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온 걸까?(2)
(앞 글에 이어)
퇴직 후 처음 한 두 달은 운동도 하고, 골프 레슨을 받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퇴직한 직원들을 만나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씩 하면서 사는 이야기도 하곤 했지만
흔히 말하는 노는 시간은 길어만 갔다.
겨울이 지나고 봄날에 접어들 무렵,
아내가 여름 방학 때 큰 애와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오면 어떻겠냐고 했다.
큰 애는 무조건 좋다고 했다.
구직활동도 잘 안 되는 참에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바로 검색을 해서 항공권을 알아보고, 여행계획을 짜고는 큰 아이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서유럽으로 보름간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비록 백수였지만 이건 잘했다고 생각한다. (관련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정리하기로 하고...)
힘들었지만, 기분 좋은 여행을 하고 온 기운을 받아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다시금 구직활동을 했고
시간은 좀 걸렸지만 또다시 다섯 번째 취업을 했다.
강남에 위치한 비교적 견실한 기업이었고, 신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각 파트별로 새로운 직원을 여러 명을 뽑고 있던 상황이었다.
의욕을 갖고 출근을 했지만, 입사 한 시간 만에 지금까지 본 적도 없었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목격하게 되었다.
대표란 사람이 어떤 직원을 상대로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악다구니를 쓰며 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직원은 얼굴이 벌게져 있고...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하루 이틀 그런 게 아니었다.
거의 모든 직원을 상대로 그런 일은 거의 매일 벌어졌고
견디다 못한 직원들은 퇴사를 했거나 퇴사를 당했다.
나 역시도 3년 정도를 속앓이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근무하다가 결국은 퇴직을 당했다.
특별한 잘못? 업무상 과실? 단언컨대 없었다.
갑질 빌런중 최악이었다.
다섯 번째 퇴직을 경험했다. 이쯤 되면 퇴직 전문가로 나가도 되지 않을까 싶다.
네 번째 퇴직을 한 무렵부터 나를 챙겨주던 분이 계셨다. 나보다 연배는 10살 정도 위에 계신 분이고,
업무상 여러 번 뵈면서 인사 정도만 하던 다른 기관에 계셨던 분이다.
퇴직 후 쉬고 있던 어느 날 전화를 주셨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식사라도 하자고 하셨다.
느지막이 약속된 장소로 갔다.
조촐한 전통주점이었다.
두툼한 파전과 막걸리 등을 주문해서는 한두 잔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이 지내온 파란만장한 이야기도 해 주시고, 요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이것저것 해 주시고...
어쨌든 결론은 조금만 참고 지내면 내게 걸맞은 일을 하게 될 거라고 위로의 말씀을 해 주셨다.
갑자기... 가슴 한편에서 뭔가 뜨거운 게 울컥하는 것 같더니만 눈앞이 흐려졌다.
나도 모르게 서글픔과 감동이 뒤섞인 감정이 복받쳐 올랐고, 주막 한편에서 꺼이꺼이 울고 말았다.
내가 힘들 때 전혀 예상치 않았던 어떤 분이 나를 지켜봐 주고 있었고, 이해해 주고 있고,
믿음을 주고 있다는 그 느낌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그분은 그날 나의 귀인이었다. 그분과는 지금까지 절친처럼 지내고 있다. 그분은 결국 나의 여섯 번째 취업에 도움을 주셨다. - 정확히는 일곱 번째가 되겠다. 여섯 번째는 4대 보험이 필요해서 거의 3개월만 임시로 있었으니...)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