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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Nov 21. 2021

고양이의 20살

할미냥이 '랑'

하얀 함박눈 같은  털속에 뽕송한 얼굴...이

아니라

사흘 밤낮 밥한끼 얻어 먹지 못한 것 같이 야윈 얼굴로 빽빽 울어데던 꼬맹이 였습니다.

많은 형제들 속에 치여서 늘 씽크대 구석에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녀석을 안타깝게 보던 집사님이 입양을 보내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까지 그분도 몰랐었을 겁니다.

꼬장꼬장한 얼굴로 안되어 보이는 아기의 모습으로  

경험이 없는 초보 집사 우리에게

그렇게 우린 만났습니다.


가진것도 없는 가난한 부부에게 하얀 아기냥은 그렇게 찾아 왔습니다.

스튜디오 겸 작업실로 쓰던 사무실에 몇달전 부터 함께 하던 수컷 페르시안 냥이가 있었고..그리고 하얀 꼬맹이가 두번째로 식구가 되었습니다.

이름은 '랑'

익숙해 지라고 부르고 또 부르고 부르는 소리에 반응이 민첩하던 수컷 고양이 '미루'랑은 다르게 본인 하고 싶은 일에만 더 전념하는 랑 그녀는 독보적이었습니다.

한동안 케이지에 콕 박혀 적응하지 못할 줄 알았으나.....

한번 나온뒤로 전력질주! 이곳 저곳 아직 소심한 수컷 미루가 다 돌아 보지도 않은 천정 가까운 구석구석까지 탐색을 하느라 매일매일 목욕을 해야 할 만큼 활발했습니다.


중요한건 요리조리 조심히 다니는 미루랑은 다르게 거침없이 주변 물건들을 넘어뜨리고 개의치 않은 채 질주를 하는 모습에 .....미루는 '뭐 이런게 다있지?' 하는 휘둥그레한 표정으로 랑을 한동안 쫓아 다녔습니다.

참 다르다.....그런데 더 이상 한건 그렇게 고양이들이 싫어 하는 청소기를 밀때면 구석을 찾아 후다닥 도망가는 미루랑은 다르게 전혀 개의치 않고 하던 그루밍을 멈추지 않는 다던가

아무리 불러도 반응이 없다던가

먹을 것을 꺼내는 소리만 들려도 달려오는 미루랑은 다르게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한번씩 뒤에서 다가가 툭 치면 소스라치게 놀라 공중으로 부양을 했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찾아낸 결과는 "터키시 앙고라에 푸른눈 암컷은 유전적으로 귀가 들리지 않는다."였습니다.

설마설마 하며 동물병원을 찾아가 청력 검사를 한 결과...

사람처럼 정확한 기구로 수치를 잴 수는 없지만 여러가지 검사를 해본 결과 청력이 안들리는 걸로 충분히 보여진다 였습니다.


가엾은 생각에 그 소리를 듣자마자 하루종일 울기만 하는 나에게

랑은 볼을 가져다 데고 힘차게 문질러 댔습니다.

귀가 안들리니 이름을 불러도 알수가 없었을테고 청소기 소음도 들을수 없었고 누가 뒤에서 와도 알수가 없어서 그토록 놀랄수 밖에 없었음을......

자꾸만 눈물이 흘러 나혼자 바보같이 그렇게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그녀가 미루와 부부가 되고 아기를 다섯마리나 출산을 했습니다.

 아가들을 출산하고 아무렇지 않게 아침 출근하는 절 반겨 주었습니다.

대견하게도 다섯마리 꼬물이들을 밤새 출산하고 아무일 없었던 것 처럼 마중을 나왔습니다.

꼬물이들을 어찌 할 줄 몰라 이리저리 물어다 숨겨 놓기도 하고 우리가 먹던 라면을 봉지째 물어다가 꼬물이들에게 가져다 주기도 하고

스튜디오 촬영이 있어 손님들이 온날이면 홀딩도어를 닫아 스튜디오와 분리를 해뒀는데 용케도 홀딩도어 자석을 찾아 문을 열고 빼꼼히 내다보다가 틈만 나면 스튜디오에 난입해 사람들을 놀래키고 한바탕 소동을 벌이던.....

아가들 젖먹이는 엄마 랑과 뒷처리 해주는 아빠 미루(18년전 사진)



지금20살!!



 그녀는 지금 19살 딸래미보다 1살더 많은 20살 입니다.

랑이가 소리를 듣지 못해서 가여운 냥이로 살았느냐구요?

아니요 랑은 아주 여유로운

다른 고양이들처럼 소심하게 깜짝깜짝 놀라지 않는 아주 느긋한 고양이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 같아 보였구요.

스스로 살면서 터득한 민감한 촉각과 후각으로 이제는 뒤에서 누가와도 잘 알아 차릴수 있답니다.


꼬장꼬장 할미가 된 할미냥은 하루종일 남편을 따라 다니며 안아달라 조르는 아기가 되었습니다.

목소리가 유난히 큰 랑은 보통 고양이 처럼 나긋하게 냐옹 하지 않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빽 빽 거려서 가끔 시끄럽다고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그녀가 힘이 난다는 증거입니다.

얼마전에는 큰 수술을 받았는데요

나이가 너무 많은 초고령이라 큰수술은 힘들고 염증이 심하던 종양의 딱 그 부분만 절제를 받았습니다.

유선종냥이라고 하네요....고양이의 유선종양은 대부분 악성이라고 하고 혹여나 해서 조직검사를 해 보았지만악성이 맞다고 합니다.암이라는 말이구요.

얼마나 더 살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났네요.

많이 많이 슬프겠지만 그날이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올지 오지 않을지 모르는 그날을 기다리며 슬퍼 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빽빽

캔달라 안아달라 물떨어졌다 사료달라

할미냥이 일어나면 전 무척 바빠집니다

빨리 주지 않으면 빽빽거리는 소리가 옆집에 들릴듯...

하지만 나 아직 건강하다 나 아직 멀쩡하다 소리 같아서 요즘은 그 소리가 너무 반갑습니다.

살도 많이 빠지고 털도 예전처럼 윤기가 나지는 않습니다.

먹는양도 아주 극소량....

랑이가 최선을 다해 우리곁에 있는 그날까지

나 역시 최선을 다해 그녀와 함께 할 시간만 준비 할꺼랍니다.

처음 우리에게 왔던 그날처럼 오늘도 내일도 랑과 하는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싶습니다.

랑이는요 19살 먹은 딸래미를 봐주던 보모같은 고양이 였습니다.

손님이 오면 혼자 있는 딸래미 곁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아기를 봐주던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스스로 찾아 하던 사람보다 더 훌륭한 고양이 입니다.

행여 물이 떨어지면 수도꼭지를 찾아가 물을 먹고 모르는 사람이 봐도 뭘 해달라는 말인지 알아들을수 있는 행동을 합니다.

사료가 없으면 사료 포대 앞에서 서성이거나 사람이 없으면 포대를 뜯어 넋놓고 있는 나머지 냥이들에게 사료 파티를 열어 줍니다.

 물그릇 앞에서 순서를 지키라고  랑 이 할머니한테 혼나는  뽀삐

                              


벌써 그녀와 함께한 20번째 겨울이 오네요.

그녀도 저도 무척 싫어하는 겨울이지만 또 그렇게 서로의 품 속에서 겨울을 지나가 보려 합니다.

하루하루 한해 두해 그렇게 그녀와 우리가 살아온 만큼 앞으로도 그렇게 한해 두해 추억 더듬으며 살수 있기를

매일매일 기도 하려 합니다.

남편의 품에서만 자는 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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