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연 감정과의 동거

by 라니


때때로 어떤 상황에서 내 감정이 모호할 때가 있다. ‘어... 이런 기분이 뭐지?’

익숙한 것들에 대해서 친밀함을 느낀다. 감정도 그렇다. 즐겁다. 기분 좋다. 기대가 된다. 속상하다. 아프다. 슬프다. 화가 난다.. 이런 감정들은 자주 경험되어 왔다. 그래서 잘 읽어진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말들도 있다.

‘기분이 이상하다’ ‘당황스럽다’ ‘기분이 묘하다’ ‘애매하다’ ‘난처하다’...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읽어지지 않는다.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내가 그 감정에 상태를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키가 자라고 체중이 늘어가듯, 감정의 영역도 넓어진다. 유아기 때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을 학령기를 지나면서 느끼기도 한다. 자신이 느끼는 새로운 감정들에 아이들은 낯 설음을 경험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불편한 말을 들을 때가 있고 다툼을 경험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읽고,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들을 배워나갈 필요가 있다.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너무 바빠서 대부분 나의 일을 혼자서 처리해왔다. 야무지다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자립심이 생기고 책임감도 있다. 부모님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고 자랐다. 부모님은 나를 믿을만한 딸로 여겼다. 나 스스로 나는 열심히 살고, 성취감 있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기도 했었다.

외형적인 인정과 칭찬이 유익했다면, 양날의 칼처럼 나의 속에서 나를 할퀴어온 단점들이 있었다. 나 스스로의 감정을 읽어가는 것,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하는 것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사춘기를 지나고 청년이 되어서는 말이 많지 않았다. 종종 무엇을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 내가 가진 지식, 정보를 나누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럴 때 우울한 마음이 나를 덮곤 했다.


엄마가 되고서, 내 아이와의 소통은 지식도 정보도 요구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마음을 원한다. 아이들은 감정을 터치해주어야 했다. 그래서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연습하고 또 공부한다.

결국 마음공부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어떤 상황에서 내 마음은 불투명이 된다. 뿌옇다.

그럴 때는 감정의 색깔이 보이지 않는다. 감정의 이름도 모르겠다. 그래서 ‘뿌연 감정’이라고 이름을 붙여볼까...


뿌연 감정은 누구나 경험한다. 내 감정의 정체가 읽히지 않을 때.... 그때 어떤 이는 불안을 느낀다. 불안을 피하기 위해 혹은 덜 불안해지기 위해 자신이 위안을 느끼는 무엇인가를 한다. 그 행동이 건강한 방법이라면 유익이지만, 건강치 않은 방법들로 흘러간다면 문제 행동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뿌연 감정’을 회피하는 이도 있다. 어떤 이는 화를 내기도 한다. 우울해지기도 한다.

정체가 불분명한 뿌연 감정을 처리하는 법을 몰라서이다. 대체로 뿌연 감정들을 마주했던 과거의 경험이 오늘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뿌연 감정들의 기억이 소환된다. 불운한 기억이 짙을수록, 쉽게 그때의 행동들과 손을 잡기도 한다.


어떻게 할까?

새벽안개가 자욱한 날 자동차의 속도를 내는 것은 위험하다. 자동차 라이트에 불을 환하게 밝히고, 그 빛을 따라 보이는 정도만큼만 서행을 해야 한다. 뿌연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내 감정에 시간을 주자. 혹은 그 정체가 보일 수 있도록 마음에 빛을 밝혀보는 것도 좋겠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산책을 하다 보면.... 감정에 환기가 일어나기도 한다.


뿌옇던 그 무엇이 가라앉고 감정이 지나온 걸음을 되짚어본다. 어제는...

‘감정이 지쳤었군. 피곤한 시간이었어. 감정을 선택하기 어려운 순간이었어. 어제는 그렇게 두는 것도 좋겠어.’

감정에도 휴지기가 필요한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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