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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Sep 04. 2023

오래 되지 않은 사과

미안해 고마워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는 모습은

우왕좌왕 정리되지 않은 정신없는 사람같다.

내가 씻기 전에 땀흘릴 일들을 먼저 해두고 되도록 마지막에 씻으려고

내 모습은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엉망이다.

눈뜨자 마자 고양이 두마리 강아지 한마리의 먹을 거리들을 챙겨야 한다.

나이가 많은 22살 고양이 랑은 요즘 유선 종양이 재발해 곪고 터진 상처 소독까지 해야 하고

16살 된 강아지는 심장병이 있어서 꼬박꼬박 약을 챙겨야 한다.

게다가 아침엔 약이 두가지 시간텀을2시간 지켜야 해서 자칫하면 하나를 빼먹는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걸 빠트리면 방학동안 남아있던 딸이 해결해 줬는데 이젠 그것조차 힘들다.

고양이 화장실도 정리하고 가게 가져갈 반찬도 챙겨야 하고 남은 설거지를 하고 깜빡하고 청소기 돌리는걸 빠트렸는데 씻고 나오니 시간이 임박했다.

물 한잔 못마시고 허둥지둥 거린 결과가 허무해 지는 타임이다.

ㅇㅇ아 청소기 한번 돌려주면 안될까?

오늘부터 등교인 대학생 딸이 한참 화장중인데 부탁을 해본다.

다행히 흔쾌히 알았다고 한다.

고마워 ...

사실은 딸에게 미안해 고마워 하는게 처음부터 편했던건 아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게 그렇더라 집에서 조차 제대로 사과와 고마움의 표시를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은 다르더란 말이다.

사소한 건데 뭐!가 아니라 사소 한것부터....

그래야만 겠더라...딸에게도 하라고 가르쳐 놓고선

나는 왜 하지 않느냐 말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더 꼬박꼬박 하기로 했다.


오래되면 사과는 소용 없어진다.

상대가 섭섭해지기 시작하면 한겹두겹 쌓인 아픈 마음 다음에는 사과는 소용이 없다.

미안해 고마워 는 늦지 않아야 한다.

상처에 소독이 늦으면 돌이킬수 없게 될수도 있다.

어떤 상처 인지에 따라 결과는 다르지만 그래서 우리는 작은 상처에도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소독을 하고 연고도 바른다.

미안한건 미안한거다.

가까운 사이건 먼 사이건 내가 발을 밟은건 모르고 밟았다고 해도 상대는 아프다.

밟은걸 알게된 순간 최소한 미안하다고 마음이라도 알아봐 줘야한다.

상처를 알아봐 줘야만 한다.


오래된 아주 오래된 상처들이 묵은 때처럼 벗겨져 나가면 좋겠지만 상처는 그렇지가 못했다.

깊이 깊이 살을 파고들어 움직일때 마다 뭔가를 하려고 할때마다 불쑥 불쑥 종양처럼 몸속에 버티고 아프기만 했다.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문득 문득 때로는 아주 자주

기억이라고 하기도 뭣하게 늘 머리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때 그때만 알아봐 줬어도....

애꿎은 신세한탄으로 돌려 버리고 매번 회피해 버리는 그 말에 두번 세번 보잘것 없는 존재를 확인할 뿐 더는 얘기해볼 필요조차 생기지 않게 만드는 사람들....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모른척 하지 말았으면.......

찬바람이 불면 더 아플텐데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안하다고 하는건

고맙다고 하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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