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빨간 빛에 스며든 달의 세계 (6)
#6 [마음을 켜는 푸른 발자국]
창밖으로 잠시 비가 그친 틈을 타, 여인은 조심스레 빨간 우산을 가져와 하빈에게 건네며, 살짝 몸을 숙인 채 속삭이듯 말했다.
“하빈씨… 혹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저 건너편 빨간 문 가게에 양초를 주문해놨거든요.
이미 연락은 다 해뒀으니, 그냥 찾아와 주시기만 하면 돼요… 부탁드릴게요.”
여인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우면서도 어딘가 따스하게 감돌았다. 하빈은 그 미묘한 긴장과 살짝 스며든 기대 속에 잠시 머물렀다.
하빈은 잠시 의아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이 복잡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럼요. 제가 다녀올게요.”
여인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하빈은 빨간 우산을 펼쳐, 빗방울이 은은하게 튕기는 소리와 함께 조심스레 카페 문을 나섰다.
흐린 하늘 아래, 거리는 갓 젖은 흙내와 은은히 번지는 꽃향기로 가득했다.
나무마다 작은 사과꽃 봉오리가 풍선처럼 불룩하게 맺혀, 금세 터져 나올 듯 은은한 생명의 숨결을 내뿜고 있었다.
하빈이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그 향기와 숨결이 마음 구석구석을 적시며, 오랜 혼란과 무거움이 서서히 흘러가는 듯했다.
바깥 세상의 소리와 냄새, 빗방울이 남긴 습기조차 하빈의 가슴 속을 부드럽게 두드리며, 마음이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처음 나와보는 ‘컵 속 세상’의 카페 밖 풍경은 낯설었지만, 마음 한켠을 살며시 데우는 묘한 따스함이 있었다. 공기에는 막 돋아난 새순의 푸릇한 향과, 비에 씻겨 촉촉해진 풀내음이 은은히 섞여 있었다.
하빈이 천천히 거리를 걷는 동안, 여인이 건네준 허브 차, 메리골드와 라벤더의 향기가 몸과 마음 구석구석을 스며들며, 보이지 않는 손길처럼 자신을 감싸주었다.
낯선 풍경 속에서 마음이 조금씩 풀리고, 오랫동안 꽁꽁 숨겨두었던 온기가 가슴 깊이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하빈이 걷는 발걸음마다 축축한 바닥에 선명한 발자국이 조용히 남았다.
마치 이 길 위에 자신만의 흔적을 조심스레 새기듯, 천천히 걸으면서 마음도 조금씩 흔들리고, 숨겨둔 긴장과 답답함이 서서히 풀려갔다.
잠시 멈춰 서서 깊게 숨을 들이쉬면, 젖은 바닥 위로 남은 발자국이 자신이 걸어온 시간과 마음을 조용히 이야기해주는 듯했다.
그리고 그 작은 흔적 하나하나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도 조금의 위로와 여유가 되어주리라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우산 끝에 맺힌 물방울을 바라보며, 하빈은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곧 이 길에도 꽃이 피겠구나…”
비에 씻긴 공기와 흙내, 그리고 살짝 올라오는 새순의 향이 마음 한켠까지 스며들며, 마치 길 위에도 작은 생명이 조심스레 깨어나는 것을 느끼는 듯했다.
그 순간, 마음속 깊이 눌러 있던 그림자가 서서히 옅어지고, 대신 새로이 스며드는 숨결이 느껴졌다.
마치 세상이 조용히 속삭이는 듯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