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가 답할 차례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느 순간 내 안에 교복 입은 학생이 있어서 '이 일은 몇 점짜리일까' '칭찬받을 수 있을까'라며 스스로를 붙잡고 있다고 느꼈다. 내 안의 교복 학생을 떠나보내고 마음껏 백지에 쏟아 낼 때, 그때가 창의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맥킨지라는 모범생 조직 안에도 교복 입은 학생 같지 않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딱 보면 알 수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정말 멋있게 보였는데, 나와 뭐가 다른가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풀고 싶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하더라고요. 탁월하게 일을 하기 위한 자기만의 기준을 가지고"
탁월하게. 이 단어가 내 눈길을 잡아끌며 튀어 올랐다. 전문성이 아니라 탁월함이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을 해오던 터이기도 했다. 전문성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인정이라면, 탁월함은 자발적인 동기부여를 통해 스스로 쌓아가는 역량이다.
<일 하는 마음: 나를 키우면서 일하는 법> 제현주, 어크로스
SNS를 왜 하는 걸까?
처음에는 나를 알리려고 시작했다.
일 하는 모습,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 일을 많이 하는 모습
이런 일도 하는 사람입니다.
저런 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일을 얻어보려고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 반응도 섭외도 없어서 할 말이 없었다.
직장 다닐 때 있었던 일들도 적어보고
일상도 적어보고
어쭙잖은 생각도 적어보고
프로필도 정리해서 올려보았다.
그랬더니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SNS에 더 열심히 홍보를 했다.
문제가 발생했다.
매번 다르게 쓸 말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일 하고 와서 재밌었다, 잘했다고 칭찬받았다,
진행 너무 잘해서 아나운서 누구냐라는 소리를 들었다 등등
손발이 오글 거리지만 안 쓸 수도 없는 글로 돌려막기를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이게 좀 싫어서 다르게 할 수 없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경쟁자들을 어떻게 SNS를 하지 염탐을 했더니 다들 비슷했다.
-"큐 하자마자 NG 없이 끝내서 박수를 받고 2시간 안에 끝났습니다"
-"행사 현장 도착하자마자 계속되는 요청 사항에도 무사히 잘 끝나서 관계자 분들께 엄지 척 받았어요"
-"행사가 끝나기 전에 다음 에도 와달라는 관계자 분들께 감사합니다"
그 외에도 목소리 칭찬, 멘트 칭찬, 외국어 칭찬 등등 온갖 셀프칭찬이었다.
내 칭찬을 올리는 것도
남의 칭찬을 보는 것도 뭐랄까 어느 순간 피곤해졌다.
다른 분야의 사람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 과정을 멋지게 담아서 올리던데
왜 내가 하고 있는 분야는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은 누구에게나 쉽게 평가받을 수 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렇지 않게 얼굴 몸매 평가는 물론이고 목소리, 의상 등 외적인 부분부터
말투, 멘트, 전달력 등 거기에 담겨 나오는 내용까지
누구나 쉽게 얘기할 수 있다.
목소리 별로네, 쟤 옷이 왜 저러냐, 오늘 진행자 잘한다 등등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입사 초기에는 선배 아나운서들 뿐 아니라 지나가는 다른 부서의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툭툭 점수(다양한 피드백)를 던지고 갔다
그래서인지 나를 외부에서 평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회사를 벗어나서도 교복 학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항상 내 시선은 외부였다.
-내가 한 진행은 몇 점이었을까?
-오늘 나의 모습은 예뻤을까?
-클라이언트(혹은 방송관계자)는 내 진행을 좋아했을까?
칭찬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칭찬을 받으면 좋았다.
내가 속으로 맘에 안 들었어도 담당자가 칭찬하면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반대로 내가 나쁘지 않네라고 생각이 들어도 에이전시의 김새는 한 마디면 그날 행사는 더럽게 못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외부의 기준에 너무나도 흔들리다 보니
일의 경험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지 못했던 게 나의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이다.
탁월성은 또한 자신이 해온 일,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반추하며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석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같은 일을 해도 그 일의 경험을 통해 써 내려갈 수 있는 이야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일 하는 마음: 나를 키우면서 일하는 법> 제현주, 어크로스
나는 십 년 넘게 일을 해도 전문성을 쌓지 못한 것 같아라는 고민에 대해 이 책이 많은 답변을 해주었다.
내가 키울 것은 전문성이 아니라 탁월성이라는 것을
꼭 원대하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해석하지 않아도 되지만 스스로가 만든 해석의 틀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