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방향으로 갈 때는 온 우주가 도와서 이게 맞다고 알려주는 것 같다.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날들을 물어본다면, 나는 거침없이 "외국에서 살던 날들이요, 그 중에서도 승무원이었을 때요" 라고 할 것이다. 하나의 직업일 뿐일 수 있지만, 외국 항공사에서 비행을 하면서 내 삶은 누군가의 로망이 되기도 하였고 스스로에게도 미소 짓게 되는 삶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말하면 재수 없이 들릴지 아니면 너무 부러울 지 모르겠지만, 나는 참 얼떨결에 우연히 승무원이 되었다. 국어국문학과와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하며, 늘 글을 쓰거나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일에만 관심이 많았다. 대학생활동안은 여러 기자단 / 대학생 저널리스트 활동만 하면서 내 포트폴리오는 누가 봐도 '기자'를 향하고 있었고, 적어도 무언가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겠구나 싶었을 것이다. 그런 내가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끝내고 졸업 유예 학기였던 9월에 갑작스럽게 어학연수를 결심했다.
졸업 유예 학기 동안에는 취업 준비를 하지 않고 나만의 컨텐츠를 만들고 포트폴리오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는데, 여기저기 들려오는 공채 소식과 인턴 공고에 나도 그저 하나의 졸업 예정자가 되어 이력서를 몇 곳에 내버렸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때부터 나는 참 항상 적극적이었던 것 같은데, 취업스터디를 알아 보고 참여해서 인적성 문제를 풀어보기도 했다. 정말 여러 대기업 취업을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던 스터디원들, 늘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일까? 나의 꿈은 무엇일까? 하며 살아왔던 나에게 조금 어색한 그림이기도 했다. 아무쪼록 그렇게 얼렁뚱땅 내버린 대기업 공고 중 하나 서류 합격이 되어버리는 탓에, 인적성을 한 번 정도 풀어봤는데 이건 뭔가 싶었던 기억이다.
열심히 찍고 시험장을 나오는 길에 생각했다, '어차피 떨어지긴 하겠지만 혹시라도 붙어도 이 길은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겠구나, 행복하지 않겠구나.'
그렇게 멋지게 떨어지자, 답이 확실해졌다.
나는 지금 취업 준비가 아니라 꼭 하고 싶은 일이 있구나!
내가 지금 이대로 대기업일지라도 취업하고 싶지 않은 이유, 이 젊음이 취업하기엔 너무 아깝다고 느끼는 이유, 생각보다 답은 빨리 찾아졌다. '해외 생활과 영어에 대한 로망'이었다. 워낙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하던 24살 가을의 나, 지하철역에서 길을 헤매고 있는 외국인을 볼 때면 가서 말을 걸며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입이 떨어지지 않던 나, 세상을 무대로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싶던 나ㅡ였다.
지금 24살인데 취업해야지 갑자기 웬 어학연수냐, 어학연수 1년으로는 영어 실력 딱히 늘지 않는다더라, 누구는 그렇게 다녀왔는데 그냥 똑같이 살더라, 남자친구는 어떻게 하고 롱디를 할 생각이냐ㅡ나를 위한 걱정 어린 조언들이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단 한 번 흔들리지 않고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원래 결정을 잘 하는 사람은 아니다, 무엇을 먹을까 고르는데도 오래 걸리는 우유부단한 성격인데 신기하게 이 때는 뭐에 홀린듯이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게 되었다. 무엇이든 100%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고 결정하기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은데, (요즘은 결혼을 두고 그렇게 말하기도 하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제일 강한 확신에 찬 결정이었던 것 같다. 맞는 일, 옳은 일, 그렇게 될 일을 결정할 때는 온 우주가 도와서 이게 맞다고 말해준다는 기분, 그런 것이었을까?
그렇게 한 달 뒤 출국하는 비행기표를 끊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이 결정이 앞으로 내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갈지는 몰랐지만,
그 '얼떨결에 우연히 승무원에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이자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