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도 그림자도 아닌 것들이 머무는 공간

책상 아래에서 반짝이는

by 게으르니스트


회사라는 공간은 참 묘하다.

잠을 거의 못 잔 상태로 출근한 날엔 더 그렇게 느껴진다.

나는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책상에 앉아 신발을 갈아 신고 숨을 한 번 크게 삼켰다.

낯선 냄새

전날 누군가 먹다 남겨 둔 커피 냄새

오래된 컴퓨터 본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먼지 냄새

처음 겪는 공간은 늘 그렇듯 먼저 말을 걸어온다.


사람들은 인사를 건네며 자리를 정리했고
나는 준비된 책상 앞에 서서
그 자리에 남아 있는 미세한 온도를 느꼈다.

노트북을 켜고 의자 높이를 맞추는 동안 바닥에서 작은 진동이 있었다.
건물 전체가 움직였다고 보기엔 너무 가벼운 떨림이었다.
발끝이 살짝 흔들렸고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책상 아래를 바라봤다. 어둡고, 먼지가 얇게 깔린 공간.
특별한 게 없는 공간.

하지만 그 어둠 안쪽에서 작은 빛의 조각이 흔들렸다.

전등도 없고, 창문도 멀었다.
반사광이라기엔 움직임이 너무 일정했다.
바람 없이 흔들리는 커튼 같았다.
형체는 없었지만
움직임은 분명히 있었다.

눈을 한 번 깜빡였을 뿐인데
그 흔들림은 사라졌다.
사라진 자리는 검고 고요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첫 회의가 시작됐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업무 개요.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내 귀는 책상 아래 어둠의 기척을 더 선명히 기억했다.


점심 이후 사무실은 잠시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대화가 끊기고 키보드 소리와 프린터 돌아가는 음만 남았다.
그때 다시 바닥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주 짧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발끝으로 바닥의 기척을 읽었다.
바람은 없었다. 그러나 공기 밀도가 조금 다른 순간이 있었다.
누군가 지나간 것 같은 느낌.
그러나 지나간 사람은 없었다.

책상 아래를 다시 들여다봤다.
흔들림은 없었다.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애매한 감각.
어제의 꿈을 되짚을 때와 비슷한 결.


시간이 흘러 퇴근 무렵.
사무실 불빛이 조금 누렇게 변하는 시각.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우고 사무실이 크게 느껴지는 시간.
나는 마지막으로 책상 아래를 보았다.

이번엔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
아침의 흔들림은 햇빛이었을까.
피곤한 눈이 만들어낸 잔상이었을까.
그러기엔 너무 정확했다.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다.
바닥의 회색 결이 긴 복도를 따라 멀리까지 이어졌다.
그 바닥을 따라 걸을 때 내 발소리가 공간 깊숙이 가라앉았다.

복도 끝에서 아주 잠깐 빛이 흔들렸다.
전등이 깜빡일 수 있다. 누군가 걸어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멈춰 섰다.
바닥 위의 긴 그림자가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다.
눈을 좁혀 보았지만
흔들림은 사라져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며 복도 끝을 다시 봤다.
한순간, 바닥의 흔적이 아주 얇게 흔들렸다.
빛도, 그림자도 아닌 무언가의 잔향처럼.

문이 닫히는 소음이 복도 전체를 잘라냈다.
그 사이에 있던 흔들림까지 함께 사라졌다.
그러나 사라진 자리엔 이상한 기운이 남았다.


첫날부터 보일 장면은 아니었다.
그런데 봤다.
흔들림이 있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내일도 다시 나타날 것 같았다.

이 회사는 무언가를 오래 품고 있는 공간이었다.
시간이 쌓인 자리.
기억이 퇴적된 자리.
그리고 그 자리 어딘가에서 빛의 흔들림이 태어나는 것 같았다.