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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엄마는
지우개 같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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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
Sep 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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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너덜 낡아빠진 걸레조각이 된 기분이다.
휴우... 한숨 한번 고르기도 버거운 숨 막히는 집이라는 곳이
나는 너무 싫었다.
매일 밤 꿈을 꾸면 똑같은 길 똑같은 차를 타고 쉼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어느 날은 끝이 보이겠지
미칠 것 같은 집을 떠난 것은 남편을 만나고 나서
무턱대고 생겨버린 용기
그 용기로 우뚝
말도 안 되게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힘든 건 똑같았지만
따뜻하고 행복했다.
늘 조잘조잘 둘이서 라면 세상 어떤 일도 거뜬히
그러다 이쁜 딸이 선물처럼 찾아왔다.
순하고 이쁜 딸은 어려서도 커서도 내가 키워낸 게 아니라 나와 같이 자랐다.
가끔은 딸이 부러웠다.
경제력 있는 부모는 아니지만 알콩달콩 가족이 다 함께한 어린 시절!
혼자 감성에 젖어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다....
입맛이 없다. 의욕이 없다. 힘들다....
나도 힘들다. 나도 입맛이 없다. 나도 의욕이 안 난다.
왜 그래 나한테....
엄마는 매번 있다고 하는 김치를 담는다.
있다 있다 없어도 된다
그러는데 매번 김치를 담고 전화를 한다.
오라는 말이다.
김치도 주고 반찬도 주고 바리바리 상자 가득 먹을 것으로 트렁크를 채워온다.
그런데 나는 가기가 싫다.
전화 통화도 싫다.
그냥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가끔 아주 가끔은 살갑게 구는 딸을 보며 아 나도 이렇게 했었으면 엄마가 그러지 않았을까?
반성을 해보지만... 관계는 상대적이다.
나는 딸에게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손지검을 하지 않았다.
고3이 된 올해까지도...
나는 수시로 손지검을 당했다.
뺨도 맞고 입도 맞고 머리도 맞았다.
아빠는 알코올 중독으로 매일 밤 가족들을 괴롭히고 그런 아빠에게 분노가 쌓인 엄마는 늘 나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마디라도 대꾸를 하면 어김없이 손이 날아왔다.
공부 잘하는 동생과 늘 수군덕데면서 나 보고는 늘 화만 냈다.
짜증만 내고 인상만 썼다.
힘들었다.
잊어가느라 긴 시간이 걸렸다.
딸을 보며.... 내게 있어 딸은 지우개 같은 존재였다.
조금씩 조금씩 내 상처를 지워주는 지우개
이제는 나보다 더 커서 내 얘기를 곧잘 들어주곤 위로를 한다.
내가 준 위로보다 더 큰 이해를... 딸은 참 잘 자랐다.
내가 키운 게 아니라 정말 같이 자랐다.
딸과 남편만 같이 있다면 난 더 바랄 게 없다.
가끔은 이런 행복을 누리지 못한 엄마에게 같이 하자 말하고 싶지만 막상 그 앞에 서면 화가 치민다.
아직도 다 지워지지 않은 원망이 상처가 다시금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우울해진다.
한없이 기운도 빠지고 의욕도 없어진다.
그래서 자꾸 외면했다.
사과를 해도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자꾸 슬퍼지고 괴로운 건 숨길수가 없었다.
그런데 자꾸 보인다.
같이 있고 싶어 하는 모습이...
잘난 동생네는 오라고 난린데 거기는 가지 않겠다고 한다.
훨씬 잘살고 풍족한 딸네 집에는 오라는데 가지 않겠다고 하고 내게는 자꾸 마음을 비춘다.
나는 싫다.
힘들다.
괴롭다.
턱턱 생각만으로 숨이 막힌다.
오래 묵혀둔 전자담배를 찾아 한 모금 길게 들이마신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급하게 두 번째 모금을 목으로 타는 듯 넘기고서야 숨이 쉬어진다.
트라우마...... 같이 잘 지낼 수 없다는 여러 번의 신호
불가능하다. 나는
그냥 이대로 가끔 엄마의 휴가 정도면 좋겠다.
딸에게 전화가 왔다.
학교 마치고 들어가는 길 달콤한 마끼야토 사줄까? 물어온다.
그래...
이제 살만해졌는데.....
때늦은 투정인가...
엄마도 엄마에게도 행복은 필요 하다
그 행복을 내가 찾아줘야 할런지....
그 행복에 내가 필요할런지....
가끔은 나도 마끼야토를 사서 들러봐야 할것 같다.
엄마를 더 알고 싶어서...아니 내가 적응을 하고 싶어서...
딸보다 더 자라야 하나보다
조금더 자라 손톱만큼 씩 이라도
마음을 비워야 하나보다
가을이 오려는지
바람에 가을빛이 묻어난다.
뜨거운 햇살 아래 차가운 바람 가을 냄새가 난다.
계절도 이렇게 익혀간것을....
꽉 묶인 매듭 매듭을 풀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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