 잘하고 원장에게 인정도 받고 후배들 잘 챙겨주면 그 후배들이 너희들을 밟을까봐?아님 너희들 실체를 들킬까봐...

조금 더 이상적인 방향으로 조금 더 진취적으로 조금 덜 힘들게 변화를 주고 싶었는데 너희들은 이미 너무 익숙해져서 그 길이 모질어도 함들어도 주변을 볼새도 없이 몸에 베어버린데로 움직이는게 편한가 보다.

옆에서 보기엔 많이 힘들어 보이고 부질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또한 내 생각일 뿐

이젠 안타까워할 필요조차 없을 테니...

너흰 그대로인데... 다른 세상 다른 사람이 너희들에게도 혼란 스러 웠을 듯하다.

그랬겠구나....


병원을 나서는 길가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햇빛에 눈이 부시다.

봄이었구나.... 춥고 시리던 겨울은 어느새 따뜻한 봄바람에 숨죽이고 한 발씩 멀어지고 있었는데

곧 5월이 오면 난 봄꽃만큼 화사한 원피스를 입고 나를 위한 여행을 해볼까 한다.

그 여행이 얼마나 길어질지 지금은 알수 없지만

지금보다 훨씬 의미있는 일인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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